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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Du Sep 08. 2017

#46. 결혼에 대해 생각이 깊어질 때 즈음.




오랜만에 친구랑 커피숍에 들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티격태격하며 붙어 다녔는데 어느새 그녀와 안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심심할 때 괜히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고, 퇴근 후에 맥주 한잔이 생각나면 괜히 또 전화해보고. 전화를 받지 않아도, 약속이 있어서 못 만난다고 해도 괜찮다. 그런 거에 상처받고 그럴 사이가 아니니까. 나이가 점점 늘어가며 느끼는 건 많은 친구보단 조금은 서글픈 날, '맥주 한잔 하게나와'로 부를 수 있는 친구. 그게 제일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커피를 좋아하는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자주 가는 커피숍에서 만났다. 나누는 대화중에 거의 반 이상은 쓸데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런 문젯거리들이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옛이야기를 안주삼아 곱씹을 때 쯔음, 친구의 결혼 스토리가 다시 거론됐다.


친구는 지금의 결혼생활에 큰 만족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성격이 엄청 급하고 큰 결정 같은걸 잘 내리지 못하지만 남편은 성격이 느긋하고 이렇다 저렇다 결정도 잘 내려줘서 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한 번 더 나에게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내가 배우자로써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정확하게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그녀의 결혼 스토리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쌀쌀한 겨울바람이 불 때쯤 동네 커피숍에서 만났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 던 중, 평소와는 다르게 단단한 표정을 지으며 큰 중대발표를 앞둔 사람처럼 숨을 한번 고른 후 입을 열었다. 


"나, 이 오빠랑 결혼해야 할 것 같아"


잔잔히 올려놔있던 커피잔에 파도가 일렁이는 듯했다. 강단 있는 확신찬 모습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이어야하는지, 그런 확신이 어디서 나온 건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조금 힘든 가정환경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그런 자신의 환경과 그녀만의 고민을 남자 친구한테 이야기하는 것이 일종의 관문이자 숙제였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사귀었던 오빠가 있었는데, 조금은 차갑긴 했지만 서로 많이 좋아했었다고 했다. 그 오빠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고생을 잘 몰랐고, 그런 그에게 친구는 많은 고민과 걱정 끝에 자신의 살아온 환경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아, 그래?"라는 심드렁한 표현과 함께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기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그녀는 그런 모습에 내심 상처받았지만, 그래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서 문젯거리로 만들다거나 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똑같은 나날들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오빠는 다르다고 했다. 


"내가 그 이야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었거든. 근데.... 오빠가 같이 우는 거야"


그 답변에 나도 모르게, 아니 나 역시도 그녀의 결심과 확신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 남자 친구는 그녀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반응했고, 공감했고, 감싸 안았다. 사실 우리는 큰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작은 공감들,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 진실된 말 한마디인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녀의 인생만큼 중요한 것이 자신의 엄마라며, 자신의 엄마를 잘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자 친구는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자신의 엄마를 잘 챙기고 있으며, 3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는 모습에 남편에 대한 사랑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물론 결혼생활을 하면꼴 보기 싫은 날도 있을 것이고, 혼자의 생활을 꿈꾸기도 할 것이고, 연애 초반의 짜릿한 설렘 가득한 마음을 느껴보고도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수많은 날 중에 며칠일 뿐, 함께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들과 행복감은 말할 없겠지.  


사실 서른이 가까워질 때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았었다. 친하다고 하는 친구들이 속속들이 결혼식을 올리고, 남 들다 하는 숙제를 못 끝낸 마냥 괜한 조바심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지나고 보면 별일이 아닌데, 일 년 이년 더 빨리 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땐 참 이상하게도 우울했고, 서러웠다. 


그런데 그녀와 이야기하며 다시금 결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슬금슬금 올라온다. 이제 친구들이 하나둘씩 아이를 낳기 시작하고, 육아에 정신이 없어지며 만남의 횟수는 줄어만가고, 함께 나눌 대화의 반 이상이 아이로 맞춰지며 공감대가 흐려져만 간다. 비단 친구들이 결혼을 했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다. 그냥 베스트 프렌드처럼 기쁠 때는 배가되고, 슬플때는 절감이 되는 그런 사람과 멸치에 고추장 발라 소주 한잔에 질겅질겅 씹어도,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 괜찮다고 느껴지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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