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파 이야기
구석구석 틈이 날 때마다 대파를 옮겨 심는다. 실파보다도 더 얇고 여린 대파 모종들을 여기저기 작물들 사이사이에 심어둔다. 대파의 매운 냄새가 다른 작물들에게 붙는 벌레들을 좇아주는 효과도 있으면서, 대파는 이런저런 요리에 참 많이 들어가니 많이 심어두면 여러모로 좋다고 한다. 게다가 대파꽃 하나에서 나오는 씨앗들만 해도 양이 꽤 많아서 몇 개는 꽃을 피우도록 기다렸다가 씨를 받아두면 내년에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대파를 심을 때에는 위쪽 초록잎 부분을 반 정도 툭 끊어주고 심으면 좋다. 그러면 잎으로 갈 영양분이 우선 뿌리 쪽으로 가기 때문에 자리를 빨리 잘 잡는다고 한다. 땅에 호미로 슥슥 줄을 판 후에 약간 비스듬히 대파를 주르륵 눕힌다. 그리고 그 위에 살포시 흙을 덮어준다. 하나하나 구덩이를 파고 심어주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잘 일어난다. 흙에 덮여있는 부분이 하얗게 되기 때문에 조금 깊게 심어줘도 괜찮다. 또는 후에 흙을 위로 더 올려주기도 한다.
사실 요리를 잘 못한다. 애초에 지금껏 밥 해 먹기를 좋아하거나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한 적도 없다. 그러나 우리 밭에서 나온 수확물들은 상해서 버리게 되면 많이 아까우니, 또 내 짝꿍과 함께 먹는 집밥이 제일 맛있으니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을 시작했다. 그래서 때로 신나게 작물들을 심어 두고는 예상되는 수확물의 양에 괜히 한숨부터 나오기도 한다. '저걸 또 어떻게 다 먹지...?'
요즘은 쉽게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열심히 농사를 배우고 있는, 아주 강하고도 여린 삶을 살아내는 이 마을의 멋진 이모는 밭에서 나는 작물들로 하나 버릴 것 없이 그리고 하나 복잡할 것 없이 뚝딱 요리를 해버린다. 몇 가지 재료도 넣지 않고 너무나 맛있는 한 상이 차려진다.
이모가 가져다 먹으라면서 밭에서 뽑은 대파를 한가득 쥐어주셨다. 웃으며 받았지만, 지난번 마트에서 산 대파도 결국 다 먹지 못해 상해서 버렸던 나로서는 손질부터가 고민이었다. 대파를 쥐어주고 이모는 다시 밭으로 허리를 굽히며 "대파 한가득 잘라 넣고 그냥 된장만 풀어서 국 끓여 먹어봐!" 하셨다. 평소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참 좋아하지만 이런저런 재료를 넣다 보면 대파는 많이 해봐야 한 번에 한 개 정도 넣었는데.
며칠 지나 밭일을 끝내고 배가 너무 고픈데 찬거리는 딱히 없는 냉장고를 발견했다. '아, 대파 넣고 된장국'하며 아직 냉장고에 한가득 들어있는 대파가 눈에 들어왔다. 대파를 요리의 주인공으로 쓰는 게, 더구나 대파만 넣고 국을 끓이는 게 요리를 잘 모르는 나에게는 너무 큰 실험이었지만 여태껏 그런 식으로 먹어본 이모의 요리들은 다 너무나 맛있었던 기억을 믿고 무작정 그 많던 대파들을 다 종종 자르고 끓는 물에 와르르 쏟아부었다. 요리를 잘 못하니 늘 밥 할 때 간장, 고춧가루, 액젓, 소금, 설탕 등등 온갖 조미료들을 다 섞어 넣곤 했었는데 대파와 된장만 한껏 넣고 끓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초조한 마음마저 들었다.
배고파배고파를 연신 외치며 짝꿍과 밥상 앞에 앉았다. 내심 국이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했나 보다. "이모가 대파만 넣고 된장국 끓여보라고 했어!"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다. 걱정과 달리 대파된장국은 아주아주 맛있었다. 한 가지 재료만 넣으니 그 재료에 들어있는 단 맛, 시원한 맛, 살짝 매운맛이 전부 다 느껴졌다. 푸짐한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가볍게 숟가락을 가져다 아무렇게나 푹푹 떠서 먹기 좋았다.
양념에 마구 버무려져 있고 더 강렬하고 다양한 맛을 위해 많은 재료들이 들어가 있던 음식을 먹을 때는 몰랐는데 대파도, 청경채도, 상추도, 나물들도 전부 자기들만 낼 수 있는 맛이 있었다. 시켜주기만 하면 밥상 위를 마음껏 누비는 주인공들이었다. 그동안 나는 배만 채우는 식사를 했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밭에서 이것저것 자꾸 뜯어서 입에 넣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요리하기 전과 하고 난 후의 맛이 달라지는 것도 재밌고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재료들이 사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갖가지 맛을 내고 있는 것이 신기해졌기 때문이다.
작물들은 밥상 위에서도 역할이 있지만 흙에 파묻혀서도 각자 역할들이 있곤 한 것이 기특하다. 그중에서도 대파는 최근 여러 쓸모를 많이 발견하고 있으니 자꾸자꾸 더 심는다. 너무 많으면 나눠먹지 뭐. 아냐, 이것저것 해 먹으면서 내가 다 먹는 게 아무래도 좋겠다.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아주 작은 대파들을 보며 자꾸 입맛을 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