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여름방학 일기
계속되는 무더위에 아침 8시에 밭에 나갔다가는 이미 쨍쨍 내리쬐고 있는 햇볕에 사실상 일을 하기가 어렵다. 요즘은 '밭에 나가야겠다'하는 생각이 들면 적어도 5시에는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화장실 한 번 갔다가 우리 집 하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것이다. 오전 7시가 보통 산책을 시키던 시간이었는데 날씨가 더워지고부터는 7시만 돼도 땀을 뻘뻘 흘려야 하는, 강아지도 나도 힘겨운 산책길이 된다. 밤사이 꽤 선선해진 이른 아침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강아지 밥도 챙겨주고, 내 아침밥도 챙겨 먹는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시간이 빨리 가 분명 5시에 일어났는데 어느새 7시가 다 되어 있다. 농사 작업복을 입고 밭에 나가면 이미 해가 쨍쨍 내리쬔다. 그래, 오늘도 땀 빼는 날이다.
루틴이 생겼다.
밭에 할 일들이 뭐가 있는지 체크하기.
호미와 낫을 챙겨 풀이 많이 자라 있는 구역에 1시간 반정도 낫질.
고추나 오이 등 작물 지지대에 끈을 보강해 주기.
수확물을 챙기기.
필요하면 낫을 갈아두기.
한 시간 반 가량 낫질을 하고 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아주 푹 젖는다. 수확물을 챙기고 작업을 마무리하고 집에 오면 아무리 늦어도 9시 반이다. 물론 오전시간이다.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 보송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면 머리카락을 말리는 동안 다시 땀이 난다.
열 시쯤 됐다, 싶으면 오늘 먹을 점심밥을 준비한다. 지난번에 수확해 둔 감자를 쓸지, 오늘도 엄청나게 많이 달린 오이를 왕창 써야 하는데, 머리통만 한 둥근 호박은 국 끓여 먹어야 하나? 점심을 준비하다 보면 또 더워지고 땀이 날 수 있으니 최대한 느리게 움직인다. 자연스레 사람이 좀 신중해진다. 보통 11시에서 12시 사이 밥 준비가 끝나면 짝꿍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수박도 좀 잘라먹는다.
오후에는 밭에 갈 수 없으니 최대한 시원하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디로든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간다(참고로 지금 살고 있는 공간에는 에어컨이 없다). 살짝(사실 엄청) 귀찮지만 미루면 안 되는 문서작업도 조금 하고, 요즘 다시 머릿속을 가득 채운 그림도 그려본다. 작은 도서관에 가서 전에 없이 만화책도 읽어보고, 구멍 난 옷들을 바느질하기도 한다.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오후 4~5시쯤 되어 방으로 돌아오면, 아직도 푹푹 찐다. 집이 찜질방 사우나 속 같다.
요즘 저녁 메뉴는 거의 무조건 삶은 감자다. 짝꿍이 맛있게 삶아준 감자와 몇 가지 여름과일로 저녁을 챙기고, 7시가 넘어 조금씩 다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또 강아지 산책을 나간다. 하루 종일 덥고 답답했을 강아지와 우리 마음에 바람을 쏘인다.
날이 어두워지고 시원한 바람이 좀 불면 책을 따라하며 어설프게 요가를 한 시간 하고(그러면 또 땀이 줄줄 난다), 씻고, 책이나 좀 보다가(사실 핸드폰을 더 많이 본다) 되도록 10시쯤엔 잔다. 내일도 5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도시에 살았다면 말도 안 되게 일찍 일어나서, 말도 안 되게 피곤하고 더운 하루를 보내는 게 고역이었겠지만 이곳에서 그럭저럭 이렇게 여름을 보내고 있는 나의 지금이 꽤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