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두둑을 만들러 왔다

흙에 생각을 심으면 무엇이 자라날까

by 산밑하나

감자를 심을 시기가 되어 감자 두둑을 만들러 왔다. 두둑을 만드는 과정은 어렵진 않지만 그 나름대로 인내심이 필요하다. 땅 위에 덮인 마른풀들과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연두색의 작은 풀들을 걷어주어야 하는데 쪼그려 앉아 낫으로 얕게 흙을 뒤집어주면 된다. 그러면 뿌리째 뽑힌 풀들이 위로 올라오고 흙을 털어낸 다음 뽑은 풀들은 한 곳에 모은다. 기계를 쓸 필요가 없는 작은 면적의 땅이지만 그렇게 주저앉아 흙을 뒤집다 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숨이 차지도 않는데, 아직 봄이 다 오지도 않았는데 슬그머니 땀도 난다.


어쩌다 보니 동해의 거의 남쪽 끝까지 왔다. 바다를 코 앞에 두고 우리는 또 산촌으로 들어왔다. 오고 나서 알게 된 것은 이 지역은 도심이 대부분이라 이런 시골은 드물단다.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떤지, 이 지역이 나에게 잘 맞는지, 나는 여기서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에 빠질 틈도 없이 감자 두둑부터 만들고 있자니 처음에는 헛웃음이 나오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겨우내 그렇게 기다리던 흙의 촉감이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직접 농사지어 차려 먹는 밥상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되니, 흙을 만지고 풀을 키우는 일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 또한 느끼고 나니 농사일이 없는 겨울을 견디기가 참 힘들었다. 얼른 해가 길어지고 날이 따듯해져 눈이 녹아 흙에 뭐라도 심고 싶었다. 밭을 가꿀 때에는 그것들로 밥을 해 먹을 수도 있고, 가족들과 나눠먹을 수도 있는 데다 작물을 키우고 있는 것 자체가 스스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효능감 내지는 뿌듯함에 젖게 했는데 막상 잘 쉬어줘야 하는 겨울이 되자 나는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쉬고 있는 흙을 만지니 대지가 나를 안심시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이 땅이 작년에 또는 그전에 뭘 품었는지, 혹은 그저 이대로 묵혀져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상관없는 거였다. 지금 이 흙은 우리가 감자 두둑을 만들기에 최적의 상태였고 기꺼이 그 공간을 내어주었다. 또 다른 무엇을 심는다 해도, 심지 않고 그대로 둔다 해도 흙은 그저 그 안에서 제 할 일을 하면서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귀촌을 결심하고 정착하기 위해 몇 년을 고군분투했던 지역을 도망치듯 떠나와 사실은 스스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었나 보다. 나는 무엇을 해도,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저 나인데 마치 스스로를 잃어버린 듯 지난 몇 주간 느낀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다 묻어나는 듯하다.


겨울 동안 잘 쉬어 이제 싹을 틔우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생각하자. 어디에 있건, 뭘 하고 있건 나는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감자를 심을 수 있는 흙이었다가 또 하루 종일 하늘을 바라다보는 나무이기도 하다. 어제까지는 (비록 이제는 까마득한 시골에서만 볼 수 있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고 싶었다가 오늘은 길 따라 흘러가는 강물이 되어보고 싶다.


자연을 닮은 사람이 되어 그렇게 자연을 닮은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곳에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감자 두둑이 다 만들어졌다. 꽃샘추위가 지나가면 씨감자를 콕콕 넣어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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