자각

서른두 번째 별.

by 김영은



행복한 삶은 계속되는 마취로 인한 무뎌짐이고

불행한 삶은 자각에서 시작된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몸이 무겁다. 일어날 줄 모르는 몸을 그대로 둔 채 나는 그냥 누워있기로 한다.

‘ 뭐 오늘 하는 것도 없는데. 그냥 이렇게 쉬자.’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휴대폰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 채로 나는 이렇게 누워 있다. 의미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멈추기 힘든 휴대폰은 나의 오늘을 조금씩 좀먹어 가는 듯하면서 하루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아 배고파. 배가 고파 정신이 확 들어 시계를 보니 어느새 낮을 훌쩍 넘겨 오후 3시다. 배가 고프다. 무얼 먹어야 할까. 지금 이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무거운 고민이었다.

‘중국집은 어제 먹었으니 좀 그렇고.. 오늘은 그럼 족발을 먹어야겠다.’

망설임 없이 휴대폰으로 족발을 시켰다. 나의 행복한 점심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며 또 소파에 누워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사실 난 내가 이러고 사는 게 정말 한심해. 미래에 걱정도 없고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고.. 왜 내가 이러고 있는지 나조차 알지 못해. 근대 어떻게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싶다는데. 세상에 나아갈 때엔 그래도 희망은 있었지.

‘나는 무엇을 해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경험을 하다 보면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고 그 길에 끝엔 분명 성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출발선에서 누군가에게 발목을 잘려 나아가지 못했어. 아니 내가 내 발목을 자른 건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어. 쓰러져 있는 나에게 저 멀리의 도착점은 너무 멀게 느껴져 기어서라도 갈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

세상 사람들은 나에게 말하지. 참 한심한 사람이라고. 참 생각 없이 산다고. 그런데 지금 나는 충분히 행복해. 다행히 집이 잘 살아서 밥도 굶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돈은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거든. 나는 내 생활에 만족하며 살기로 했어. 다른 이들이 그렇게 애타게 좇는 돈을 나는 굳이 좇아 가지 않아도 나의 옆에 이렇게나 많이 있으니까. 조금 재수 없지? 그래도 어쩌겠어 내 팔자가 이런 것을. 그냥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래 나는.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나태하다 해도 나는 나태하지 않아. 나의 행복에 모든 시간을 쏟고 있으니까. 지금 난 정말 행복해.



우울해진 기분을 풀어줄 나의 행복이 벨을 울렸다. 적당히 큰 상을 피고 그 앞에 홀로 앉아 족발을 뜯기 시작한다. 주린 배를 채워주는 이 만족감. 나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어느새 족발은 뼈만을 남겼다. 뼈. 갑자기 허무함이 포만감과 함께 밀려왔다. 순간의 찰나의 만족이 언제까지 나를 채워줄 수 있을까. 의문이 눈을 타고 들어와 뇌리에 꽂힌다.

넓기만 한 대리석 바닥, 호화스러운 가구들, 먹을 것 가득한 냉장고, 커다란 티비, 모든 것은 갑자기 쇠창살로 변하고 주변의 공기는 점점 아스팔트 쾌쾌한 냄새로 가득 차고 있다. 바퀴 벌레가 기어 다니고 천창 모서리엔 거미줄이 생기고 있다. 여기가 어디인가. 방금까지 나의 삶의 이유와 행복들이 가득하던 곳이 맞는 것인가. 나는 뼈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 먹은 뼈. 다시 나의 공간을 돌리기 위해 나는 핸드폰을 집고 그 족발 집에 주문을 다시 한다.

“저기요. 아까 시켜먹었던 집인데요 똑같은 걸로 2개만 다시 배달해 주세요.”

“띵동.”

두 번째 족발이 도착했다. 집은 다시 시원하고 쾌적한 나만의 낙원으로 변하고 나의 눈에 상위에 통통한 족발이 있다.

‘다행이야.’

또 먹기 시작한다. 배는 부르지만 역시 맛있다. 그런데 먹다 보니 2마리는 조금 많다 싶다. 다 먹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뼈가 드러나지 않은 먹다 남긴 족발 위로 갑자기 무언가 피기 시작한다.

‘뭐야 이거.’

푸른색 흰색 섞인 꽃이 피는 족발 주위로 다시 한 번 아스팔트 바닥이 드러나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은 또 다시 감옥으로 변하고 있다.

“자각한 거야. 너는 이제 계속해서 불행할 거야. 네가 한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는 너 스스로 깨달은 거야.”

귓가로 소름끼치는 음성이 들려온다.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던 드넓던 하늘은 더이상 찾아갈 수 없고 볼 수도 없다. 감옥 안에 갇혀 창살 사이 하늘에게 후회를 말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힌다. 그에 따라오는 더 나아가지 못했던 과거의 나 자신은 가시를 두르고 나를 계속해서 껴안는다. 자각하는 순간 힘들어지는, 끝도 없는 욕심과 후회들이 평생 나를 괴롭히는 불행한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마취로 인한 무뎌짐은 부는 바람에 날아오는 꽃잎의 촉감조차 느끼지 못하게 했다.

자각은 쇠창살을 만들어 나를 가두었고 그 감옥 속에 도망갈 구멍이라고는 없었다.

그런데 계속되는 마취에서 깨지 못하고 그대로 그렇게 무감각에 빠져 살았다면 과연 나는 행복했을까. 흐려진 판단력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면 만족스러운 삶이었을까. 아니다. 나는 절대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 자각은 찾아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밀려오는 고통의 크기만 커질 뿐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감옥에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삽 한 자루 들고 이곳을 나가기 위해 땅을 파고 벽을 까기 시작한다. 손은 점점 망가지고 몸에선 참기 힘든 악취가 풍기지만 오늘도 끝을 모르는 삽질을 하는 내가 좋다.



말을 고쳐야겠다.


불행한 삶은 계속되는 마취로 인한 무뎌짐이고

행복한 삶은 자각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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