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모메 식당>
간혹 그런 책이나 영화가 있다. 읽고 본 사람들이 오랜 시간 사랑하며 그 이름을 반복해 사용하는 작품 말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어떠한 인물에 대한 느낌을 강하게 남긴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그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떠오르기에 식당이나 카페, 옷가게, 심지어 블로그에까지 그 주인이 원하는 분위기를 쉽게 알려주기 위해 사용되곤 한다.
‘카모메 식당’은 동명의 식당을 수없이 낳고, 블로그 이름과 심지어 옷가게의 간판에도 적힌다. 그러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 간판을 보며 그 주인의 취향과 그것을 꾸려나가고 싶은 방향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이다. 닮고 싶은 어떤 것이 들어있는 영화. 영화는 가끔 예상치 못한 전개로 관객을 놀라게 하긴 하지만 시종일관 잔잔해서 심지어 위기가 올 때에도 그것이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심심한 영화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남는 느낌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닮고 싶은 태도와 삶의 방식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사치에는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을 좋아한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열심히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은 보통 예민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주 강하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에 눈물이 많이 나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하고, 본인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으며 원하는 곳에 와서 가게를 열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계속해서 가게를 꾸려 나간다. 친절하되 쉽게 정을 주지 않는 여자, 사치에는 어쩌면 꽤나 차가운 사람이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망하지 않을 거라고 또 담담하게 말하면서. 사치에는 지나가는 이들이 그녀를 조그맣고 아이 같다고 놀려도,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노래하며 수영을 하고, 거창한 이유 없이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갈 곳을 모른 채 외로운 마음으로 떠나왔던 미도리를 대접하며 사치에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목이 늘어난 티를 입은 채 익숙한 식사를 만든다. 먼 타국에서 대접받은 익숙한 일본 음식을 먹으며 미도리는 눈물을 흘린다. 사치에는 미도리뿐 아니라 잃어버렸던 짐을 되찾은 마사코, 가게의 첫 손님이라는 감투로 매일같이 염치도 없이 공짜 커피를 마시는 토미와 알코올에서 벗어난 핀란드 여인도 모두 조용히 받아준다. 그녀의 일상을 벗어난 무엇을 더 해주려 하지 않고 그들을 대접하던 것을 시간이 지나 힘들어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들에게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른 이에게 나의 일상이 보여질 때에 살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영화를 모두 보고 난 뒤 나에게 남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주인공인 이런 사치에의 간결한 태도였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또다시 고민도 않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하기 위한 동작들을 모두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불필요한 동작은 하지 않는다. 뜨거운 주전자를 수건으로 감싸 집을 때에도 유난스럽지 않고, 보드카를 따를 때에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도록 반듯하게 움직인다. 고기와 생선을 구울 때에도 재료를 흩뜨리지 않는다. 그리고 손님을 향해 인사할 때도 그녀는 느리지만 상냥하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그녀를 더욱 아름다워 보이도록 한다.
미도리는 지구가 멸망하기 하루 전, 당신의 파티에 나를 초대해줄 것이냐며 사치에의 쉽게 정을 주지 않는 듯 그 한결 같이 담담한 태도에 서운해한다. 그럼에도 사치에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미도리와 마사코는 사치에의 인사에 대해 말한다. “그중 최고는 사치에씨의 인사죠. 혼자 보기 아깝죠.” 한 번 인사를 보여달라는 성화에 사치에는 손사래를 친다. 그녀에게 남들 앞에서 자신의 인사를 보여주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손님이 들어온다. 그녀는 누가 시키지 않을 때에 자연스레 그녀의 하던 대로 말한다. “어서 오세요!”
스튜어디스였던 한 일본 여성이 자신의 책에서 다른 이의 기억에 남을만한 매력적인 태도로 '청결, 단순, 고급'을 강조했다. 이 말은 청결하며 단순하고 고급스러운 외모와 함께, 태도와 내면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세 가지 단어가 '간결함'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간결하다는 것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다. 깔끔하고 청결하며, 단순하면서도 보기에 좋은 것. 누군가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친절하며 나에게는 귀찮지 않은 정도. 그 정도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스스로를 귀찮게 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도운 사치에. 그녀는 자신이 도운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게를 전보다 더 잘 꾸려갈 수 있게 됐다. 이제 가게는 비어있지 않다. 커다란 수영장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며 수영하던 사치에는 결국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핀란드어로 말한다. "드디어 카모메 식당이 가득 찼다." 그녀는 그렇게 계속해서 간결한 자세를 지켜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