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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06. 2023

사실 울보는 나야 나

2021.4.3. 육아 경력 120일째



태어난지 5일밖에 되지 않은 작은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 우리는 어쩔 줄 몰랐다. 이것도 그나마 아기가 황달에 머리에 피가 고여 니큐(NICU)에 입원하느라 5일이나 지난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자연분한 산모와 아기는 하루 이틀이 지나면 퇴원한다. 산후조리원도 없고 도우미도 없었다. 이 아기를 돌볼 사람은 나와 남편, 둘 뿐이었다. 우리는 아기를 데려와 아기 침대에 눕혔다. 난간이 달린 크립이 어찌나 커보이던지. 작은 아기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집에 아기가 있다니, 하고 우리는 종종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아기를 씻기는 것도 몇날 며칠을 벼르며 유튜브로 공부한 뒤에야 도전했다. 어른 둘이 붙어 대야 하나를 두고 작고 마른 아기가 물에 빠질까 추울까 걱정하며 라디에이터 온도를 높이고 수건과 기저귀, 로션을 모두 손에 닿는 곳에 준비하고서야 시작했다. 우리의 걱정과 달리 아기는 물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목욕하며 운 적이 없다.


아기를 낳고 2주만에 남편은 다시 저녁 알바를 나갔다. 일자리를 오래 비울 수도 없었고 그러면 우리 생활도 휘청일 판이었다. 나는 산후 우울 증세도 있었고 이렇게 작은 아기를 돌보는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라 너무 겁났다. 게다가 나는 회음부가 아파 거의 누워있고 대부분 남편이 아기를 안아줬어서 아기는 나보다 아빠 품에 더 익숙했다. 나는 그 두려운 밤을 엄마와 영상통화하며 버텼다. 엄마는 아기가 혼자 잘 누워있으니 걱정 말고 저녁을 먹고 오라고 했는데, 나는 아기를 혼자 두고 아래층에 내려가 밥을 준비하고 먹는 20-30분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기를 어떻게 혼자 둘 수 있는지 몰랐다. 너무 불안했다. 왜 불안한지도 모른 채 심장이 벌렁거렸다. 내가 내려가서 미역국을 데우는 동안 엄마는 아가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었다. 아기에게 화면이 보이지 않게 돌려두고 내려갔는데 아기는 핸드폰이 뭔지 몰라도 그 뒷면을 보며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한지 눈을 끔뻑이며 누워 있었다. 나는 식탁에서 먹지도 못하고 밥을 미역국에 대충 말아 들고 이층으로 올라와 아이 옆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아기는 잘 울지 않는 편이었다. 졸리면 잠들었고 배고프면 조금 칭얼거렸고 기저귀는 갈아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저녁에 한 시간이 넘고 두 시간도 넘도록 울었다. 잠투정인지, 배앓이인지, 영아산통인지, 알 길이 없어 매일 밤 인터넷에 증상을 검색했다. 아기를 안아주고 젖도 물려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눕혀서 마사지도 해줬다. 하지만 전부 잠깐일 뿐이었다. 아기는 제 풀에 지칠 때까지 울었고 울음이 잦아들어 목이 마를 것 같아 젖을 물리면 몇 번 홀짝이다 지쳐 잠들었다. 혼자 있는 밤에 아기가 울면 한 시간이 지날 무렵 나도 같이 울었다. "왜 그래? 어떻게 해줘야 되는지 엄마도 모르겠어"하며 눈물을 닦았다. 아기에게 말할 때는 꼭 나를 '엄마'라고 부르게 됐다. 아기는 가끔 울음을 잠시 멈추고 나를 바라봤지만 곧 다시 울었다. 내가 힘들다는 걸 아이도 알았지만 울음을 참을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아기는 감정으로 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저 불편하며 필요한 것이 있을 때 표현할 방법은 울음뿐이라 우는 거다. 사실 울보는 나다. 나야 나...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자라서 잠투정은 점점 짧아졌고(없어지진 않았다) 소화가 잘 안 돼 모유를 먹고도 끙끙대던 시간도 줄었다(사라지진 않았다). 초보 부모는 아이와 함께 크며 조금씩 지금 아이가 뭘 원하는지, 뭘 해줘야 하는지 그 타이밍을 배워갔다. 두 달, 세 달이 지나며 조금씩 아이의 울음에도 이성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됐다. 남편이 없어 외로운 밤에는 옆 방 컴퓨터를 화면은 끈 채 예능을 틀어 사람 웃음소리가 작게 들리게 해뒀다. 찬양을 틀어두고 아이를 마주보며 큰 소리로 찬양을 불러줬다. 그러면 그 긴 밤이 조금은 견딜만 해졌다. 그렇게 우울했던 겨울이 지나 새순이 돋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도 나아졌다. 낮이 길어지고 햇빛이 따뜻해졌고 훈풍이 불어 창문을 열고 잘 웃는 아기와 마주보며 웃었다. 이서야, 봄이다, 새순이 너처럼 예쁘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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