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는 제철이 없다

나이가 줄 수 없는 뜨거운 계절

by 난향C


흔히들 ‘공부에도 때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 말 속에는 배움이란 혈기 왕성한 청춘들이 미래를 담보로 치러내는 격렬한 통과의례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었다. 60세에 다시 대학 강의실에 앉아 안경을 고쳐 쓸 때만 해도, 내 인생의 배움이라는 계절은 이미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한 장씩 넘기고, 실습실의 열기 속에 몸을 던지며 나는 깨달았다. 배움에는 제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방을 메고 나서는 그 순간이 바로 가장 푸른 봄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60대의 배움은 고통스럽다. 젊은 동기들이 한 번 훑어보고 돌아서면 외워지는 단어들이, 나에게는 열 번을 읽어도 낯설게만 다가온다. 하지만 그들과 나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이론을 암기하지만, 나는 이론을 ‘해석’한다. 조리 원리를 배울 때, 20대의 학생들은 교과서의 문장을 머릿속에 집어넣느라 바쁘지만 나는 30년 넘게 가족의 식탁을 지켜온 주부로서의 감각으로 그 원리를 체득한다. ‘불 조절의 미학’이나 ‘식재료의 궁합’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 내 머릿속에는 지난 기간 부엌에서 보냈던 수만 번의 아침과 저녁의 풍경이 데이터베이스처럼 펼쳐진다. 삶의 경험이라는 거대한 배경 지식이 있기에, 나의 배움은 얕은 암기에 그치지 않고 삶의 지혜와 결합하여 훨씬 깊은 향기를 낸다.

33년 공직 생활 동안 내가 썼던 글들이 정해진 규격과 틀에 박힌 ‘수단’으로서의 문서였다면, 지금 내가 써 내려가는 리포트와 과제들은 오직 나 자신을 채우고 이웃과 나누기 위한 ‘목적’ 그 자체다. “이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으려고 그러세요?”라고 묻는 이들에게 나는 웃으며 답한다. “내 아이에게 더 건강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어서, 그리고 내가 배운 이 손맛으로 이웃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고 싶어서요.” 승진이나 취업이라는 결과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이 자유로운 공부가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한 열정을 끌어올린다. 보상이 예정되지 않은 배움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럽고도 고귀한 유희라는 것을 나는 60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 배움의 계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 것은 디지털이라는 낯선 장벽을 넘는 과정이었다. ITQ 자격증을 준비하며 끙끙대던 시간, 컴퓨터 모니터의 작은 아이콘들과 씨름하며 밤을 지새우던 그 밤들은 나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새로운 언어’를 가르쳐주었다. 처음에는 많은 것이 서툴러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하나씩 기능을 익히고 나만의 문서를 완성해갈 때마다 나는 내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사람임을 느꼈다. 60대의 배움은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행위가 아니라, 요즘 세상의 속도에 발을 맞추며 당당하게 걷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물론 몸은 정직하게 나이를 말한다. 점심시간도 없이 이어지는 빡빡한 수업 일정에 이틀을 꼬박 수업하고 나면 남은 날들은 앓아누워야 할 정도로 체력은 바닥을 친다. 하지만 교정에 피어난 개나리와 봄꽃들 사이를 걸으며 동기들과 햇볕을 쬐는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내가 60년 동안 잊고 살았던 ‘나’라는 사람의 계절을 다시 만난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말할 때, 나는 가장 좋은 때라고 확신한다. 1988년 그 치열했던 시절의 열정과는 또 다른, 은근하고도 깊은 배움의 열기가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과일에도 제철이 있듯 인생의 배움에도 가장 맛이 드는 시기가 있다면, 나는 바로 지금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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