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의 작은 무한대

영화 <안녕, 헤이즐>

by 김영지





헤이즐은 산소통을 캐리어처럼 끌고 다닌다. 조금만 오래 서 있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면 숨이 가빠진다. 언제 죽을지 모르다는 공포감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주변인들의 상실감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그래서 스스로를 '수류탄'이라고 부른다. 언제든 터져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을 터뜨릴 수 있는 수류탄. 당연히 관계란 가족밖에 없고 일상은 리얼리티 쇼 보기, 새로울 것 없는 삶을 살아간다.



어거스터스는 암 치료를 끝낸 뒤 한쪽 다리는 무릎 아래로 잘려 의족을 끼고 걷는다. 농구에 재능이 있어 트로피를 긁어모으던 그는 더 이상 이전처럼 달릴 수 없다. 그는 사람들에게 잊힐까 두려워한다. 누군가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고, 기억되고 싶은 십 대 소년 거스.



헤이즐은 거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보여준다. 나의 가장 좋아하는 책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 책을 읽으며 새롭게 만들어진 나의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다. 나의 취향과 생각을 공유하고 나의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초대인 셈이다. 그들은 같은 책을 읽으며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서로가 삶과 관계에 의심을 가질 때마다 다짐한다. "Okay?" "Okay."





movie_image.jpg





헤이즐과 거스의 만남과 죽음은 모두 짧은 시간에 일어난다. 거스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했지만 오히려 그 상처를 감당해야 할 사람은 헤이즐이다. 그들에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0과 1 사이에는 무한대의 수가 있다. 비록 그 무한대는 0과 2나 0과 3 사이의 무한대보다는 작지만, 그럼에도 끝이 없다. 헤이즐과 거스가 가진 무한대는 다른 이의 무한대보다는 작다. 그리고 그들도 더 큰 무한대를 원한다. 하지만 거스는 헤이즐에게 한정된 나날 속에 무한대를 선물했고, 헤이즐은 그것을 어떻게 누리고 감사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언제나 헤이즐에게 웃음을 주던 거스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싶지 않다. 헤이즐은 그런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것보다 단 한 사람이 그를 깊이 기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다시 죽음보다는 이 삶에 집중한다. 다른 이에게 상처주기 싫어 관계를 밀어내는 헤이즐에게 그럼에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아프기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던 거스. 세상을 살아가며 상처를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 상처받을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에게는 헤이즐이 그러한 선택이며, 그녀 또한 자신의 선택을 좋아하길 기도한다. 거스는 이미 어른보다 더 깊은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나의 순수한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그 선택을 존중하고, 그에 따르는 감정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것. 이러한 그의 편지를 읽은 헤이즐은 거스를 잃고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그들의 관계를 지켜본 우리는 감정의 순수를 생각하게 된다.





치얼스.jpg 그대 눈동자에 치얼스..★





자신의 순수한 감정을 인정하게 된 헤이즐은 이제 전과 같지 않다.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감당하기로 결심하며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순수한 감정을 존중하고 그 선택을 좋아하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간다.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이 있고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이와 관계를 맺고 상처받을지를. 그리고 나의 두려움을 드러내고 나를 영원히 기억해 줄, 한정된 시간 속에 함께 무한대를 만들어갈 그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고, 모든 관계는 언젠가는 달라진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감정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다. 서로에게 시간과 마음을 쏟아 관계를 맺고 그에서 오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렇게 세상 수많은 장미 중 단 한 송이의 '나의 장미'를 만들고 그 사이에 만들어지는 작은 무한대가 주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헤이즐 메인.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햇살을 누릴 자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