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람들이 머무는 방식
실시간 검색어가 사라진 이후의 사람들
언젠가부터 유튜브에서도, 당근에서도 1위라는 숫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유튜브에 들어가도 예전처럼 실시간 인기 영상 목록이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 조회수는 남아 있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많이 보는 영상이 무엇인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당근 역시 마찬가지다. 순위표 대신 우리 동네, 내 활동 반경, 내가 반응했던 글이 먼저 뜬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팔로워 수와 좋아요 숫자가 점점 배경으로 밀려났다. 보이더라도 한 번 더 눌러야 하고, 예전처럼 사람을 평가하는 지표로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네이버에서도 한때 절대적이던 실시간 검색어는 사라졌다. 모두가 같은 단어를 쫓아가던 구조는 조용히 막을 내렸다. 실시간 검색어도, 인기 순위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이 변화는 우리가 정보를 소비하고 사람을 만나고 관심을 두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누가 몇 위인지보다 지금 나에게 맞는지 지금 머무를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묻는 쪽으로. 이제 세상은 사람을 줄 세우는 숫자보다 각자의 리듬을 먼저 드러낸다.
한때 순위는 도움이 됐다. 많이 본 영상, 다들 산 물건, 사람들이 몰리는 글. 선택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순위는 “이쪽이야” 하고 손짓하는 지도였다. 문제는 그 지도 위에 사람이 아니라 숫자가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조회수는 평가가 되고 좋아요는 인격 점수가 되고 순위는 곧 나의 위치처럼 느껴졌다.
순위는 비교를 낳고, 비교는 불안을 낳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더 단정적인 말을 하고 더 빠르고 더 극단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순위가 높은 콘텐츠일수록 끝까지 보기 힘들어졌다. 많이 보이는 것과 오래 남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다. 사람을 붙잡아 두는 건 1등 콘텐츠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콘텐츠라는 사실. 이제 플랫폼은 "지금 뭐가 제일 인기 있는지?” 대신 "당신은 어떤 흐름으로 하루를 살아가나?를 묻는다. 그래서 같은 유튜브를 켜도 누군가는 강연이 뜨고 누군가는 요리 영상이 뜨며 누군가는 시골 브이로그를 만난다. 순위는 의미 없어졌다. 리듬이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순위가 사라지면서 혼란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요란한 비교의 소음이 줄어드니 비로소 자기 취향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게 요즘 대세래”가 아니라 “나는 이게 편하다”라는 감각. 이건 퇴보가 아니라 진화다.
예전엔 이런 질문이 중요했다. 몇 위인가요? 조회수는 얼마인가?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나?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거다. 누가 꾸준히 남아 있나? 얼마나 오래 연결되나? 다시 돌아올 이유가 있나? 순위는 사람을 모으지만 금세 다시 흩어진다. 리듬은 사람을 머무르게 한다.
순위가 사라진 건 플랫폼의 변화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그만 줄 서도 된다고. 이제는 자기 속도로 가도 된다고. 누군가보다 빠를 필요도 없고 더 위에 설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시대에 중요한 건 얼마나 앞서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나의 속도로 가고 있느냐다.
순위를 잃은 대신 선택권을 얻었다
그런데 여기엔 뒷면이 있다. 순위를 안 보면 뉴스를 안 보는 기분. 세상이 조용한데 그 조용함이 꼭 안심은 아닌 상태. 너무 나만의 리듬으로 살다 보면 문득 이런 불안이 고개를 든다. “혹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데, 나는 혼자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실시간 검색어를 끄고 속보 알림을 지운 대신 마음은 편해졌지만, 정보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다. 세상일에 무관심해진 건 아닐까, 시대 감각을 잃은 건 아닐까 하는 묘한 뒤처짐의 감정. 순위가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한 번에 보여주던 방식이 사라졌을 뿐이다.
예전엔 누가 화가 났는지, 무슨 일이 터졌는지, 지금 다들 뭘 주목하는지 한 화면에 정리돼 있었다. 그 질서가 무너지자 우리는 자유로워진 대신 스스로 연결해야 하는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의 불안은 과도한 정보의 피로감에서 스스로 정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바뀌고 있다. 모르면 불안하고, 알아도 피로한 상태. 순위 없는 시대의 불안은 무지에서 오는 게 아니라 기준을 더 이상 대신 정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오는 감정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시 순위를 불러오는 일이 아니라 리듬을 고립시키지 않는 방식일 것이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으면서 과잉 속보에 휘둘리지 않는 감각. 하루 한 번의 뉴스, 한 사람의 해석, 혹은 한 문장의 정리. 그 정도의 연결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감각할 수 있다.
순위 없는 삶은 세상과 등을 지는 일은 아니라 세상을 받아들이는 창의 크기를 스스로 조절하는 연습에 가깝다. 모두가 한꺼번에 몰려 있는 광장 대신 필요할 때 드나들 수 있는 골목을 갖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