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945일 째
수요일마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전문 선생님이 매번 한 주제로 책도 읽어주고 춤과 노래도 같이 하는 스토리 타임이 있다. 도서관은 걸어서도 십분이면 갈 수 있고 스탭들이 어른은 물론 아이에게도 정말 친절해서 작년부터 이서와 자주 갔다. 그런데 이서의 한국어 실력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상대적으로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 주눅이 들곤 했다. 그래도 매번 한 주제로 동화책을 보고 집에 와서도 그 단어를 계속 같이 반복했다.그리고 옆집 미국인 가족과 자주 어울리면서 이서도 영어에 관심이 많아졌다. 어제는 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몇 번이나 앞에 나가 활동도 참여하고 미국인들 사이에서 '어~ 쉐이~ 호페이!' 같은 엉터리 영어로 책도 읽었다. 얼마나 진지한 얼굴이었는지 주변의 모든 엄마들이 다 귀기울여 들었다.
그제 좋아하는 이모와 삼촌 부부가 집에 와서는 이한이에게 시선을 좀 준 게 못내 서운했는지, 그리고 아빠는 사역 때문에 밤늦게 또 나가고 엄마가 혼자 아기 둘 재우느라 이서를 많이 못 놀아준 게 서운했는지 어제는 이한이에게도 못되게 굴고 하루종일 얼마나 나를 째려보고 반항했는지 모른다. 아무리 상황을 알아도 아이의 그런 태도를 계속 참다보면 나도 마음이 힘들어진다. 낮잠을 자고 난 뒤에는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이한이 얼굴을 발로 찼는데 다행히 세게 찬 것은 아니었지만 실수였더라도 아프게 했으면 이한이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미 이한이에게 마음이 상한 게 터지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맞은 건 이한인데. 이한이는 엄청 순둥이에 꽤나 맷집이 좋아서 울지도 않고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사과를 하지 않겠다며 큰 소리로 울어서 결국 다른 방으로 안고 갔다. 본인은 너무 억울해서 계속 우는데 나는 그건 옳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진정하길 기다렸다. 보통은 바로 사과하고 끝났을 일이라 어이가 없었는데 애가 하루종일 어떤 상태인지 아니 일단 기다렸다. 결국 받아들이고 사과를 하겠다고 방으로 돌아가서도 엄마와 아빠가 바라보고 기다리니 다시 마음이 틀어졌는지 사과를 안 하고 버텼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이한이를 안아주고 작은 소리로 '미안해..'라고 했다. 어제는 정말 집안일을 다 뒤로 하고 이한이도 그냥 바닥에 눕혀두고 계속 이서와 책도 읽고 놀았다. 밤에는 이한이는 아빠에게 맡기고 이서가 전날 바라던대로 욕조에서 같이 씻으며 놀았다. 결국 기분이 좋아진 이서가 '우리끼리 씻는거야?'라며 너무 좋아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오늘 아침에는 다시 행복한 이서로 돌아왔다. 늘 그랬듯 일어나서 엄마가 깰 때까지 기다려주고 내가 눈 떠서 인사했더니 '엄마, 이한이도 일어나서 움직이고 있어'라며 크립에 누운 동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서야, 작은 아기가 누나가 되느라 고생이 많다. 이한이가 자라면 둘이 정말 힘이 되고 좋은 남매가 될 거야. 이한이에게도 늘 일부러 이서 앞에서 소리내서 말한다. 이한아, 누나한테 잘 해줘. 누나가 아기인데도 이렇게나 이한이를 돌봐주는데 이한이가 몸도 더 커지면 누나 많이 도와줘.
그 와중에 순둥이인 이한이는 종일 엄마와 누나를 번갈아보며 웃고 아무도 신경 써주지 못할 때는 손 갖고 노느라 바쁘다. 한시간씩 울며 잠투정 하던 것도 잠텀을 다시 잡아주고 부드러운 이불을 주니 없어졌다. 이로써 또 하나 배웠다. 아기가 우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도와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