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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맨 Aug 10. 2018

남자들의 Metoo 지지선언이 필요한 이유

미투를 바라보는 어느 중년남의 색다른 시각

Me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나는 Metoo 를 지지한다. 이 땅에 남성 우월주의의 문화가 종말을 고할 때까지 그리 할 것이다. 하지만 왠지 이 싸움이 간단해 보이지도, 또 쉬워 보이지도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대부분의 성범죄 가해자는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생물학적인 젠더의 문제로 국한해서는 안된다.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권력형 성적폭력 사건의 본질은 남성성에 의한 여성성의 유린이다. 단지 남성이 권력의 상층부에 절대적 다수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착시현상이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이는 개인 차원의 단순 성폭행 사건과는 달리 다양한 그룹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총체적이고 광범위한 사회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가해당사자에게 있으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죄값을 치루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발발하기까지의 과정은 사실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그 과정에는 알선, 동조, 조장, 방임, 협력 등의 방식으로 사건에 일조하는 남성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제2의 그룹이다. 그들은 비록 현재는 가해당사자 만큼의 권력은 없으나 가까운 미래에 권력을 잡게 되면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행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인식되어야 할 무리들이다.

그리고 그 무리들 중에는 여성도 존재한다. 동성이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훨씬 더 능수능란하게 그 역할을 감당하므로 이미 나름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제3의 그룹이다. 이들은 대개 '남성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비록 악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남성 일변도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서열 상승을 위해서 그 DNA를 탑재한 경우로서 제2의 그룹과 동일한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같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전가하거나 물타기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또한 이미 '남성화'된 여성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원천적으로는 남성 우월주의 문화를 만든 남성들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남성우월주의 성향에 물든 여성의 사례는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남자는 (여자를) 많이 따먹어 봐야 돼."

어떤 아주머니가 성인이 된 아들에게 이런 얘길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들이 호방한 남자가 되었으면 하는 의도를 극단적이고 저속하게 표현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자신의 딸에게도 동일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과연 이 아주머니만 그럴까? 굳이 입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잘못된 남성상이 뇌리에 각인되어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에서 보여준 남학생 부모들의 행태가 곧 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말이다.

흔히 남성사회에서는 '(여자를) 따먹은' 일이 무용담처럼 회자되곤 한다. 이런 문화를 확대재생산 하는 곳이 바로 군대라는 공동사회다. 물론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남성사회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폐쇄적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무용담(?)을 과장하거나 거짓이라도 만들어 내야한다. 아니면 '남자 축'에 들지 못하며 심지어 무시, 조롱,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문화에서 성장해 온 남자들은 일종의 로망(?) - 여성을 성적으로 폭압함으로써 남성사회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 을 가지게 된다. 단지 윤리와 양심에 반하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막상 현실세계에서 실천에 옮기기에는 능히 감당할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막연한 소망 정도로만 마음 속에 묻어 둘 뿐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어느 정도 권력을 가지게 되면 제2, 3그룹의 노련한 지원에 힘입어 서서히 발현되기 시작한다. 또한 점진적으로 그 수위가 높아지는 양태를 띤다. 음담패설, 훑어보기, 가벼운 스킨십 순으로 말이다. 사회에서의 이러한 일상적인 다반사를 성희롱이라는 범죄용어로 부른지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이제 비단 남성사회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여성에게서 이러한 기조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바로 사회적인 여성의 남성화다.

물론 남성성 자체가 악일 수는 없다. 사회를 선점해 온 남성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여성의 참여를 억압해 왔고, 여성성의 견제(혹은 조화)가 없는 남성성이 오랜 시간을 거치며 네거티브한 측면만 기괴하게 성장하고 변형된 사회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홍준표 류'는 도처에 깔려 있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이다.

