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 먹고 사는 얘기입니다
갑작스레 폭염이 찾아왔다. 나는 아직 열대야도, 펄펄 끓는 아스팔트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기온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올라 벌써 최고기온이 35도를 육박했다.
아침 8시에 밭일을 하러 나갔다가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어지러운 머리와 땀에 절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는 더 새벽같이 일어나 밭으로 가야 할 텐데, 아침잠이 많아 걱정이다.
이전부터도 이상증세를 보이며 경고장을 날리던 지구였지만 올해는 특히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3월부터 지독한 강풍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감을 잡을 수도 없게 해가 내리쬐다가 비가 퍼붓고, 5월까지도 기온이 잘 오르지 않았다.
겨우내 흙 속에 잠들어 있던 마늘이 따듯해지는 기온과 햇빛에 알을 굵게 키워야 하는 시기에 썩어 들어갔고, 여느 때와 같이 시기에 맞춰 작물을 심었던 사람들은 몇 번이고 새로 모종을 사야 했다. 아주심기(온상에서 모종을 키워 밭에 옮겨 심는 일)하는 작물들은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냉해를 입는데 5월 초중순까지도 계속 밤기온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막 땅을 구하고 직접 먹거리를 키워 먹는 자급자족을 꿈꾸고 있는 나에게는 이와 같은 주변 농부들의 사례들에 겁이 난다. 안 그래도 돈은 안 되고 힘든 농사를, 이제는 기후의 변화까지 감수해서 대처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급자족이 꿈보단 도박처럼 느껴진다.
자급자족이 꿈이지만 여전히 돈은 필요하다.
귀촌을 했을 때는 농사가 생활의 일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이 즐겁고 만족스러웠다. 빌딩숲 속에 살다가 흔들리는 초록숲이 보이는 곳으로 옮겨와 사실상 도시와도 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농사를 삶과 생계수단의 하나로 받아들인 지금은 농촌에서의 삶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갖은 노력을 다 쏟아부었음에도 기후의 변수로 올 한 해 먹거리를 거두지 못해 식재료비를 더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혹은 또다시 도시로 나가 두 가지 일을 겸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내가 들인 시간과 노동력은 그저 "내년엔 좀 더 잘해 봐야지.."로 퉁 처져도 괜찮은 것일까?
넓은 땅을 기계로 갈고, 비닐을 씌우고, 갖은 농약과 비료를 써가며 농산물을 생산해다 파는 것이 사람과 흙을 모두 망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충분한 수익은 낼 수는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자급자족형 소농을 택했다. 자연이 살리고 자연이 기른 먹거리를 자연과 함께 나누어 먹고 싶다. 그 밭에서 자연을 닮아 아름다운 놀이를 만들고 경이로운 풍경과 작은 동식물들을 미술관과 박물관 삼아 감상하고 싶다.
농약과 화학적 비료를 대거 투입해 한 번에 많은 양을 생산해 내는 관행농이 아니어도 농사로 일정한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
열매는 못생기고 작지만 우리 몸과 흙을 살리는 가치만큼은 커다란 자연농의 공익성도 인정되었으면 좋겠다.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삶도 있겠지만, 지구에 태어나 한 명의 인간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 사는 삶도 안정적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와 사회적 시선에도 포기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