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잘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by 산밑하나

여기저기 먹을거리들이 매달려 통통하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아직 새파랗지만 이제 내 엄지손가락만큼 커져서 통통해졌고, 고추도 방아다리에서부터 아주 작은 열매가 맺히고 있다. 반갑고 감사하게도 오이는 이미 몇 번을 따서 맛볼 수 있었을 만큼 주렁주렁 달렸다. 근 몇 주간 비가 자주 오지 않아서 수분기가 많지는 않지만 달고 아삭하고 시원한 여름의 맛이었다.


이모네 밭을 둘러보다가 어느새 조롱조롱 매달린 완두콩을 발견했다.


"요렇게 다 익기 전에 부드러울 때 따서 그대로 넣어 밥을 지으면 꼬투리까지 먹을 수 있어!"


다른 콩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완두콩만큼은 정말 좋아해서 이모의 그 말이 뇌리에 탁 박혔다. 재빨리 감자와 함께 심어 둔 완두콩을 확인하러 아침부터 장화를 신고 밭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어제 거의 하루 종일 비가 와서인지 잡초들의 키가 한 뼘은 자란 듯하고 장화를 신은 다리의 위쪽까지 살짝 젖을 만큼 축축했다. 이럴 땐 뱀이 출몰할 수 있으니 풀들을 발로 탁탁 차면서 소리를 내주어 미리 도망갈 시간을 주면 좋다.


길쭉한 모양의 밭 저 안쪽에 심어둔 완두콩을 확인하러 가는 길에 다른 사람이 심어 놓은 양파를 발견했다. 뽀얗고 매끈한 양파들이 얼른 흙 속에서 꺼내달라는 듯이 커다란 진주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번엔 또 다른 사람이 심었지만 관리를 포기한 마늘밭에 마늘들이 이제 곧 때가 올 거라고 알려주듯이 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뱀을 만나지 않고 무사히 감자 밭에 도착했다. 지지대를 세워주지 못한 완두콩들은 내 머리카락 마냥 이리저리 흐트러지고 꼬부라져 있었다. 아, 콩이 맺히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고 허리를 숙여 콩 덩굴을 이리저리 뒤져보니 생각보다 많이 매달려 있었다.


연두색의 꼬투리 속에 완두콩들이 줄지어 잠자고 있는 게 보였다. 이모 밭에서 완두콩을 발견했을 때 그 모습이 어땠는지 자세히 보지 않았던 탓에 따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며 한 손에 쥐어질 만큼만 완두콩을 톡톡 땄다. 얼른 밥에 넣어 먹어보고 싶은 욕심이 컸다.


한 손 가득 완두콩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모 밭에 살짝 들러 완두콩을 다시 확인했다가 아차 했다. 이모 밭의 완두콩들은 솜털까지 바짝 세우고 연두색으로 빠당빠당하게 부풀어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완두콩을 너무 일찍 따버렸나 보다.


밭에 있는 것들은 다 그렇다. 어리고 여릴 때 따서 먹으면 맛있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도 적당히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 좀 더 키워서 먹으려다 보면 어느새 너무 억세고 뻣뻣해져 먹기가 힘들어져 버리곤 한다. 밭에 있는 것들은 자꾸 들여다보고 관찰하면서 때를 잘 맞춰 수확해야 한다.


사실 밭 바깥에 있는 것들도 다 그렇다. 특히 내가 그렇다. 잘 들여다보았다가 가물면 물 주듯이 웃을 일을 만들어주고, 빵 터져 후드득 떨어져 버리기 전에 울기도 하고 풀어줘야 한다. 잘 들여다보았다가 너무 가라앉지 않게 할 거리를 만들어주고 너무 들뜨다 피곤해지지 않게 제 때 잠자리에 들어 쉬어주어야 한다.


밭을 또 둘러보다가 이번엔 짝꿍 생각이 났다. 내 짝꿍 마음을 이렇게 찬찬히 둘러본 적이 있었을까. 잘 자라고 있는지, 영양분은 충분한지, 가물거나 너무 뜨겁진 않은지 잘 살펴본 적이 있었을까. 예뻐해 주는 건 둘째치고 잘 바라봐 주고는 있었나.


밭에서 수확한 먹거리들로 맛있게 한 상 차려서 짝꿍이라 같이 먹어야겠다. 맛있다고 말해달라는 듯이 맛있냐고 묻지 말고 가만히 밥을 먹는 짝꿍의 얼굴을 들여다봐야겠다. 어떤 표정인지, 어떤 반찬에 손이 제일 많이 가는지, 얼마나 꼭꼭 씹어서 삼키는지 가만히 보고 느끼면서 같이 밥을 먹어야겠다.


한 손엔 때가 이른 완두콩 한 줌과 다른 손엔 딱 맞게 통통한 오이를 손에 들고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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