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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맨 Feb 27. 2019

불완전을 향한 모든 사랑은 부질없다

영화 《더 페이버릿》에 비춰진 사랑의 2가지 형식

메인 포스터

쓰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선뜻 후기를 쓸 수 없는 영화가 가끔 있다.  '더 페이버릿'이 그렇다. 엄밀히 말하자면 쓸 내용이 많다기 보다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혹은 여러 가지 스타일로 후기를 쓸 수 있는 여지가 많기에 생각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범람하는 경우라고 하겠다.


고민 끝에 종래에 후기를 쓰던 방법에서 탈피하여 좀 더 가벼운 터치로 일반적인 것은 과감히 생략하고 그저 나만의 독특한 시각에만 초점을 맞추어 써 보기로 한다. - 저급하다는 느낌이 있을 수도 있고 조금 어색할 수도 있겠다.



절대 권력을 지닌 히스테릭한 영국의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  여왕의 오랜 친구이자 권력의 실세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와 신분 상승을 노리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욕망 하녀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은 여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버둥치기 시작하는데…
                                           ㅡ 출처 : 네이버 영화 <줄거리>
여왕의 여자


제작사에서 뽑아 낸 부제가 이처럼 영화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동성애 코드가 있긴 하지만 생각만큼 어필한 흔적은 없어 보이고, 역사적 사실에 기초했지만 고증이나 재현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다.


여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 The Favorite 이 되기 위해 - 두 여자가 경쟁하는 과정이 어쩌면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앤여왕의 총애가 되기 위한 사라와 애비가일의 암투

두 여자의 타이틀매치를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리뷰해보자.


 1 ROUND 

극진한 마사지 vs. 약초 한빵!


앤 여왕은 '괴물이 씹어 먹는 듯한' 통풍의 고통에 시달린다. 사라는 극진한 마사지로 그녀의 고통을 덜어 주려 한다. 하지만 직접 마사지를 하는 것은 하녀들이었고 사라는 옆에서 '현실자각' - 참아야돼, 어쩔 수 없어 등 - 에 도움을 줄 뿐이다. 물론 마사지 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애무는 사라의 큰 역할이기도 했다.


애비가일은 온갖 잔꾀와 술수를 동원하여 앤 여왕의 침실에 잠입하는데 성공한다. 자신의 화상치료에 사용했던 약초를 캐다가 몰래 앤 여왕의 다리에 바른다. 효과는 직빵! 물론 그것이 자신의 공로였음을  교묘히 밝히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애비가일이 1승을 올리는 순간이다.


 2 ROUND 

나 춤 잘추지? vs. 너도 춤 출수있어!


다리가 불편한 앤 여왕은 늘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파티가 있을 때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연히 무도회를 관람(?)할 수 밖에 없었지만 앤 여왕도 여자인데 왜 춤을 추고 싶은 맘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무시하고 -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 사라는 멋진 귀족남자와 멋드러지게 춤을 추어댄다. 결국 앤 여왕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채 침실로 들어가 버리고, 사라는 깊은 사과와 함께 갖은 아양을 떨며 그녀 마음을 돌려 놓는데 애를 먹는다.


애비가일은 앤 여왕의 욕구와 자신감을 부추겨 함께 춤을 춘다. 비록 지팡이를 짚고 절둑거리며 추는 춤이지만 앤 여왕은 즐거워 한다.


애비가일의 2승이다.


 3 ROUND 

허브차 vs. 핫쵸코


식탐이 많아서 역대 여왕 중 가장 뚱뚱하다는 칭호를 받은 앤 여왕은 통풍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당연히 여왕의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식단을 관리할 수 밖에 없는 사라는 오직 차만을 마시게 하지만 새롭게 여왕의 하녀로 발탁된 애비가일은 먹고 싶은 것을 먹게 한다. - 비록 다 토해내어서 본인이 치닥거리를 하게 될 지라도 말이다.


이처럼 크고 작은 일상사를 통해 애비가일은 점차 승기를 잡아간다.


