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낼 화가 있긴 했나
낫을 가는 법을 배웠다. 밭에서 풀을 베다 보면 억센 풀들이나 돌에 자꾸만 부딪혀 금세 낫날이 무뎌져버리는데, 지금까지는 무뎌진 낫날을 가지고 거의 힘으로 잡아당겨가며 낫질을 해왔더랬다. 그러니 풀만 매고 나면 온 전신이 다 아팠던 거다. 멋진 이모가 이번엔 낫 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잘 드는 낫으로 슥슥 풀을 베면 얼마나 기분 좋은지 아니?"
낫을 갈기 전에 숫돌을 물에 잠시 담가둔다. 돌에 물이 배어 나올 정도로 충분히 스며들어야 낫과 마찰력이 올라가서 날카롭게 갈린다고 한다. 낫에도 물을 묻혀주고 물에서 꺼낸 숫돌에도 물을 척척 다시 끼얹는다. 오른 낫이면 손잡이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낫날을 숫돌에 바짝 붙여 잡는다. 왼낫은 반대로 하면 된다. 숫돌에 달라붙은 낫날을 앞뒤로 슥슥 밀었다 당겨준다. 이때 미는 힘을 살짝 더 강하게 준다. 중간중간 물을 다시 끼얹어주면서 낫날의 끝과 끝을 고루 갈아준다. 몇 차례 반복하다 낫을 들어 확인해 보면 갈린 부분에서 반짝하고 티가 난다. 재미가 붙어 한참을 갈다 보면 낫이 꽤 날카로워져 손이 베이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른손에 낫을 쥐고 뒷부분을 스치듯 슥슥 숫돌에 갈아주면 방금 철물점에서 사 온 것만큼 날카로운 내 낫이 완성된다.
이제 날카로움을 뽐내고 있는 낫을 들고 며칠 전부터 근심스럽게 봐뒀던 밭 가장자리로 간다. 제 때 잡아주지 못해 온통 퍼져버린 쑥을 싹 들어낼 테다. 쑥은 뿌리가 워낙 깊고 길게 퍼져있는 데다 남겨두면 그 뿌리에서 다시 쑥쑥 자라나곤 해서 뿌리 부분에서 끊어주기보단 뿌리를 잡고 잡아당겨 뽑아버려야 한다.
어느새 쑥 치고는 키가 꽤 자라 버린 녀석들의 줄기를 붙들고 낫을 휘두른다. 방금 낫을 갈고 와서인지 풀들이 댕강댕강 잘도 잘려나갔다. 드러난 흙에서 뿌리를 찾아내어 움켜쥐고 뽑아내기를 반복하다 보면 동작이 몸에 붙어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잘도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면 생각은 점점 산으로 간다. 몸으로 풀을 베면서 생각은 때로 분노한 활화산으로 간다.
뭐가 그렇게 쌓여있었는지, 아니 사실 그때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괜히 웃어넘겼는지, 할 말은 했어야 했었던 건지, 그 상황에 웃음이 잘도 나왔겠네, 내 성질을 보여줄걸! 이제는 까먹은 줄 알았던, 몇 년이나 지난 일들까지도 끌어모아 활화산을 불태운다. 쑥이 아니라 내 머릿속 악당들 목을 댕강댕강 베어내는 기분으로 풀을 벤다.
억센 풀들을 자꾸만 베어내고 또다시 돌들에 부딪히면서 낫날은 다시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활활 타고 있는 내 활화산은 절절 끓는 에너지를 두 팔로 나누어 보내 낫으로 풀을 팍팍 쳐서 끊어버린다. 그러는 동안 마음으로 말과 욕과 설명과 변명을 쏟아내며 나를 억울하고 화나고 서글프게 만들었던 얼굴들을 모두 떠올린다.
"아, "
문득 멈춰보니 심어뒀던 작물 줄기를 움켜쥐고 낫날을 들이대고 있다. 머릿속 가득 찼던 매캐한 연기가 한순간 걷히고 뒤를 돌아보니 마구잡이로 베어지고 뽑힌 쑥을 포함한 여러 잡초들이 수북이 늘어서 있다. '한 시간쯤 했으려나' 시계를 확인하고 쪼그려 앉았던 무릎을 펴 일어난다. 발에 밟혀 다치지 않게 잘 보이는 곳에 낫을 꽂아두고 다시 처음 쪼그려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베어져 있는 풀들을 그러모은다.
사실은 그렇게 억울할 것도 없고, 했어야 하는 말도 딱히 없었는데 내가 틀렸을 수도 있고 너와 달랐을 수도 있는 그 상황들을 거부하고 싶었나 보다. 이렇게 참는다고 생각할 필요도, 쌓아둘 필요도 없었어하며 그때 뱉지 않아서 참 잘했다 싶은 말들도 같이 그러모아 한 곳에 쌓아둔다. 힘이 잔뜩 들어갔던 어깨와 팔은 풀더미를 들어 올리다 부피만 크고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에 쓱 힘이 풀린다.
풀들은 잠시 쌓아두었다가 두둑 위에나 옆에 다른 잡초들이 치고 올라오지 못하게 다시 덮어준다. 그러면 심어둔 작물들이 풀에 덮이지 않게 보호해주기도 하면서, 흙에 수분이 마르지 않게 보습 역할도 해준다. 또 그 풀들이 삭고 삭아서 나중엔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따끔해서 내려다보니 개미가 손목을 물었다. 툭툭 털어내고 앞을 보니 하늘이 꽤 파랗고, 제거할 쑥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한다. 들어가면 아무 채소나 또 툭툭 털어 넣고 국을 끓일까, 전을 부쳐먹을까, 쌈장 툭 찍어서 그냥 먹어도 맛있겠다. 아, 토마토랑 고추 곁순도 따야겠다. 우리 강아지 데리고 오디 주워 먹으러 가야지.
뭐 하러 그렇게 활활 태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