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910일 째
우리 부부는 요새 테니스를 배운다. 정식으로 레슨을 받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이 지역 한인 테니스회에 가서 아는 분께 조금씩 배운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 밤인데 아이들을 재워야 하는 시간이라 격주로 한 명은 테니스를 치고 한 명은 집에 남아 아이들을 재운다. 혼자 남아 아이들 밥도 분유도 다 먹이고 둘 다 씻기고 번갈아 재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서로 알기 때문에 각자가 가는 날이 되면 설거지든 한 명이라도 씻겨두고 간다. 그 날도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이한이를 씻기고 운동을 갔다. 나에게 남은 미션은 씻고 나온 이한이를 분유 먹여 재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 뒤에는 이서를 좀더 놀아주고 씻겨 재우면 된다. 이서는 의사소통이 다 되기 때문에 그 뒤 일정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는 성공적으로 이한이를 재우고 육아 고수가 된 기분으로 의기양양하게 거실로 내려왔다. 이서는 그동안 혼자 기다리며 블럭을 갖고 놀았다. 자석 블럭을 꺼내고 싶었는데 테이블에 걸려 꺼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밑에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바로 갈 수가 없어서 '다른 쪽에서 하면 되지'하고 말했는데 내려와보니 자석 블럭을 포기하고 나무 블럭을 갖고 놀고 있었다. 하고 싶다고 떼쓰지 않고 대안을 찾은 게 기특해서 같이 자석블럭을 더 갖고 놀기로 했다. 이서는 나무 블럭을 착착 상자에 넣었다.
문제는 이한이가 그날 지독하게 잠투정을 했다는 거다. 이한이를 눕히고 내내 혼자 놀며 착하게 기다려준 이서를 좀더 놀아주고 이제 막 씻기려는데 방에서 자다말고 깨서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배가 덜 차서 우는가 싶어 먹여보려 해도 아니라고 울고 안아도 울고 내려놔도 울고 쪽쪽이도 뱉어냈다. 이서를 씻기다말고 계속 다시 방에 가서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서는 이 때도 혼자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혼자 있었다. 이한이 분유를 더 먹이는데 곁에 작은 의자에 와서 내 팔을 다독이며 응원해주고 '엄마 괜차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엄마도 안아주고 이한이도 안아줬다. 결국 이한이는 계속 울어서 나는 이서 침대에 양쪽에 아기들을 눕혀 재웠다. 이서도 기다리는 동안 피곤해서 계속 눈을 비볐는데 이한이가 우는 동안 웃으며 참은 게 미안해서 잠들기 전에 고맙다고 꼭 안아줬다. 그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엄마는 이런 것도 미안해져서 마음이 괴롭고 오늘같은 날은 이서가 나를 너무 배려해주고 응원해서 더 미안했다. 아이들을 재우는데 이서한테 마음이 아려서 눈물이 났다. 남편이 오고나서도 계속 눈물이 났다. 아이들이 깰까봐 소리를 안 내려고 이불 속에서 찔끔거리며 우니 남편이 참지 말고 그냥 다 울고 자라고 해서 거실로 나왔다.
모두가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도 힘에 부치는 날이 있다. 이서한테 더 잘해주고 싶은데 엄마는 왜 한 명뿐인지. 남편은 시간을 생각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고 하지만 나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했다. 아이만 돌보는 것도 아니고 동시에 해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밥 시간을 지켜 뭐라도 만들어야 하고 이서가 있으니 영양도 챙기고 어떤 때는 어른, 아이의 음식 두 가지를 만들어야 한다. 오전 오후를 쪼개 이서를 어디선가 실컷 놀게 해줘야 한다. 그 와중에 이한이가 먹을 시간이 되면 먹고 트름하느라 기본 삼십분은 걸린다. 여기는 개미가 꼬여서 음식물이 남지 않게 정리해야 한다. 당장 오늘 해두지 않으면 내일 아침 당장 쓸 수건이 없거나 젖병이 없는 것처럼 헐떡여야 하는 집안일도 생긴다. 아이들도 마냥 여유롭게 열한시, 열두시까지 천천히 재울 수도 없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친절한 엄마이고 싶은데 그게 제일 어렵다.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질 때 그런 내 모습이 제일 싫은 사람은 바로 나다.
그날은 엄마가 필요하다고 우는 이한이도 빨리 챙기지 못해 한참 울리고 엄마 힘내라고 열심히 응원하는 이서를 끝까지 아껴주지도 못한 것에 힘들었던걸까. 그냥 최선을 다하는 것에 지쳤던 걸까. 육아하며 만족하는 하루가 있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