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을 꽤나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삶은 괴롭다. 태어난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어릴적부터 부모는 자주 싸웠으며 나는 불안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지만 나는 내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우리가 행복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 단순한 일이 그렇게나 어려웠다. 우리의 행복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이루어졌고 아빠의 죽음으로 순식간에 이전보다 더한 불행으로 깨어졌다.
언제나 나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행복을 미루곤 했다. 초등학생 시절 나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동생은 나처럼 고생하지 않도록 해주세요'였고 나는 20대 시절 내 동생의 복지에 힘썼다. 살며 가장 큰 열정을 가졌던 영화 음악가의 꿈은 아빠의 사업 정리와 함께 접었다. 그렇게 내가 끝까지 지켜낼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우리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불행해지곤 했다. 그러다 결혼을 했다. 그조차도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이루고 싶은 삶의 모습이지만 생각지도 않은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결혼으로 인해 내 직장을 잃고 난 뒤에 나는 한층 더 비관적인 사람이 됐다. 그러면서도 나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 남편의 사역을 존중했고 함깨했다. 아빠의 죽음 후에 남편이 꿈꿔왔던 유학을 포기하려 할 때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정작 나는 남은 가족을 떠날 준비도 안 됐으면서 말이다.
단 한 번의 도전이었는데 남편은 원하던 학교에 입학했다. 우리는 미국에 왔고 집과 차 문제로 한 학기를 고생하다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했다. 학교도 봉쇄되고 사람들은 만나지 않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우리는 계획했던 대로 결혼 삼년 차에 임신을 했다. 입덧은 5주차부터 시작했고 여전히 사람들과 왕래하기 어려웠으며 덩달아 삶을 비관하는 나는 이런 삶을 또다른 생명에게 주는 것이 맞는지 근원적인 질문에 부딪혔다. 아이를 가진 것도 결국은 남편의 행복을 위한 거였던 거다.
그렇게 아이를 낳아 키우며 나는 사실 행복하지 않았다. 아이는 너무나 예쁘고 밝고 건강하고 순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말이 통하지 않는 그 아기와 함께 있으며 나 자신은 죽어가는 것 같았다. 지독하게 혼자 있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책을 보고 조용히 앉아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기를 키우는 첫 일 년은 그런 시간은 쉽게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기의 행복을 위해 가면을 썼다. 아기가 잠들면 울면서도 아기가 깨어있는 동안 웃고 옹알이에 대답하고 아기의 모든 필요에 귀 기울이며 채워줬다. 아기는 언제나 방긋 웃고 걷고 말을 하며 나의 노력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나 오늘 생각했다. 과연 내 삶은 불행한가?
먼저 나는 나를 좋아한다. 나는 나의 물리적인 조건도 좋아하며 정서적인 성장 배경과 현재 나의 성격과 인상, 지적 능력과 취향이 좋다. 나는 물질적으로 더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미래가 크게 불안하지도 않다. 부유해서는 아니다. 나는 다양한 사람에게 듣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나는 누가 어떤 일을 맡겨도 잘 해낼 수 있고 잘 못 하는 것도 새로이 배울 수 있으며 지식을 받아들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줄 안다.
또한 나는 내 가족에도 만족한다. 남편은 본인이 세운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동시에 나와 아이를 부양하려 최선을 다해 일한다. 남편은 나와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려 노력하고 더 나은 남편과 아빠가 되려 노력한다. 아이는 건강하고 밝고 똑똑하다. 아이는 나를 안아줄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서운한 일이 있어도 나의 작은 공감에 쉽게 마음을 풀고 쉽게 행복을 찾는다. 내가 걱정한 것만큼 그 애의 삶은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남편을 잃은 괴로움에서 다시 털고 일어났고 동생은 삶의 중요한 시기에 아빠를 잃었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나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외조부모는 노년에도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며 나는 언제나 나를 배려해주는 시부모를 만났다.
내 삶을 돌아보면 세상이 말하고 원하는 그대로의 단계를 거쳤다. 무사히 대학에 들어갔고 즐겁게 공부했으며 큰 돈을 버는 직장은 아니었어도 좋은 동료와 좋은 학생들을 만나 사랑 받으며 일했다. 나를 마음 깊이 아끼고 적극적인 남자를 만나 스물일곱에 결혼했으며 어렸던 우리는 주변의 큰 도움 없이도 우리의 성실함으로 삶을 잘 꾸려 나갔다. 자궁에 혹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예쁜 딸을 안았다. 원하던 미국행은 아니었지만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정하고 지혜로워 배울 점이 많다. 그리고 나는 살며 내가 그런 이들을 피해온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를 미워하거나 괴롭히거나 함정에 빠뜨리는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남는 것 없는 연애를 하느라 시간과 돈을 쓰지도 않았고 조심스러운 성격 탓에 사기를 당한 경험도 없다. 돌아보니 나는 실패 없는 인생을 산 거다.
나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창조와 질서와 섭리를 믿는 사람이다. 나의 삶에 많은 괴로움과 우울과 좌절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묻겠지. 가족이 빚더미에 앉고 사업이 망한 게 섭리인가? 가족이 화목해지자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섭리인가? 내향적이며 비관적인 성격을 갖고 태어나는 것도 신의 섭리인가? 누군가는 밝은 성격과 뛰어난 재능을 갖고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 태어나 사는 동안 그 어떤 가까운 이의 죽음도 겪지 않고 무병장수하며 시기적절한 기회와 사람을 만나 모든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도 있다. 아주 희박한 확률로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모든 인생에는 천국과 지옥이 공존한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뒤섞여 있으며 언제나 내게 좋은 것만 선택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안에서 천국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말로 나의 괴로움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달하고 동시에 지혜로운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