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계로 걷는 아름다운 여정
우리는 평생을 ‘도착 시각’을 비교하며 살아왔다. 학교에서는 등수라는 도착시간에, 사회에서는 승진과 집 장만이라는 도착시간에 쫓겼다. 주변을 둘러보면 누군가는 이미 저 멀리 앞서가 자리를 잡은 것 같고, 누군가는 내가 이제야 밟은 출발선을 수십 년 전에 통과한 것처럼 보였다. 60세에 다시 대학 교정에 섰을 때,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 역시 이 ‘늦음’에 대한 자격지심이었다. 자식뻘 되는 동기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의실을 누빌 때, 무거운 조리 도구 가방을 끌며 숨을 헐떡이는 나의 모습은 마치 길을 잃고 뒤처진 낙오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늦었을까.” 이 질문은 밤마다 나를 찾아와 잠을 설쳐대게 했다.
하지만 한 학기를 보내고, 다시 두 번째 학기를 맞이하며 나는 비로소 인생의 비밀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인생에는 전 국민이 동시에 골인해야 하는 정해진 도착시간 따위는 없다는 사실이다. 늦게 도착한 사람은 결코 실패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는 남들보다 더 많은 길을 돌아온 사람일 뿐이다. 내가 돌아온 그 길 위에는 33년이라는 치열한 공직의 책임이 있었고, 가족을 위해 나를 지워야 했던 헌신이 있었으며, 늦게 얻은 귀한 딸아이를 지켜내야 했던 간절한 시간이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이 시간을 ‘공백’ 혹은 ‘지체’라고 부르지만, 이제야 나는 이해한다. 그 시절은 결코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기초 공사’였음을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마음의 지반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첫 학기에는 남들과 속도를 맞추려 애쓰느라 늘 가슴이 두근거리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리포트 하나를 써도 젊은 친구들보다 늦을까 봐 전전긍긍했고, 실습 시간에도 행여나 내 손놀림이 더뎌 전체 진행에 방해가 될까 봐 눈치를 살피기 일쑤였다. 하지만 두 번째 학기부터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조금 늦으면 어때, 내가 이 과정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지.” 비교의 시선을 거두고 오직 나만의 속도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큼만 천천히 나아갔을 뿐인데, 오히려 자연스럽게 성적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조급함이라는 안개를 걷어내자 비로소 배움의 본질이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빠른 성취를 성공이라 부르지만, 나는 이제 ‘늦은 도착’이 가진 고귀한 힘을 믿는다. 늦게 도착해 본 사람은 조급함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가진다.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스스로 갉아먹지 않는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련 앞에서도 스스로를 버리지 않고 끝내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아는 ‘회복의 기술’을 가진다. 늦은 출발은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어디로 가야 할지 명확히 알고, 주변의 풍경을 충분히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강점이 된다. 인생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각자의 풍경을 담아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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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빨리” 달려가는 채찍질이 아니라, “나답게” 도착하겠다는 자기 확신이다. 조금 늦더라도 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보폭으로, 내가 즐겁게 감당할 수 있는 짐을 지고 가는 것. 남들이 이미 지나가 버려 텅 빈 길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걷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나는 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다. 60세에 받는 학사모는 20대의 그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값지다. 그 안에는 남들은 보지 못한 굽이진 길의 풍경과 비바람을 견뎌낸 인내의 향기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계속~~~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만 뒤처진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33년의 공직 생활과 60세의 대학 생활을 통과해 온 선배로서 이 말을 꼭 건네고 싶다. 늦게 도착해도 정말 괜찮다고. 중요한 것은 도착한 시각이 아니라, 당신이 도착하려는 마음을 아직 내려놓지 않았다는 그 고귀한 사실 자체라고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만의 시간표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 시간표는 남의 것과 비교하는 순간 흐릿해지지만, 나만의 속도를 믿는 순간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