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경험담 좀 풀어볼게요
21년도 귀촌한 이후 내 한 몸뚱이와 나의 크고도 작은 고양이가 몸을 누일 곳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돌다 보니 어느새 4번째 공간에 이르렀다. 첫 번째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서 제공해 주는 숙소였고,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 몇 개월을 더 체류하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어 두 번째로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숙소로 옮겨갔다.
첫 번째 숙소는 원룸에 제대로 된 건물이었으나 두 번째 숙소는 여름용 방갈로여서 꽤 춥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세 번째가 되어서야 마을에 월셋집을 얻어 숙소생활을 접고 드디어 집다운 집에 살게 되었다. 그런 줄 알았다. 월세를 얻어 들어간 집은 이전에 민박집으로 활용되던 공간이었는데 그조차 여름용이었나 보다. 꽤 큰 평수에 방도 세 개, 화장실도 세 개, 그런데 단열이 안되어 있었다.
겨울철 그 넓은 곳을 다 기름보일러로 데우자니 60만 원이 보름 만에 날아갔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도 겹겹이 옷을 껴입고 때로 패딩을 입고 살았다. 여름에는 방마다 에어컨을 달 수 없으니 부엌이 있는 공간에만 이동식 에어컨을 설치해서 고양이를 살렸다. 그래도 숙소가 아닌 집이어서 행복했다. 아무리 열악해도 어딘가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가 아니라 아늑하게 몸을 누일 곳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큰 위안을 주었다. 마침내 서울집을 모두 정리하고 짐들을 모두 옮겨와 내 생활을 한껏 누렸다. 취향대로 커튼도 달고, 소품도 마음껏 놓을 수 있었다. 여긴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이 춥고 더운 것도 상관없을 만큼 좋았다.
어느 여름날에 그 시골에서 나는 마음이 참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자연에서 예술과 놀이, 나아가 삶의 자급자족을 어렴풋이 꿈꾸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먹거리와 삶의 자급자족을 꿈꾸고 있었다. 둘 다 동물을 사랑하고 돈을 잘 버는 것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한 게 우선이었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한 조각짜리였던 나만의 이상적인 꿈이 동그란 현실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1년 동안 함께 텃밭을 가꾸러 오가던 촌집으로 이사했다.
네 번째 집 부엌은 컨테이너에 외따로 떨어져 있고, 화장실은 이제부터 만들어야 한다. 온수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물을 끓여서 씻거나 목욕탕에 가곤 한다. 난방은 전기패널이 깔려있는 방이 하나 있지만 책장과 피아노만 두었고, 자주 사용하는 큰 방과 작은 방 모두 매일 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바닥을 데우는 구들방이다.
매일매일 꽁꽁 얼어있는 컨테이너 부엌에서 대부분 얼어빠진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집이 데워지던 시스템이 없어 방을 데우려면 장작을 자르고 쌓고 말리고 다시 날라서 불을 지피고 기다리는 번거로운 과정을 매일같이 반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버튼 하나면 뜨거운 물 콸콸 나오는 온수기가 없어 앞선 이 과정을 모두 하고도 한참을 아궁이 위 솥에 채워둔 물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야 데워진 물을 퍼다가 아껴 아껴 씻는다. 화장실도 아직 만들지 못해 간이 변기를 두고 톱밥을 깔아 일을 보고 다시 톱밥을 덮어 두었다가 통이 꽉 차면 집 뒤 퇴비장에 비운다.
막 겨울에 접어드는 11월에 이사해 추운 겨울 동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입춘이 지난 지금까지 다시 이사를 가야 할지 족히 스무 번은 넘게 고민한 것 같다. 생존하기에 급급해 집을 꾸미고 취향을 반영할 여유 따위는 아예 없었다.
그런데도 막상 이사를 가자니, 열심히 닦아놓은 가마솥과 봄이 되면 잔디 씨앗을 뿌려보려고 열심히 뽑아놓은 앞마당 풀이 눈에 밟힌다. 이제 날이 따뜻해지면 집 뒤 텃밭도 다시 갈아 이것저것 심어 열매를 맺으면 맛있게 요리해 한 상 차려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러는 동안 우리는 이 집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내 마음과 꼭 닮은 이 사람이 저녁마다 아궁이 가득 채워 넣어주는 장작 덕분에 시골에 와서 처음으로 등에 땀나도록 따뜻하게 잔다. 전기세 조금 드는 것 빼고 이 집에서는 공과금 들 일이 별로 없다. 아, 장작은 1년에 한 번 사야겠다. 올해는 아버지가 선물해 주셨다. 아, 장작 자르는 기계도 마음씨 좋은 지인이 선물해 주셨다. 그러고 보면 내 한 몸 편하게 살겠다고 할 때보다 이렇게 살아서인지 도움을 참 많이 받는다(염치없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이번 겨울 몸이 고생하고 화는 좀 많아졌어도, 지난 모든 20대의 겨울을 통틀어봤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활동적이었고 제대로 우울할 틈도 없었다.
그동안 집은 나를 쉬게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집은 나를 살게 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불을 피워서 데워주어야 하고, 자주 닦아서 먼지와 거미줄을 없애주어야 하고, 얼면 녹여주고, 얼지 않게 물을 틀어주고, 불편하면 고치고 만들어야 한다. 모든 게 갖춰져 있기보단, 잘 살아갈 수 있게끔 내가 잘 가꾸어가야 하는 곳이 집인 것 같다. 나를 둘러싼 집과 그 환경을 가꾸는 것이 곧 내 삶을 가꾸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내 마음껏 꾸며놓고 더워도 추워도 그마저도 좋았던 그 집을 떠나왔던 것을 후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아, 이렇게나 힘든 집인데도 나는 이 정도면 이 한 몸 누일 곳으로 정했나 보다.
언젠가 또 새로운 공간으로 홀연히 떠나버릴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