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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훈 Jun 05. 2023

이들은 왜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 함께 뛰는가? (2)

동갑내기 러닝크루 관찰기 2편 : 왜 하필 동갑내기 러닝크루인가?

2.2. 왜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 같이 뛰는가?


(1) 동갑의 의미


나와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친구’들이다


  이제 두 번째 질문 “왜 이들은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 뛰는가?”로 들어가보자. 구속력 및 부담감과 더불어 집단 내의 유대감이 약하다는 러닝크루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무색하게도, 동갑내기 러닝크루들에서는 여타 사회인 러닝크루들에 비해 크루원들 사이의 유대감이 강하게 나타난다.

 

  크루원들이 모두 동갑이기에 크루 자체적으로 구성원들을 모두 친구로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기존의 크루 멤버들은 처음 크루 러닝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평어를 사용한다. 언어 사용에서부터 서로를 친구로 여기며 편하게 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평어의 사용은 크루원들로 하여금 동갑내기 러닝크루를 활동하기 편한 곳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B : 동갑내기 크루에서는 반말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어요. 동갑이라는 걸 이미 아니까 처음 만났을 때만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몇 초 만에 말을 놓아요. 또 여러 명이 섞여 있으면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돼요. 

 

    G : 저희는 보통 세 마디 정도 굉장히 어색하게 존댓말 하다가, 아 그냥 우리 말 놓자 해서 반말해요.

 

  러닝크루들 참여관찰에서, 기존 구성원들은 경어를 쓰는 새로운 구성원들에게 다가가 “우린 친구니까 서로 반말을 해”라며 평어 사용을 권유하고 있었다. 평어의 사용을 통해, 크루원들은 서로 초면인 상황의 어색함과 경어가 주는 거리감을 해소했다. 러닝크루원들은 평어가 친밀감 형성에 기여한다고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이렇게 평어는 서로가 빠르게 친밀해진다고 여기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평어가 주는 친근한 분위기는 크루원들이 동갑내기 러닝크루를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집단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H : 다른 크루는 나이대가 섞여있어서 조심스러운데 여기는 확실히 편하고, 편한 만큼 나 자신 진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잘 표현할 수 있는 집단 같아요.

 

    I : 동갑이다 보니 각자 비슷한 고민, 고충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공감대도 있고 문제해결 방법을 공유해서 서로 도움이 돼요.

 

  서로 편하게 대하려는 크루 내 분위기에 더해, 동갑은 스스로에 대해서, 서로에 대해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동갑이 주는 편안함은 자기 자신을 보다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한다. 편한 분위기에서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나 자신 진짜의 모습을 발견’한다. 또한 동갑 친구와의 비교를 통해,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고민들을 나누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용이하다고 느끼는 모습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G: 다른 동호회를 나가긴 하는데, 확실히 다른 데는 좀…. 다른 목적으로 온 것 같은 사람들도 있어 보이고, 서로에 대한 신분이나 나이도 모르니까 불편함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는 다 동갑 친구니까 편한 것 같아요.

 

    A: 동갑내기 크루여서, 처음에 가도 “몇 살이세요” 물어볼 필요 없이 ‘우리는 친구야 동지야,’ 이런 생각으로 으쌰으쌰 하게 돼요.


  ‘동갑’이란 특성은 상대방의 신분이 보장된다는 믿음을 준다. 아무리 동갑이라고 하더라도, 나이 외의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물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예컨대 인터뷰에서 언급된 “신분”은 동갑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정보이다. 그러나 동갑이라는 이유 덕분에, 상대방의 과거나 직업, 현재 하는 일 등 나이 외의 다른 요소들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임에도, 크루원들은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서로 힘을 합치고 의지할 대상으로 여긴다. 즉, 동갑이라는 이유 덕분에, 크루원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신뢰한다. 

 

  또한 크루 내의 편한 분위기는 크루원들 간의 위계를 형성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위계가 생기는 순간 동갑끼리의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는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 크루원들 사이의 관계는 물론, 일반 크루원과 운영진과의 관계에서도 위계를 형성하지 않고자 의식하고 있었다.  

