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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과 고민

엄마 경력 4년 7개월

by 김영지



어젯밤,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비스듬히 앉아 있으니 남편이 웃으며 뭐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 오늘 하루 육아의 반성과 고민"이라고 답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자러 들어갔다. 반성과 고민. 나의 하루는 늘 반성과 고민으로 마무리한다. 남편의 유학 기간 미국에서 아이들을 낳고 4년 반을 꼬박 넘긴 강제 가정 보육은 나를 조금씩 잠식하는데 언제나 해소되지 않은 채로 아침이 오면 나는 어딘가 중심을 잡아보려 노력하다가 꼭 아이들이 잠들기 직전 터지곤 한다. 저녁 먹으며 이서는 밥도 씹지 않고 수다를 이어가고 이한이는 잘 먹다가도 먹지 않겠다고 버텨 결국 밥을 떠먹인다. 어찌어찌 늘 생각한 것보다 밥 먹기를 늦게 마치고 이한이가 우유를 먹는 동안 이서와 나는 장난감을 정리한다. 이서는 요새 놀고 나면 바로 치우고 다음 놀이로 넘어가는 연습 중인데 정리할 때마다 칭찬 스티커를 붙일 수 있으니 금방 마칠 거라 생각했지만 대부분 정리는 자기 전 몰아서 하느라 하루에 스티커는 한두 개 붙인다. 그 말은 자기 전 정리해야 할 양이 많다는 거다. 이서는 어린 아이니 정리를 하다가도 갑자기 장난감에 꽂혀 새로운 놀이를 시작하기도 하고 정리를 하다 엄마의 지시를 까먹고 다른데 빠져 집중하기도 한다. 나는 몇 번이고 올라오는 급한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하는데 시간은 점점 흐르고 아이들이 잘 시간은 자꾸 늦어진다.


좀 늦게 재우면 안 되느냐, 안 된다. 이한이는 아무리 늦게 잠든 날도 여섯 시 반이 되면 기상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몸에 시계가 들었는지 이서도 세 돌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리 전날 피곤했어도 아침에는 여섯 시면 일어나 나를 깨웠다. 이제 네 돌이 지나며 이서는 피곤하면 아침에 좀 더 늦잠을 잘 줄도 아는데 문제는 이한이가 여섯 시 반에 모두를 깨운다는 거다. 이한이는 요새 재접근기가 아주 진하게 와서 아침이면 "엄마 일어나요"로 시작해 그게 무엇이든 맘에 들지 않을 때마다 바닥에 드러누워 울곤 한다. 누워서 발을 구르며 울어서 나는 이한이 발을 붙잡고 있다. 그러면 그 소리에 이서는 결국 퉁퉁 부은 눈으로 거실에 나온다. 우리 집은 삼층인데 아랫집에서 찾아와 본인 가족이 아홉 시쯤 일어난다고 그전에는 조용히 해주길 부탁했다. 미국은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경우가 많아 아침에는 오히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는 한껏 더 예민해졌다. 보통은 낮 시간에는 사람이 없으니 아이들이 조금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아랫집은 재택근무를 한단다. 나는 아랫집에 시끄러울까 매일같이 아이들과 밖으로 나갔다. 플로리다는 4월부터 이미 너무 덥고 아이들과 아침 댓바람부터 갈 곳은 없어 최대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내 목소리는 자꾸 커지고 아이들은 자꾸 빨라지는 발을 멈추느라 내 눈치를 봤다. 그러니까 아침에 이한이가 발 구르며 내는 짜증을 줄이려면 밤에 잘 자야 한다. 이한이가 우는데 이서도 따라서 울지 않으려면 이서도 잘 자야 한다. 하지만 기상 시간은 여섯 시 반으로 바뀌지 않으니 전날 밤에 더 일찍 누워야 한다.


