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여자가 20대 남자에게 말 거는 법/번외편2

자두의 눈물

by 리영

도착 시간이 가까워질 때쯤 일어나니 승무원들이 식사를 서빙하고 있었다. 어 항공사 안내에 ‘one meal’이라고 돼 있었는데... 중국항공 음식 인심이 좋네. 실제 아시아나는 음식이 적었고 (단시간 비행이라 그럴 것이다) 냅킨이 아주 컸으며, 하이난 항공은 음식이 푸짐했고 냅킨은 아주 작았다.(무슨 의미일까.) 아침이라 소시지와 간단한(?) 튀김이 나왔는데 조금 기름졌다. 후식으로 나온 열대과일은 색깔은 예뻤는데 맛이 밍밍했다. 뭔가 혀끝에 아쉬움이 남는 찰나 아! 하고 무언가 떠올랐다.


떠나던 날 지인이 시골에서 캔 감자와 깨끗하게 씻은 자두를 몇 개 주었다. 감자는 서늘한 곳에 두었으나 씻은 자두는 아무리 냉장고라도 2주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공항에서 먹어야지 하면서 배낭에 넣어서 왔다.

체크인과 수화물 위탁을 마치고 들어와 여유 있게 점심을 사 먹었다. 느끼했던 패스트푸드의 뒤끝을 지우려고 자두를 꺼내려는데 어쩐지 주변 공기가 쎄했다. 미세하지만 두 통수가 고심이를 외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 많은 데서 그걸 꺼낸다고? 우리 엄마가?

차라리 대놓고 말하면 대놓고 우겨 볼 텐데, 자두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가타부타 말없는 그들의 저항이 완강하게 느껴졌다. 배낭으로 들어갔던 고심이의 손이 빈 채로 나오는 걸 보더니 통수들은 잽싸게 쟁반을 들어내고 뒤처리를 마쳤다. 이렇게 기민한 사람들이었어?

결국 자두는 버려질 운명인가. 고심이는 털레털레 걸으며 생각했다. 가만 여기는 이미 보안검색을 통과한 지역 아닌가. 보안 검사 시 자두가 문제가 안됐다면 혹시 비행기에 가지고 타도... 얼른 시침이에게 물어보고 검색도 해 보았다. 된단다. 다만 도착 국가에 따라 농산물에 대해 검역이 엄격할 수 있으니 비행기 내에서 처리를 마치는 게 안전하단다. 아 되는구나. 기내식 먹고 후식으로 먹으면 딱 되겠다. 그땐 저들도 좋아라 먹겠지.

(안 줌.)


인천-푸동 가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고 앙증맞은 과일 푸딩을 후식으로 먹느라 자두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또 푸동 공항에서 장시간 대기하다가 부랴부랴 브뤼셀 행 비행기에 오르니 부랴부랴 식사가 나와서 부랴부랴 먹고 곤히 자느라 자두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이제야 떠오른 거다.

집에서 한 개 먹어봤을 때 자두는 적당히 말랑말랑한데다가 새콤달콤한 게 딱 고심이 취향이었다. 생각만으로 침이 고였다. 얼른 자두 봉지를 꺼내 펼쳤다. 자두는... 다 터져 있었다. 터진 것으로도 모자라 서로 엉겨 붙어 있어서 몇 개의 자두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무거운 것도 없는 배낭 안에서 무엇에 눌렸는지 물까지 줄줄 흘렀다. 자두들, 서로 부둥켜안고 운건가. 이런 취급 받을 줄 알았다면 냉장고에서 우아하게 스러지는 게 나을 뻔했다고.

난감하고 미안했다. (자두에게인지 자두를 준 사람에게인지.) 속죄하는 마음으로 스푼을 들고 봉지 속 자두를 퍼 먹었다. 좀 많다 싶었지만 말끔히 다 먹었다. 자두는 더 이상 새콤하지 않고 들큰하기만 했다. 눈물로 빠져나간 건 새콤함이었던 게야. 다 먹은 봉지를 만져 보니 씨가 5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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