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uDu Feb 24. 2021

#73.나는 그 말이 소화가 안돼.

소화제를 먹어도, 삼켜지지 않는 말들


친구와 오랜만에 브런치(진짜 먹는 브런치ㅎ).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업데이트되지 못했던 말들을 5G급으로 쏟아내느라 서로의 말소리가 겹치기 바빴다. 그러다 자연스레 친구 남편의 소식도 묻게 되었고, 그 말에 그녀는 하염없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 남편, 이번에 완전 꼬였잖아"


성실하기도 하고, 요령을 바라지 않는 성격을 알기에 대체 무슨 영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정리를 하자면, 그 남편의 팀 내에 이번에 꼭 승진하지 않으면 권고사직을 당할 것 같은 선배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 남편이 지난해 일궈낸 소중한 성과가 그 선배에게 고스란히 넘겨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선배는 그 업무에 대해 1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말을 듣는데, 아직도 삼켜지지 않고 체기가 남아있는 나의 목구멍 저 아래쪽의 말들이 토하듯 쏟아졌다. 우리 회사도 인사평가 시즌이 1~2월이었고, 서서히 팀 내에 승진 대상자들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시기였다. 작년 초, 새로 오신 팀장님으로 인해 팀 내 처리해야 할 일부터 유난히 일도 많았고 힘든 시기를 겪은 나였다. 팀장도 그 성과를 인정하는지라 작년 한 해 동안 제일 수고 많았고, 정말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올해 승진자가 있으니(참고로 나는 내년도에 해당된다) 그 사람에게 점수를 좀 잘 줘야 하기에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한다며 미안해했다. 한편으론 나의 노고가 인정받은 거 같았지만, 그게 평가로 이어지지 않은 사실이 마땅치 않았다. 


그런 게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할까. 그 승진자가 3년 동안의 성과를 적어냈는데 어필할 포인트가 좀 부족했다며 내가 한 업무를 그 사람 성과에 적었다고 한 것이다.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런 일을 내가 겪다니.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무탈했던 팀 분위기가 조금은 금이 갔다. 평상시처럼 그 사람을 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자고 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와 같이 대화하고 웃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중(저 일은 1월 초에 일어났다) 친구 남편의 소식에 나도 모르게 동질감을 느꼈다. 어쩌면 힘들 때 힘내라는 말보다 같은 처지의 사람이 더 큰 힘이 된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한 달이 넘게 그 일로 인해 삼켜지지 않는 말이, 그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자다가도, 갑자기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없으니 받아들이자고 그 말을 녹즙기에 넣은 것처럼 갈기갈기 갈아서 저 깊은 곳으로 밀어내고 싶었지만 갈리지 않는 말들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그 말의 체기가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Cool' 한 사람처럼 그 날의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데, 내 종이는 쓰면 뒷장에 묻어나는 것처럼 다음 페이지에도 스며들었다. 인생사 희로애락이라는 말이 있듯, 좋은 일이 이제 찾아오겠지 라는 믿음을 가지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어김없이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꿋꿋이 버텨낸 모든 사람들, 정말 수고했습니다.

내일은 더, 행복할 거예요.

진짜로요. :-)



매거진의 이전글 #72.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