 

    E: 다른 크루에 갔을 때는 위계가 있으니까 사건사고들이 많아요. 속된 말로 ‘삔또’가 나간다고 하지요. 의 상하는 일이 굉장히 많아요. 예의를 지켜야 한다거나. 사람들이 피로도 풀고 스트레스도 풀려고 왔는데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달까요. 동갑내기는 그런 게 없으니까요. 동갑이니까 기분도 안 상하고. 또 다른 크루들은 자기 크루를 위주로 활동하고, 크루 몇 개를 동시에 못 하게 하는데, 우리는 그런 거 없이, ‘여기만 해야 돼’ 이런 게 아니라 자율적으로 '다른 크루 가입해라' 이렇게 권장하고요.

 

    H: 동갑 크루의 장점은 의견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고, 상하관계가 없는 것, 빨리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것이에요. 단점은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간다. 의견이 너무 많은데 본인들만의 생각이 다 있이 말한 거라 (대부분이 좋은 의견이긴 해요)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아요. 리더가 있어도 상하관계가 없어서 크게 의미 없어요.

 

  동갑이라고 기분이 상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예의를 지켜야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동갑이란 특성이 격식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추구하도록 만들고, 이러한 분위기는 기분 상할 일도 ‘친구니까’라는 식으로 웃으며 넘어갈 수 있도록 한다. 동갑은 또한 크루 리더가 ‘상하관계’에 따른 결정보다는 ‘친구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도록 한다. 또한 특정 개수 이상의 러닝크루 가입에 제한을 두는 일부 러닝크루들과 달리,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는 상대방의 다른 활동들에 대해 간섭하지 않았다. ‘우리 모임에 나와야 해’보다는 ‘다른 모임에 나가봐’라는 식으로, 타 러닝크루 활동을 적극 권유하고 있었다. 위계가 없는 친구 사이라고 의식하기에, 친구들의 의견과 생각과 생활을 더욱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G: 원래 동호회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고 또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는데, 여기는 동갑이다 보니까 불편함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친구 사귀려는 느낌? 


    I: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첫 단계가 수월해지는 느낌이에요.

 

    E: 러닝크루 멤버 느낌보다는 ‘찐친’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동갑내기 러닝크루’의 참여자들은 ‘러닝’보다는 ‘동갑’과 ‘크루’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크루원들은 동갑내기 크루를 단지 ‘같이 달리기를 하는 모임’을 넘어, ‘동갑 친구들을 만나는 모임’으로, 동갑내기 러닝크루를 사람을 만나기 편한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다른 집단에 비해 불편함이 덜하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생각 때문에 “친구 사귀려는 느낌”으로 크루에 가입했다. 크루 활동도 친구, 즉 “찐친”을 만나러 온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동갑내기 러닝크루는 동갑 친구들 간의 사교의 장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갑내기 크루 내의 분위기, 크루활동 참여자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루원들끼리의 라포 형성이 용이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E: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까 동질감도 느끼고 많은 라포를 형성하는 것 같아요.

 

    D: 여기는 뭔가 친구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나이조건으로 인해) 폐쇄적이지만 그만큼 친목이 단단한? 한번 활동하기 시작한 친구들은 이탈 없이 되게 오래가거든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라포 형성이 잘 되는?

 

  러닝크루원들은 비슷한 이유와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크루에 참여했기에 이들은 서로 동질감을 느끼며 라포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러한 크루 내 라포는 책임감으로 이어졌다. 동갑내기 러닝크루는 몇 안 되는 ‘편하게 친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이며, 그렇기에 크루원들은 이 집단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다. 동갑내기 러닝크루와 그 구성원들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며 책임감을 가졌다. “친구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유지하기 위해 러닝크루원들은 각자의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있었다.

 

    D: 초반에는 한 7-8명 정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가 사회초년생이다보니까 다 바쁘고, 그래서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하다가 운영진이 됐어요. 자주 나오던 사람들끼리요.

 

    C: 동갑만 모인 크루라 구성원 수 자체가 제한적이에요. 내가 (크루를) 나가면 크루 존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책임감이 생기고, 동갑내기 모임 자체가 희소한 만큼 멤버 교체가 잦지 않고 다들 애착을 가져요.

 

    A: 여긴 제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예요. 친구들이 제가 이 크루랑 연애를 한다고 얘기해요. 마음대로 잘 안 되면 슬퍼하기도 하고, 잘하면 기뻐하기도 하고,

 

  즉, ‘동갑’은 동갑내기 러닝크루 활동 참여자들로 하여금 서로가 모두 ‘나의 친구들’로 인식하게 만든다. 동갑내기 러닝크루는 평어의 사용을 통해 위계 없는 편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참여자들은 친구를 만나러 나오는 사교의 장으로 집단을 인식한다. 이는 참여자 간의 친밀감을 빠르게 형성해나가며, 크루 내의 분위기와 친밀감은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을 수월하게 한다. 이는 집단 내의 라포 형성을 용이하게 만들며, 구성원 각자에게 책임감을 이끌어낸다.




