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여자가 20대 남자에게 말 거는 법 12

작은 나라 벨기에

by 리영

벨기에에 대해 뭘 알고 있더라. 와플? 초콜릿?

사실 여행하려는 나라들 전부가 그렇다. 한두 단어 주워섬길 수 있을 뿐 가본 적도, 관심을 크게 가져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왜 이 나라들이었을까. 낯섦에 대한 끌림과, 도시면서 한적한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이너적(?)인 감성이 작동한 것 같다. 그리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승승장구해온 역사 속 빌런의 나라들과는 성격이 다를 것 같다는 선입견도 한몫했다. (선입견이었다.)


복잡하고 새롭고 활기찬 곳에 끌리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그 활기가 생성만이 아니라 소진이나 소멸과도 친하다는 걸 아는 나이다. 오히려 고요함 속에 창조의 기운이 숨어 있음을 깨닫는다. 또 새로운 거 좀 안 만들면 어떤가, 왜 많은 낡은 것의 값을 함부로들 매기는가, 비슷한 처지가 되고서야 비로소 질문을 던져 본다.

통수들이 배운다면, 대도시의 까마득한 마천루보다는 건물과 자연이 수더분하게 어울리는 건축에서 배우면 좋겠다. 디자인 또한 그런 마음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대놓고 바랄 수는 없으니 그저 기회를 만들어 들이밀어 볼 뿐.


계획을 짜면서 나라들을 이해하는 단어를 조금 더 갖게 되었다. 벨기에와 연결되는 낱말들, 그랑플라스 광장, EU본부, 르네 마그리트(벨기에 화가였구나), 피터 브뤼겔(고심이가 좋아함), 만화, 스머프, 오줌싸개 동상, 다이아몬드, 맥주 등. (아 베네룩스3국도.)

구글지도에서 벨기에는, 손가락으로 조금만 줌인 해도 나라 이름이 사라져버릴 만큼 작다. 면적이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한 것과 비슷하다. 북쪽에 네덜란드, 동쪽에 독일, 남쪽에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예상할 수 있듯 그 강대국들 사이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다. 대부분 잘 이겨내 왔지만 뼈아프게 남은 결과 중 하나는, 언어가 다른 두 지방이 선명하게 나뉘어 갈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쪽의 네덜란드어를 쓰는 플랑드르 지역과 남쪽의 프랑스어를 쓰는 왈롱 지역. 이들은 언어, 지리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골이 깊다. 그래서인지 벨기에는 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방송이나 신문도 없다. 각 언어별로 따로 운영하며 교육 제도도 별개다.

왕이 있는 입헌군주국인데, 실제 정치는 각 지역의 연합 정부가 한다. 갈수록 두 지역의 협상이 어려워져 정부 구성이 1년 이상 지체된 적도 있다 하니 심각하다. 늘 그렇듯 침략하고 흔들어대는 나라들은 따로 있는데, 결과로 남은 지역들끼리만 반목하게 된 건 아닐까.

하지만 복잡한 사정을 지니고서도 벨기에는 강한 나라다. 일인당 GDP는 세계 16위 정도(한국 26위 정도)로 부유하며, EU와 NATO본부를 품은 유럽 정치, 외교의 중심지다.


관광객에게는 이런 속사정이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정신없는 고심이가 예약을 잘못하는 바람에 하루치의 벨기에가 날라갔다. 오전 8시에 도착해서 저녁 6시에 암스테르담으로 떠나야 한다. 적은 시간으로 최대한 브뤼셀을 돌아봐야 한다.


우선 자벤텀 공항 역에서 미디역까지 기차로 이동했다.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곳이 미디역이기 때문이다. 그곳 락커에 캐리어를 두고 브뤼셀 중앙역으로 다시 나올 것이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중앙역에서 시작하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60대 여자가 20대 남자에게 말 거는 법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