 4 ROUND 

키스 vs. 오랄


그러나 결정적인 한 방은 침실에서 이루어진다. 우연히 사라와 앤 여왕의 성행위 장면을 목격한 애비가일은 여왕의 성적취향을 공략할 목표를 세우고 몰래 침실에 들어가 앤 여왕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이들 간의 성행위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을 알 수는 없다. - 사라와 앤 여왕의 딥키스 장면 정도만 나온다. 하지만 앤 여왕이 "난 그 애가 혀로 해주는게 더 좋아"라고 사라에게 내뱉은 대사만으로 본다면 어쨌든 잠자리에서는 애비가일이 완전한 압승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애비가일의 카운터 블로우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 애비가일은 다양한 성적 경험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고, 성적매력이나 스킬이 뛰어 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애비가일을 짝사랑하는 마샴 대령을 홀리고 애달게 만드는 과정이나 그와 결혼 후 첫 날밤에는 섹스도 생략한 채 한 손 만으로 - 심지어 딴 생각에 열중하며 - 사정에 이르게 만드는 장면 들이 그것이다.  


 5 ROUND 

셰리주 vs. 머드샤워


이제 애비가일은 명색이 여왕의 침실하녀가 되었 잠자리에 들기 전 머드샤워를 제안한다. 앤 여왕은 머드탕 안에서의 기분좋음을 "이러다가 여기서 잠들어 빠져 죽으면 어쩌지"라는 말로 표현한다. 샤워가 끝나면 침실로 함께 갈 판이다.


그러나 사라의 반격이 시작된다. 불쑥 샤워실에 쳐들어와 함께 머드샤워를 하며 앤 여왕의 마음을 돌려 놓는다. 둘만 아는 호칭인 '몰리부인', '프리먼부인'을 사용하며 추억을 자극하고 래 지속되어 온 관계임을 과시한다. 마치 오랜 둘만의 습관이었던 듯 침실 전 셰리주를 권하자 여왕의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사라의 회심의 일격이다.


 6 ROUND 

오소리 vs. 천사


달콤한 사탕발림도 때론 그리운 법이다. 러시아 대사를 접견하기 위해 치장을 하고 나온 앤 여왕에게 사라는 메이컵이 '오소리'같다고 면박을 준다. 진심으로 여왕을 위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이성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다시 화장을 고치긴 했지만 왠지 유쾌하지만은 않다.


애비가일은 달랐다. 외모에 자신없어하는 앤 여왕에게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 같다고 얘기한다. 자신남자였으면 청혼했을 것 같다고 말이다. 한 거짓말이지만 왠지 기분이 좋다. 그리고 애비가일은 전혀 가식적이지 않은 말과 표정으로 천연덕스럽게 '예쁜말'을 잘한다.


승기는 이미 애비가일에게로 굳었다.


 7 ROUND 

말타기 vs. 가재 레이싱


여가나 오락에 있어서도 사라와 애비가일의 스타일은 엇갈림을 증폭시킨다. 건강과 품위를 위해서 종종 사라는 앤 여왕과 승마를 즐긴다. - 여왕에게 보호장구를 착용시켜야 하는 불편함을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애비가일은 앤 여왕의 일탈 본능을 자극하고 해소시켜 준다. 대표적인 것이 '가재 경주'이다. 물론 은밀한 여왕의 침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왕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없이 맘 껏 즐긴다.


영화 중에는 당시 귀족들이 즐기는 '지저분한' 유희 장면들이 등장한다. 돈내기 오리 경주나 질펀한 섹스 파티, 발가벗은 광대에게 토마토를 던지는 놀이 따위가 그것이다. 여왕이라고 해서 이런 욕구가 없었겠는가? 애비가일은 정말 그녀를 위한 여러 가지 즐거움(?)을 제공하는 셈이다.


 8 ROUND 

철장토끼 vs. 방목토끼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승부는 '최애토끼'에서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앤 여왕의 진정한 '페이버릿'은 17마리의 애완용 토끼다. (앤 여왕의 잃어버린 17명의 자식을 은유함)


궁전을 선물받을 정도로 신임을 얻고, 모든 권력의 중심에서 서 있는 사라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녀는 여왕의 친구이자, 연인이며, 유능한 참모이자 충직한 신하,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 역할까지 훌륭하게 수행해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여왕의 '최애토끼'에게는 인사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싫어한다. - 그 당시 영국에서는 토끼 게으르고 지저분한 동물이라고 여겨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애완토끼는 단지 영화 속 설정으로서 실제 토끼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애비가일은 '최애토끼'를 너무 예뻐한다. 철장에서 풀어 주고 함께 데리고 논다. '아가(토끼)'들의 이름을 외우고 생일을 기억한다. 앤 여왕의 총애가 사라에서 애비가일로 옮겨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다.

