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했습니다. 혼자서!

혼자여도 괜찮아요. 함께인 순간도 있거든요.

by 산밑하나

26살 봄에 시골에 왔다.

어린 나이에 시골에 가서 살겠다고 하는 나에게 누군가는 특별한 계기를 기대하며 물어오지만, 사실 그런 건 없었다.

처음 귀촌을 결심했던 제천에서 대안학교를 나왔다. 열네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10대의 거의 전부를 그곳에서 보냈다. 열아홉 겨울 학교를 졸업하고 내 고향 서울에 가서도 제천이나 학교가 그립다는 생각을 자주 하진 않았지만 나는 서울에서, 도시에서 줄곧 괴로웠다.




성수동에서 의류 스튜디오 물류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에, 내가 다녔던 대안학교에 잠시 계셨던 미술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전에 만났을 때 지나치듯 했던 말을 기억했는지, 일정 기간 시골에 살아보면서 약간의 활동비를 지원받고 정착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했다. 제천에 다시 내려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첫 통화에서는 '하고 있는 일도 있고, 지금 당장 어디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요'라고 거절했지만 그날 밤 문득 내가 말한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뭔가 싶었다. 물류팀에서 어깨에 염증이 생기도록 박스를 나르는 일? 매일 밤마다 과호흡에 시달리면서도 놓지 못하는 예술 작업? 일주일에 한, 두 번 겨우 가는 댄스강사 일? 글쎄, 나는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고,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거의 하룻밤만에 마음의 결정을 끝내고 시골에 왔다. 시골에 와야 하는 이유보단, 서울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어서 왔다.


그 해 10월 즈음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는 서울에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는 시골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산과 하늘, 논밭의 풍경이 신비로웠다. 밤마다 건물들 사이에 우두커니 떠서 잠을 자는 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산속에 푹 파묻혀서 잠드는 느낌이 좋았다. 우리가 땀 흘려 키운 농작물이 반찬이 되어 밥상에 올라는 것이 감사했고, 그 고되고 단순한 노동이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서울에선 어떤 일을 해도 뒤처져 있는 감각에 힘들었는데 이곳에서는 내 능력, 재능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시골에 남을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렇게 슬쩍 눌러앉은 시골에서 지금까지 나는 참 많이 변했다.



아침마다 일어나고 매일 밤 잠에 든다. 겨울만 좋았는데 이젠 모든 계절이 다 특별하게 좋다. 괴롭고 아프지 않은 순간에도 내가 숨 쉬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혼자 있을 때에도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내 일상은 여전히 아주 바쁘지만 잊지 않고 나에게 휴식시간을 주곤 한다.



처음엔 혼자 시골에 왔지만 이제는 함께 사는 사람이 생겼다. 내 동생이었던 고양이에게도 강아지 동생이 생겼다. 계속 도시에 살았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친구와 동료도 생겼다. 시골에서 함께 사는 삶은 꽤 다채롭고(긍정적으로도,부정적으로도 다채롭다) 자주 즐겁다. 함께일 때 즐겁기 위해서는 혼자일 때 단단하고 충분한 '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도 깨닫는다.

혼자서 시골에 와도 괜찮을까? 예스! 일단 부딪쳐보자. 모든 일은 어떻게든 되더라.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