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디자이너로 돈을 번지도 10년이 넘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은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뭔가 있어보이는 직업, 하나는 돈을 지지리도 못버는 직업.
나는 이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내 별명만 봐도 알 수 있다.
소, 들소, 일등급 소, 돈미새.
내 주위에는 디자인에 대한 깊은 고찰과 뜻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많다. 직업적 소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도 동창회를 나가면 동기들은 디자인이란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 미래에 의문을 제시해야 하는 것, 과 같은 토론을 격정적으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한다.
'아니라'고 표현대신 '못한다'고 한 것은 어느정도는 나의 집안 배경에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릴때부터 반지하에서 살았던 나에게는 어떤 직업을 갖을 지언정 그 조건의 일순위는 '돈'이었다. 가장의 역할을 하는 엄마의 짐을 얼른 대신 들어드리고 싶었다. 나에게 디자인이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그렇기에 돈을 벌 수 있으며 우리 가족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인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했다.
교복을 입을때는 상금을 노리고 미술대회를 나갔고,
대학 교정을 걸을때는 온갖 디자인 관련 아르바이트와 교내 기업 장학생을 했고,
대학 졸업을 한 이후에는 이모티콘 출시, 디자인 외주, 각종 인턴쉽, 크라우드 펀딩, 일러스트 작가, 대기업 입사까지 등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내세울만한 것이라고는 없지만 무소의 뿔처럼 나아갈 힘 하나만 갖고 덤빌 자신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그들에게 내가 손톱만큼의 용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또 동시에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한 번쯤 익명의 힘을 빌려 해보고 싶었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만 보면 누구나 행복해보인다.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어두운 면은 있다.
과장님, 작가님, 실장님 등 만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 나이지만 그 누구도 내가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고 짐작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있으니까.
3n년만에 솔직한 얘기를 처음으로 하는 것이 기대가 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다소 우울한 얘기들이 많겠지만 그 모든 여정들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니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