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할수록 우울과 공허가 커지는 이유
당신은 지금 태워지고 있진 않나? 닳고 있진 않나?
사람들은 종종 지쳤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증상을 한 단어로 묶어 번아웃이라 부른다. 하지만 노동 현장을 오래 들여다보면, 이 극한의 피로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결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나는 소진, 다른 하나는 소모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소진은 스스로 태운 것이다. 의미를 믿었고, 책임을 감당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남김없이 쏟아부었다.
불꽃처럼 밝았고, 그만큼 빠르게 꺼졌다. 소진된 사람의 얼굴에는 후회보다 더 큰 공허가 남는다. “그래도 나는 진심이었다”라는 마지막 자존의 테두리만 있다.
반면 소모는 외부의 압력으로 닳은 것이다. 의미를 묻지 못하게 하는 구조 속에서, 설명만 반복하게 만들고 판단은 허락하지 않으면서 책임만 쥐여주는 시스템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마모된다. 소모된 사람의 얼굴에는 허무를 넘어 분노와 무력감이 남는다. 책임은 남아 있는데, 도망칠 방향도 버틸 명분도 사라진 상태다.
의미를 믿고, 책임을 감당하며, 최선을 다한 소진은 개인의 영역이다. 그러나 소모는 시스템의 영역이다. 소진은 조절하면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소모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반복된다. 아무리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도 사포 위에서는 결국 닳는다.
특히 교육, 돌봄, 급식, 의료처럼 사람의 양심에 기대는 영역에서는 소모가 더욱 교묘하다. 잘해도 문제, 원칙을 지켜도 문제다. 불만은 개인이 감당하고 기준은 흐릿하다. 그 결과 남는 것은 기록되지 않는 피로뿐이다.
“열심히 할수록 더 우울해진다.” 이 문장은 게으름의 고백이 아니다. 소모되는 시스템 안에서 성실하게 버틴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과부하로 태워지고 있는 소진의 당신을 지키고 싶다면,
시스템 속에서 닳아가고 있는 소모의 당신을 지키고 싶다면
이 일이 의미 있는 일인가를 묻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 시스템은 과연 의미 있는 구조인가, 그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한다.
시스템의 소모를 당장 멈출 수 없다면
개인의 소진은 스스로 조율해야 한다.
소진은 개인이 비교적 즉각적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소모적인 시스템은 개인의 의지로 당장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시스템 속에서 소진을 관리하지 못하고 소모까지 멈추지 못한 개인은 결국 번아웃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소진을 멈추지 못한 조직은 “왜 지원자가 없지?”라는 질문만 끝없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소모를 멈추지 않는 시스템 앞에서
개인에게 남은 전략은 소진을 멈추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