제4의 그룹이 있다. 기득권을 가진 남성들과 경쟁하며 일정 수준의 지위를 차지한 제3의 그룹 여성과는 달리 아직 남성화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남성화 사회에 맞선다. 같은 편에 서 있기 보다 반대편에 서서 온몸으로 수용한다. 그리고 역이용하려고 한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Metoo 운동이 유치해 보이거나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을 듯도 하다. 물론 절대적으로 개인의 가치관에 관한 문제이긴 하겠으나 이 그룹 역시 권력형 성적폭력의 메카니즘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차원에서 심각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제1그룹의 욕구를 거부하지 않는다. 때로는 자의적이기도 하다. 때문에 남성들은 모든 여자가 이러하며 단지 내색하지는 않을 뿐이라는 헛된 망상에 빠지게 되며, 권력을 누리는 기간에 비례하여 실증적인 경험 - 여성을 성적으로 폭압해도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는 - 을 축적해 나가게 된다. Metoo 폭로를 당한 남성들의 첫 번째 반응이 '당황(황당?)'이며, 일방적이 아니었다거나 합의였다는 등의 변명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경험의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제5그룹이 있다. 그들은 이미 일반적인 젠더의 개념을 초월한 존재이다. 각 계의 기라성 같은 인사들이 폭로 한 방으로 무너지는 광경에 놀랄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들이 올라 선 권력은 제5그룹 인사들에 비하면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정말 권력의 최정점에 위치한 이들은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고 막강하다. 그들이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차상위에 있는 이들의 충성심을 이용하는 것이며, 성적인 이슈는 종종 그들을 움직이는 레버리지로 사용되곤 한다.

제1그룹이 왜곡된 권력놀음을 그만 두지 못하는 이유는 제5그룹의 위상을 일찌기 감지하고 또 이를 선망하고 있기 때문이며, 일순간 방심하여 폭로에 휘말리는 까닭은 이제는 본인이 제5그룹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는 착각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비약적일까?

어쨌거나 최근 불거진 권력형 성범죄자는 엄단해야 마땅하지만 당사자의 법적 처벌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법적, 행정적 차원에서의 정부의 발빠른 대처는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조적이며, 사회문화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지속적인 운동이 전개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려되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만성화되어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개혁피로감'이라는 말이 있다. 옳은 일이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면 일각에서는 '그만하면 됐다'거나 '이제 그만하자', '다 똑같으니 없던 일로 하고 앞으로 잘하자'류의 탕평책이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법적 처벌의 한계이다. 폭로가 이어진다고 해서 처벌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어떠한 형태로든 정죄를 받은 이들에게는 역설적이게도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기도 한다. 입증할 수 있는 죄가 결코 전부는 아니다. 성범죄의 특성 상, 1건의 성추행 사건 이면에는 휠씬 심각하고 많은 성범죄가 있을 것이 자명하지만 드러난 죄만으로 처벌한다면 그야말로 약소하기 짝이 없다. 이후로는 더욱 은밀하고 정교하게 행하면 그 뿐이다.

더구나 상대가 폭로로 인하여 타격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는 유명인이나 고위권력층이라면 모를까 일개 회사원이나 소상공인, 업주 등 사회 곳곳에 널려 있는 범부들이라면 폭로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보복의 두려움도 실재한다. 상대방의 권력의 수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단순한 욕설과 비난, 법적공방, 물리적 폭력이나 재산상 손해 등 뿐 아니라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폭로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비난여론이다. 폭로한 여성의 용기를 높히 받들고 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의 여성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저 용기를 칭송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급부적으로 폭로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압력도 거두어야 할 것이다. 기우일수도 있겠지만 일부 단체에서는 그런 주장이 나올 법도 해서 심히 우려가 된다. 또한 그들을 마치 제4그룹인 양 매도하는 일도 물론 없어야 하겠다.

솔직히 이 땅의 여성들 중 대부분은 제3,4그룹에 속하지 않는 선의의 피해자이거나 평범한 분들일 것이다.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1,2그룹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만연해있는 잘못된 문화는 모두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바꾸어 나가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얼마전 폭로를 당한 남성이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Metoo 운동에 걸림돌로 작용할까 적이 염려가 된다. 더 이상 피해여성의 폭로에만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남성들의 고발, 지지, 폭로가 이어져야 하며, 점차 남성과 남성 간의 갈등도 운동의 전개 양상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같은 여성과 여성 간의 갈등도 수면 위로 부상해야 하리라. 더 이상은 쉬쉬하고 묻어두고 넘어가지 않았으면 한다. 제2,제3, 제4그룹의 커밍아웃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종국적으로 제5그룹을 압박하여 성역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제1그룹 남성들이 헛된 욕망을 쫒지 않기를, 여성에 대한 잘못된 망상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제2, 제3, 제4 그룹도 자연히 존재이유를 상실할 터이니 남성이나 여성 모두가 스스로 온전하지 못한 '반쪽'임을 인식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바로 남성들의 Metoo 지지선언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비록 나 자신이 위험해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cf. 대한민국 사회에서 Metoo 에 대해 완벽히 자유로운 남성은 그리 흔하지 않다.


#미투 #metoo #위드유 #withyou

더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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