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빚어낸 나만의 나침반
대학 강의실의 오후,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내 책상 위의 전공 서적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성벽처럼 느껴진다. 안경을 고쳐 쓰고 한 줄 한 줄 정독해 내려가지만, 서글프게도 나의 뇌는 이제 들어온 정보를 가두어둘 줄 모르는 낡은 그물과 같다. 옆자리에 앉은 젊은 동기들이 마치 최신형 고속 메모리칩처럼 지식을 순식간에 저장하고 활용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나의 굳어버린 기억력은 야속한 세월을 원망하게 만든다. 방금 읽은 문장이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휘발되어 버리고, 교수님이 보여주는 핵심 키워드들은 내 머릿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그 막막한 정적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에게는 저 젊은이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60년이라는 세월이 켜켜이 쌓여 만든 거대한 ‘인생의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배움은 이제 ‘암기’가 아니라 ‘해석’의 영역에 머문다. 젊었을 때의 암기력이 휘발성 강한 최신식 컴퓨터의 램(RAM)과 같다면, 60대의 배움은 수만 권의 장서와 삶의 기록이 꽂힌 오래된 도서관의 서가와 같다. 새로운 지식을 접할 때, 나의 뇌는 단순히 그것을 외우려 들지 않는다. 대신 내 안의 도서관에서 그와 유사한 과거의 경험과 노하우를 찾아내어 연결한다. ‘아, 이건 예전에 내가 공직 생활 30년 동안 현장에서 겪었던 그 갈등의 원리와 닮았구나’, ‘이 조리법은 내가 평생 가족을 위해 끓여온 국물 맛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구나.’ 속도는 느릴지 모르나 그 깊이는 비할 바 없이 깊다. 파편화된 정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거대한 지도 위에 새로운 지식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혜의 힘은 단순한 학습 능력을 넘어 내 삶을 지탱하는 강력한 근육이 되었다. 33년이라는 긴 공직의 세월과 최근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던 투자 사기라는 거친 풍랑을 지나오며, 나는 ‘회복의 기술’을 터득했다. 예전 같았으면 작은 실수 하나에도 세상이 무너질 듯 괴로워하고 주변의 시선이나 남들의 말 한마디에 갈대처럼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지금 마주한 이 고통이 결코 내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이 많은 사람은 위기 속에서도 결코 사건을 과장하지 않는다. 투자 사기로 전 재산을 잃고 대상포진에 걸려 비명을 지르던 그 지옥 같은 순간조차,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관조하는 법을 배웠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은 나에게 더는 진부한 경구가 아니라, 사투 끝에 얻어낸 뼈아픈 진리였다. 어떤 선택을 내리든 이제는 외부의 소음이나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나에게는 60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교하게 다듬어온 ‘나만의 나침반’이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지금이 위기다”, “이제 끝이다.”라고 외칠 때, 나는 고요히 내 안의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을 믿으며 다시 신발 끈을 묶는다.
무엇보다 세월이 준 가장 값진 선물은 사람을 대하는 ‘온도’와 ‘거리’를 읽는 안목이다. 젊은 시절에는 사람의 화려한 언변이나 겉모습에 쉽게 현혹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에 심장이 도려나 가는 듯한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사람의 진심은 그가 내뱉는 유창한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온도와 평소의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선택한 ‘침묵의 의미’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상대방이 침묵할 때, 그 침묵이 슬픔의 깊이인지, 조심스러운 배려인지, 혹은 정중한 거절인지를 헤아릴 수 있게 되면서 나는 관계에서 오는 불필요한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타인의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필요한 만큼의 ‘적정 거리’를 두는 법을 알게 되니, 관계는 예전보다 훨씬 맑고 담백해졌다.
이것은 책에서 배운 지식으로서의 ‘공감’이 아니다. 직접 겪어보고, 처절하게 견뎌본 시간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공감이다. 누군가 삶의 무게에 눌려 신음할 때, 나는 그에게 섣부른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 고통의 무게를 묵묵히 함께 견뎌줄 뿐이다. “힘내”라는 가벼운 격려보다 “그 고단한 길을 나도 걸어와 봤다”라는 짧은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거대한 지지대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3년 공직 생활 중 민원인들의 거친 항의를 받아내며 쌓인 인내와, 유산의 아픔을 딛고 얻은 딸을 키우며 길러온 모성은 나를 타인의 아픔에 깊이 주파수를 맞추는 ‘성숙한 공감자’로 만들었다.
나의 이 풍부한 경험들은 이제 이야기의 원천이 되어 세상과 나를 연결한다. 내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 한 줄, 유튜브에서 낭독하는 책의 구절들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다. 내 삶의 궤적이 녹아들어 있기에, 그것은 누군가의 밤을 달래주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인생의 길을 잃은 이들에게는 조그만 등불이 되리라 생각한다. 삶을 말과 글로 풀어내는 힘은 20대의 명석함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오직 세월이라는 혹독한 수업료를 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창작의 영역이라 할 것이다.
나는 비록 암기력은 예전만 못하고 안경을 고쳐 써야 글자가 겨우 보이지만, 지금의 내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나는 여기까지 성실하게 나 자신을 살아냈다. 내가 걸어온 이 길 위의 투박한 발자국들은 이제 뒤따라오는 이들에게는 이정표가 되고, 나 자신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긍지가 된다. 60세의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가득 차 있던 지혜들을 꺼내어 보석처럼 닦아내는 과정이다. 나는 이제 안다. 배움의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그 지식을 내 삶에 어떻게 녹여내어 누군가에게 따뜻한 길을 만들어 줄 것인가가 본질임을 말이다. 나는 오늘도 느리지만 깊은 걸음으로, 나만의 속도대로 인생이라는 거대한 학교를 탐험하며 내 삶의 두 번째 전성기를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