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중국까지는 작은 에어버스 A321을 타고 왔는데 브뤼셀까지는 보잉787, 대형 여객기로 간다. 좌석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슬슬 졸리기 시작했는데, 잠들면 기내식 먹을 때 또 일어나야 할 것 같아 버텼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한 시간도 안 돼 기내식이 나왔다. 도자기 그릇에 빵, 음료, 과일, 덮밥이 나왔는데 꽤 푸짐하고 입맛에도 맞았다.
밥을 먹고 조금 지나자 기내에 불이 전부 꺼졌다. 본격적인 밤 비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저것 하느라 부스럭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잠들 준비를 했다. 밤 비행기라서 그런가 빈 좌석이 꽤 있었다. 다들 자연스럽게 비어 있는 곳을 찾아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승무원들도 배려의 동의를 보냈다. 작통수도 자리를 옮겼다. 고심이도 큰통수에게 자리를 비워 주고 일어섰다. 그새 자리가 다 차고 뒤쪽 줄 하나가 비어 있었다. 사고 시 비교적 안전한 곳이 뒤쪽이라고 하는데 어쩐지 바로 뒤에 꼬리 날개가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흐드드했다.
사람들이 금세 잠이 든 듯 사방이 조용했다. 적어도 고심이가 있는 곳, 즉 이코노미 칸에는 독서등 하나 밝힌 데 없이 깜깜했다. (독서에 큰 의의를 두지 않아 이코노미 석을 탄 건가, 이미 이코노미 석에 탔으니 독서를 등한시하는 건가.)
고심이는 멍하니 어둠을 보고 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제 한 배를 탔다, 아니 한 비행기를 탔다. 세계 각지에서 온 낯선 사람들과 한동안은 절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공중에서 함께 잠이 드는구나. 그것도 38000 피트 고도에서. 불현듯 기장의 인사말이 다시 떠올랐다.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안취앤 요우 슈스 더..., safe and comfortable journey... 그렇다. 흘려듣던 의례적인 인사말이 또렷이 감각되는 순간이 있다.
고심이는 얼마간 독서를 하다가 그 힘(?)을 빌어 자연스레 잠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쨍한 독서 등을 켜서 이 안온한 어둠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장님 말씀 하나 믿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순간. 고심이도 옆의 팔걸이를 젖히고 모로 길게 누워 보았다. 팔 다리가 으아아아 소리를 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눕코노미로구나... 기장님 comfortable은 충분히 이뤄질 듯해요. 이제 safe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