(2) 동갑내기 러닝크루 모임의 확장


새로운 친구 만나기


  동갑내기 러닝크루는 달리기를 목적으로 한 집단이지만, 사실 이곳에는 러닝 외의 다른 목적이 존재한다. ‘새로운 친구 만나기’이다. 동갑내기 러닝크루 가입하는 사람들은 같은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갖는다. 이렇게 만난 이들은 쉽게 러닝 외의 활동으로 모임을 확장하고 참여한다.

 

    J :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어요.


    B : 주도적으로 뭐 하자 뭐 하자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러면 나도 갈래 하는 게 모여서 여기서 친해지고 또 저기서 누군가를 불러서 친해지고 …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는 운영진이 아닐지라도 누구나 모임을 주도할 수 있다. 크루원들은 확장된 활동들에 참여하고, 거기서 또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이들은 서로에게 다른 활동 참여를 독려하면서 인간관계를 확장해나간다. 비록 처음 동갑내기 러닝크루 가입 목적이 인간관계 형성이 아니었을지라도, 크루원들은 자신의 삶에 스며든 크루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의 유대감을 형성하며, 이 유대감은 동갑내기 러닝크루의 가장 큰 장점이 된다.

 

     J : 처음에는 달리기만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막상 들어오니 부가적인 활동들도 많아서 더 재미있었어요.

    

    C : 인간관계 측면에서 큰 변화가 생겼어요. 회사에 한정되었던 인간관계에서 의지할 수 있는 친구라는 관계가 추가됐어요. 크루 내에서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게 사실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A: 러닝크루가 삶에서 많이 스며들었어요. 같이 땀 흘리는 관계가 깊게 발전해서 다른 일을 할 때도, 밥 먹고 놀러 갈 때도 러닝 크루 친구들이랑 하고요.

 

 

확장된 모임을 통해 깊어지는 유대감과 소속감


  동갑내기 러닝크루원들은 크루에서 형성된 인간관계를 삶의 다른 영역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이들은 크루에서 ‘취미가 비슷한 친구’를 찾는다. 러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다른 운동들도 즐겨하기에, 크루에서 만난 친구들과 클라이밍, 등산, 풋살 등 다른 스포츠 활동을 함께한다. 크루 내에서도 취미가 맞는 친구들끼리 하위 소집단들로 나뉘어 취미 활동을 함께 즐기는 셈이다.

 

    G: 크루원들과 클라이밍 같이 나가요. 여기는 취미가 운동인 사람들이니까… 주변에 일하면서 운동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나와 보니까 저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거예요. 운동친구 찾기?


    H: 다른 활동 되게 많이 같이해요. 달리기도 그래도 다른 운동의 기본 운동이잖아요. 달리기만 하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달리기 하면서 클라이밍 하는 친구, 축구하는 친구, 테니스 치는 친구, 이런 친구들이 많다 보니까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취미를 같이 많이 공유하는 것 같아요.

 

  활동은 러닝에서 ‘개인적인 취미’ 활동들로 확장되며, 대화 주제도 보다 사적인 것으로 옮겨간다. 러닝에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학교나 직장 이야기 또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 등 이들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 크루원들은 서로에게 있어 '동호회 친구' 혹은 ‘같이 달리는 친구’의 의미를 넘어선 것이다.

 

즉, ‘달리기’는 만남의 매개이자 구실이 되고, 활동은 러닝에서 서로의 취미들로 확장되며, 이에 따라 인간관계는 깊어진다. 한 크루원은 말한다.


 “우리는 노는 것에 특화되어 있어요. 뒤풀이 놀러 오실래요?”



  하지만 ‘나이’를 매개로 집단을 조직하고 연대하며 모임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대한민국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 보인 위와 같은 특성은 ‘러닝’을 ‘동갑내기’들과 함께 했기에 나타났던 것일 수 있다. 즉, 이는  ‘왜 동갑내기와 같이 뛰는가?’에서 ‘왜 동갑내기와 같이’를 보여주었을 뿐, ‘뛰는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들이 동갑내기 러닝크루에서 ‘뛰는’ 이유는 다음 편에서는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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