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뜨기와의 전쟁
질문을 받았다.
"언제 즐거움을 느껴?"
일주일에 한 번, 30분의 짧은 대화 속에서 건네진 질문들로 한 주 내내 스스로와 대화하며 살고 있다. 그때 내가 했던 그 대답은 진심이었을까, 그럴듯하게 대답하기 위해 이미 만들어져 있던 문장들이 습관처럼 튀어나왔구나. 그래서 곱씹고 곱씹으며 지금의 내가 솔직하게 하고 싶은 대답을 고민한다.
감자를 비롯해 완두콩, 강낭콩,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옥수수 등 어느새 많은 먹거리들이 밭에 자리 잡고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며 자라나고 있다. 처음 도전해 보는 호박, 생강, 몇 가지 나물, 연한 잎채소들이 작은 이파리 또는 씨앗의 형태로 흙 속에서 움트길 기다리고 있다.
흙에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들이 언제든 때를 맞춰 싹 틔우기를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먹고 싶은 작물을 심었다면 이미 작년 가을부터 때를 기다리던 강인한 풀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수시로 도움의 손길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 내가 먹으려던 것인지 알아볼 수도 없게, 또는 마치 없었던 것처럼 풀들에 잠식당해 버린다.
"언제 즐거움을 느껴?"
처음으로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에,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적인 기분으로 낫과 호미를 들고 작은 감자밭으로 향했다. 그동안 관리가 되지 않고 거의 방치되어 있었던 그 땅은 내가 만들어놓은 몇 개의 큰 감자 두둑들마저 온통 쇠뜨기로 뒤덮여 있었다. 잠시 절망적이었지만 차라리 잘 됐다. 낫날을 흙 표면에 바짝 붙여 거의 뿌리까지 드러내듯 쇠뜨기를 제거하며 이 노동이 나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나는 그때 어떤 대답을 했어야 스스로에게 만족했을지 찾아보기로 했다.
벌써 돋아나기 시작한 토마토의 곁순을 따는 일이, 고추와 가지 등에 지지대를 세우고 끈으로 묶어주는 일이, 비가 오는 때에 맞춰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얇게 흙을 덮어주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먹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던 초록색 채소들로 국을 끓이거나 전을 부쳐 먹는 일이, 불필요한 잡초들에 덮여버리지 않게 이런저런 작물들을 옮겨 심고 남은 씨앗들을 고루 섞어 뿌려주는 일이 혹시나 내가 요즘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것들인지 한 주 동안 곱씹고 곱씹어야 했다.
마을에 살고 있는 멋진 이모들과 둘러앉았다. 이 나이 든 여성들의 긴 여정이 담긴 대화는, 각자의 방식대로 여전히 삶을 배워나가고 있음에 스스로를 애송이처럼 느끼게 할 만큼 무르익어있다. 그럼에도 얼마 전 뿌린 씨앗이 싹을 틔웠고, 새벽에 가로등 불빛에 빛나는 데이지꽃을 바라보고,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몰래 그런 일들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다 까르르 퍼지는 웃음에 광명이 비치듯 대답이 떠올랐다.
단순하고 너무도 당연해, 혹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 새삼스러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다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찾아 버렸다.
쇠뜨기 풀 속에 가려져 있어도 해를 보기 위해 싸우듯이 위로만 줄기를 쭉 뻗어 잎사귀를 피운 감자들이 꼭 20대의 나 자신 같다. 감자밭 잡초들은 내가 조심조심 걷어주었다. 이제 감자들은 마음껏 해를 볼 수 있게 양 옆으로 잎을 펼칠 것이고, 나를 뒤덮었던 잡초 같은 우울과 삶에 대한 번민은 이 나이든 여성들의 아무것도 아닌 웃음과 삶에 대한 놀라움들 앞에 힘을 잃었다.
여름이 다가온다. 심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 토마토 모종은 벌써 아주 작은 열매를 맺기 시작했고, 4월쯤부터 씨앗을 발아해 밭에 옮겨 심어 두었던 루꼴라를 따서 내일은 처음으로 페스토를 만들어볼 것이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싹이 여린 잎으로 물기 젖은 무거운 흙을 비집고 양팔을 펼치려 올라올까.
나는 20대를 온통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야 할지 고민했구나. 지난 10년은 봄이었고 이 봄이 이제 곧 여름을 맞이해 금방 열음으로 맺힐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삶에 심어진 수많은 씨앗들은 결국 자신만의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