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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06. 2023

감사를 놓치지 않는 것

2021.1.16. 육아 경력 43일째



육아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낮이며 밤이며 아이를 먹이느라 매일 한두시간씩 쪼개 잠을 자고 그래봐야 다 합쳐도 잔 시간은 여섯 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나는 하루 여덟시간은 내리 자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라 이런 환경에서는 쉽게 감정기복이 생기고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워지곤 했다. 심지어 먹이기만 하면 20분이면 잘 수 있을텐데, 이서는 꼭 소화를 시켜주고 재워야했다. 모유를 먹는 아이들은 트림을 시키지 않고 눕혀도 잘 잔다던데, 이서는 그랬다가는 큰일 난다. 삼십분이 넘도록 안아서 등을 두드려줘서 트림을 몇 번씩이나 한 후에 눕혀도 게워내거나 가스가 다 빠지지 않아 힘겨운 소리를 내며 몸을 베베 꽜다. 가끔은 배는 고픈데 속이 안 좋아 이중고로 엉엉 우는 아기를 안고 달래며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다른 이들 이야기를 보거나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말에서 내가 받은 복을 깨달았다.


이서는 태어나 병원에서 5일을 콧줄과 젖병으로 분유를 먹다 집에 와서 젖을 먹었다. 하루 두어번씩 내가 병동으로 찾아가 젖을 물려주긴 했지만 병원에서 지내다 나와 곧바로 엄마 젖을 물고 잘 먹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물론 병원에서 온 첫 날밤은 낯선 곳에서 낯선 우리에 놀라 엉엉 울고 젖도 물지 않긴 했다.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엄마 젖을 좋아해줘서 고마웠다.


아이는 병원에 있는동안 줄곧 쪽쪽이를 물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나중에 떼는 것도 힘들대서 쪽쪽이를 최대한 안 쓰려고 했었는데 이미 병원에서는 여러 아이를 케어하려니 조금만 울려고 하면 쪽쪽이를 물려버렸다. 우리 동의도 없이... 황당했지만 이서는 상당히 빨기 욕구가 강한 아이라 줄기차게 쪽쪽이를 빨았다. 어쨌든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는 혼자서도 잘 자는 습관이 들어서 등 대고 쪽쪽이를 물고 칭얼거리지도 않고 잤다.


이게 지금은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수면교육을 하고 아이를 독립시켜 부부의 공간을 유지하려는 생각이었지만 막상 이 작은 아이를 보고 있자니 한참 울리며 수면 교육을 하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혼자 자게 하는 건 더더욱.. 이서는 뱃속에서부터 어려운 상황을 잘 견디는 아이였어서 조금은 이 애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늘 수유를 하며 잠들고 그렇지 않은 때에도 트림을 시키다 깊게 잠들어버려서 자칫 잘못하면 안아줘야만 잠드는 아이가 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6주차에 들어서면서 가끔씩 잠투정을 부리느라 안 자거나 수유를 하고도 깨어있다가 졸려하면 쪽쪽이를 물려 침대에 등을 대고 눕혔다. 아이는 등이 닿아도 울지도 않고 쪽쪽이도 유두도 헷갈려하지 않고 잘 물었다. 쪽쪽이만 빠지지 않도록 살짝 손을 대고 있으면 10-20분 정도 지나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자다 얕은 수면으로 살짝 깰 때도 스스로 다시 잠에 빠질 줄 알았다. 가르쳐준 적 없는데도. 이 정도만 할 수 있다면 어디서 자든 스스로 잠드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서는 스스로 밤 수유 시간을 정했다. 매일 칼같이 짝수 시간이 되면 눈을 뜨고 팔을 휘저으며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낸다. 입을 크게 오물거리고 내가 작은 소리로 '이서 일어났어? 젖 먹자'하면 배냇짓이라는 웃는 얼굴을 한다. 그리고 내 가슴이 보이면 한껏 신나는 얼굴로 입을 벌리고 앙 하고 문다. 3주, 6주 경 급성장기가 오면 밤새 울며 보채고 안 먹고 안 자는 아이들이 꽤 있다는 것은 최근에 알았다. 이서는 한두 번 새벽에도 울긴 했지만 아무리 성장기여도 언제나 밤에는 잘 잔다. 스스로 수유 시간도 정해줬으니 예상이 가능해 좋다. 아마 저녁의 밤투정이나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은 더 자주 안아주라고 하나님이 이서를 그런 아이로 보내주신 게 아닐까.


우리가 잘 몰라서 아이가 생떼를 부린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생아는 떼쓸 줄 모른다고 한다. 우는 것은 감정이나 고집이 아니라 그저 불편해서 우는 것뿐이라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딱 자신이 필요한 것만 요구하는, 이만큼 솔직하고 정직한 시기는 다시는 없을거다. 크느라 몸이 아픈 것도 그중 하나다. 지금은 부모가 사랑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인 시기다.


"우리의 안락함을 깨뜨렸다고 아이에게 화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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