영화는 사라가 몰락하고 애비게일이 권력의 중심부에서 여왕의 총애를 누리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엔딩 씬을 통해 '과연 애비가일은 승리자일까?'하는 의문을 남긴다.  


권력에 도취된 애비가일은 여왕에 대한 애정이 점차 식어가며, 결국 '최애토끼'마저 발로 지그시 밟는 등의 학대를 한다. 눈치를 챈 것일까? 순간 앤 여왕은 고통을 느끼며 애비가일을 부르고, 애무하는 그녀의 머리채를 애증어린 손동작으로 움켜쥔다. 


앤 여왕과 애비가일의 얼굴, 그리고 17마리의 토끼들이 오버랩된다. 마치 사라가 그랬던 것처럼 애비가일의 몰락을 예고하는 듯 하다.




권력을 향한 그녀들의 미친 발버둥이 시작된다!
여왕의 마음을 차지하라!


이상과 같이 배급사에서 강조하는 관점에서 '여왕의 여자'들 간의 암투를 즐기는 것도 충분히 만족스럽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러티브를 따라가며 과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영화제 수상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단순한 상업영화는 아닐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수 많은 나의 상념에 방점을 찍은 것은 바로 엔딩 씬이다. 한참 동안 '과연 무슨 의미일까?' 하며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과연 누가 누구의 총애를 받으며, 누가 누구에게 총애를 준다는 말인가?
불완전한 대상을 향한, 불완전한 인간의 의한 사랑이란 참으로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라와 애비가일 모두 권력을 향한 욕망이 기저에 깔려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왕에 대한 애정과 충성의 발단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하지만 권력욕에서 비롯한 허위와 가식만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난 거짓말하지 않아요. 그게 사랑이니까


사라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사라는 거리낌없이 직설적인 언행을 남발했지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여왕을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연고로 착복이나 축재 남용이 을 수도 있었겠지만 앤 여왕이 위대한 통치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통풍으로 괴로워할 때는 연민을 느꼈으며, 친구이자 연인으로서의 역할도 대부분의 경우는 진심을 다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앤 여왕은 "넌 왜 날 걔(애비가일)처럼 사랑하지 않는거야?" 라며 쏘아 붙인다. 수 많은 헌신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최애토끼'에 대한 애정표현이 없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그렇게 매도하였던 것이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면 수학적인 논리는 무의미해진다.

부분이 전체를 압도하는 경우가 있다.


난 항상 내 편이야!


애비가일의 인생관 혹은 연애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살아 온 애비가일의 권력욕은 그 만큼 비장처절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가치관이 자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에게 적대적으로만  작용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감각과 쾌락을 추구한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목적지향적이지만 자신의 이익에 크게 반하지만 않는다면 협력하고 지지하며 적극적인 호의를 베푼다. 언제나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기꺼이 아낌없이 내어주고 기뻐하는 생활방식을 지녔다. 개방적이고 쾌활한 성격과 타고난 성적매력, 그리고 사교성 등이 그녀를 목적 달성으로 이끌어 가지만 기실 그 주변의 인물들 또한 이러한 특성들로 인해 도움을 얻는 것이다.


여왕이 17명의 자식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눈물짓는 모습이나 토끼에 대한 애정어린 돌봄이 분명 100% 가식과 연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호의는 사랑이 아니다.

외형은 본질을 넘어설 수 없다.




살아가면서 사랑의 형식에 대해 갈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탕을 달라며 떼쓰는 아이에게 달콤한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건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굳이 엄격함을 내세우곤 하는 것이 아니던가. - 사라와 애비가일의 사랑의  형식이 서로 상이하듯 말이다.


과연 무엇이 사랑일까?

과연 그 사랑은 순수한가?


사리사욕이 없으며, 세간의 이목에 초연하며, 반대급부를 상정하지 않으며, 오롯이 상대방만을 위하는 그런 마음이던가? 상대방은 나의 이런 순수함을 받을만 하며, 나를 인정하며, 변치 않으며, 흔들리지 않으며, 믿을만 한 존재이던가?



부질없음이다....


단지 우리는 연습할 뿐이다.

사랑은 우리가 이루어 낼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녀의 '더 페이버릿'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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