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푸동 공항
중국 상하이 푸동 공항은 정말 넓었다. 동아시아 3대 허브 공항(인천, 홍콩, 푸동) 중 하나이며 여객과 화물 수송량이 중국에서 최대다.
그런데 밤 12시를 지난 시각 사람이 거의 없는 공항은, 마치 이주민이 채 도착하지 않은 미래 도시 같았다. 어렵게 이주를 허락 받고 가까스로 입성한 생명체들이 흔히 그렇듯, 고심이네는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고 정해진 곳을 향해 신속하게 걸어갔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탔고 문 닫은 상점 거리를 오래 걸었다. 칠면조 목을 베어 놓은 것 같은 구조물 –낮에 보면 개성 있고 귀여울까-을 그저 곁눈으로 흘깃거리며 서늘한 기분으로 걸었다. 그래봤자 갈아 탈 비행기의 탑승 대기실로 가는 것이겠지만.
마침내 다다른 그곳은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이런 일도 있나. 탑승구 앞 대기실은 원래 기다리라고 만들어 놓는 게 아닌가. 기다리는 곳을 기다리게 하다니. 그러나 아무도 설명할 생명체가 없어 보여 고심이는 당연히 그러시겠죠, 하는 너른 마음으로 아무 데나 퍼질러 앉았다. 통수들은 결코 스타일을 내줄 수 없다는 듯 벽에 기대어 버티는 듯했으나 슬그머니 반쯤 앉다가 결국 퍼질러 앉았다. 처음부터 단호하게 앉은 고심이가 더 스타일 있어 보였다.
오래 앉아 있으니 엉덩이가 배겼다. 한참을 일어섰다 앉았다 하는데 탑승 2시간 정도 남겨두고 철문이 열렸다. 아 눕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기다림이었다.
대기실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뭔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디자인 욕심을 크게 내지 않은 듯 우리나라 7,80년 대 동네 미용실 대기 의자처럼 생긴 긴 의자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 의자에 한 사람씩 가더니 신발을 벗고 눕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사람 수에 비해 의자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중국 대기실은 원래 이런가. 아니면 밤 비행기를 타거나, 오랜 시간 경유를 해야 하는 손님들에게 특화된 대기실인가. 레자(?) 가죽의 의자 끝엔 베개로 삼기 딱 좋은 높이의 팔걸이가 있었고, 등받이는 높아서 서로 누운 민망한(?) 모습을 가려 주었다.
스타일왕자 큰통수는 허리를 꼿꼿이 하고 앉는 칵테일 바처럼 생긴 테이블 구역으로 갔다. 어쩐지 그쪽은 서양 사람들과 젊은 친구들 위주로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고심이와 작통수는 중국인들의 홈그라운드에 슬쩍 남았다. 신발은 차마 벗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기대어 앉아 남의 동네 마실 나온 애들 마냥 뚤레뚤레 주위를 구경했다.
곧장 잠에 빠진 사람도 있고 그저 편하게 누워 휴대폰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가족 단위도 많아서, 밤 12시가 지난 시각 아이들은 칭얼대다가 잠이 들었고 어른들도 잠시 눈을 붙였다.
고심이는 지금 잠들면 시차를 못 맞출 것 같아서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넣어온 소설책을 펼쳤다. 앞쪽의 어떤 남자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우는 아이를 안고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아빠인 듯한 남자는 짙은 눈썹에 가무잡잡한 피부인데 꽤 어려 보였다. 아빠가 노력할수록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앉아 있던 엄마가 아이를 받아 안자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이미 지친 듯 보이는 엄마는 아이를 다부지게 안지 못하고 느슨하게 엉덩이를 받쳤다. 아이가 엄마 목을 세게 끌어안자 잠시 엄마의 크고 짙은 두 눈이 등불처럼 켜졌다. 하지만 이내 등불은 꺼지고 엄마의 고개가 자꾸 앞으로 꺾였다. 아빠가 다가와 허벅지로 둘을 받치고 서자 다리 사이로 엄마의 찰랑이는 머리카락이 길게 쏟아졌다.
고심이는 다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쉽게 책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 지치고 어린 가족은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집으로 가는 길일까. 집에서 나오는 길일까. 한참 후 화장실에 다녀오다 보니, 엄마가 다시 아이를 안고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제야 잠든 아이의 작은 머리통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서로에게 힘든 순간이리라. 앞으로 얼마나 이런 순간들을 보내야만 어른 가족이 되는 걸까. 지나왔기에 쉽게 애틋한 마음이 되어, 고심이는 아이와 엄마의 머리를 원격으로라도 쓰다듬어 주려는 듯 마른 손을 비볐다.
탑승 시간이 다가오자 줄을 서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모두 부스스 잠을 깨고 짐을 챙겼다. 항공사 직원 몇몇이 미처 일어나지 못한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조용히 잠을 깨워 주었다. 마치 명절에 모인 친척들 사이를 오가며 가족을 깨우는 모습 같았다. 밤 시간이라서 볼 수 있는 풍경인가? 아니면 중국이라서?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활주로 비행기들 사이로 언뜻 물이 비쳤다. 강물일 리는 없고, 그새 비가 내렸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