오늘 저녁에도 저녁밥을 먹는데 이서가 한창 수다를 떠느라 밥을 한 시간에 걸쳐 먹었다. 남편은 저녁을 얼른 먹고 내일 설교를 마저 준비하러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거의 밥을 다 먹어갈 무렵 나는 잠시 물을 뜨러 부엌에 들어갔는데 쿵 하고 큰 소리가 났다. 내가 있는 곳에서 무슨 일인지 보이지 않아 달려 나왔더니 이서가 앉은 의자가 뒤로 넘어져 이서가 바닥에 발랑 누워 있었다. 내 목소리가 나자 이서는 울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프다는데 일단 의자 밖으로 돌려 눕혀 의자를 세웠다. 허리춤 옷을 열어보니 멍들 것처럼 조그맣게 푸른 동그라미가 보였다. 팔다리를 살살 움직여 봤는데 계속 아프다고 했다. 나는 이서를 안고 진정시키고 조금 푹신한 거실 매트 위에 눕혔다. 이서가 쉬는 동안 이한이 먹는 것을 마무리하고 식탁을 정리했다. 이서는 누워서 못 견디게 아프지는 않은지 종알종알 말하며 곁에 있는 블록을 갖고 놀았다. 애가 허리가 아프다니 정리를 같이 하지는 못 하고 내가 얼른 간단하게 정리했다. 이서가 아프니 오늘은 엄마가 잠옷을 고르겠다고 했더니 얼른 뛰어와서 자기가 고르겠단다. 아프다는 건지 멀쩡한 건지 의심스러운데 계속 아프다고 하니 일단 뒀다. 그 외에도 치카하는 동안, 쉬하고 옷 갈아입는 동안 자꾸 아프다는데 자기 하고픈 것 할 때는 아주 멀쩡하고 슬슬 나도 열받기 시작했다. 이한이를 씻기고 기저귀 갈아입히며 준비하는데 몸은 바쁘고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은 많고 점점 지쳤다. 결국 이서에게 의자가 넘어질 수 있다고 뒤로 젖히지 말랬는데 도대체 왜 그랬냐고 혼내고 말았다. 아이는 그럴 수 있는데, 나는 인간은 원래 규칙을 어기지 않는 존재로 지어진 것처럼 화가 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엄마로서 자질을 의심한다. 어차피 돌이킬 수도 없지만 나는 엄마가 되지 않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스스로 자책한다. 어쩌자고 나 같은 인간이 엄마가 되어서 이렇게 어린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나. 이 고민은 나의 육아 일상에 중심이다. 나는 감정을 바로 표출하지 않는 엄마가 되려 수없이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나는 수많은 선배 엄마들에게 물었다. 당신들도 이런 실수를 하느냐고, 도대체 어떻게 이런 나를 넘어설 수 있느냐고. 전혀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엄마들도 아이들에게 실수로 너무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너무나 침착하고 다정해 보이는 엄마들도 자신도 조절하지 못하고 소리치고 때리기도 했단다. 모든 자식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를 사랑하고 원하지만 동시에 엄마를 존중할 줄 모른다. 엄마는 그런 자식을 키우며 그가 늘 곁에 붙어 자신을 바라보는 수고로움과 이성과 감정을 존중받지 못하는 일상에 처한다. 그러나 엄마는 어른이기에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 내가 매일 13시간씩 육아 상황에 처하고 밤새 깨어 엄마를 찾는 딸을 키우는 입장으로서 말하자면 가끔 내가 느끼기에는 자녀가 아니라 진상 고객이 하루 종일 함께하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순하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니다. 이서와 이한이는 기질이 순한 편이지만 매 순간 모든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규칙도 부모의 보호도 아닌 자기 자신의 결정대로 하고픈 충동을 보인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아이들은 성장하며 반드시 찾아오는 질풍노도를 겪는다.


나는 결혼이나 육아처럼 내가 전에는 일자무식이었던 분야에 적응하고 해내기 위해 수많은 책과 강의로 공부했는데 그중 소통 전문가인 박재연 소장의 강의를 자주 본다. 그가 매번 다른 상황에 적용하면서도 늘 뿌리를 같이 하는 방법은,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바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손을 대고 나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것이다. 화나 서운함, 내 안에 괴로움이 깃드는 감정이 들 때 그 감정의 원인을 생각해 본다.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 일이나 가치가 좌절됐을 때 그런 감정이 든다고 한다. 나는 이 방식을 결혼 생활과 육아에 수없이 적용해 왔다. 결혼에서는 6년쯤 지나며 조금 내 몸에 익었다. 하지만 육아는 새로운 영역이었다. 육아에서 소통이 안 되는 경우는 너무 일상적이고 울음이나 드러눕기 심하게는 양육자를 때리기까지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방법을 알아도 바로 적용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결혼에서 그랬듯 시간이 지나며 나도 나아질 거라 믿는 수밖에 없다. 박 소장도 십여 년을 훈련했지만 실패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 나의 진짜 감정은 뭐였을까? 나에게 어떤 기대가 있어 좌절하고 화가 났을까? 첫째는 내일 일정 때문에 아이들을 빨리 재워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아침 일곱 시에 다 같이 차를 타고 남편을 교회에 내려다 주고 아이들과 준비해 교회에 간 뒤에 오후부터는 사역자 가정 리트릿이 있다. 아이들이 피곤하거나 아프면 안 되기에 나는 아이들을 일찍 재우겠다는 열정으로 밥시간도 당기고 모든 준비를 해뒀는데 그게 틀어지는 게 불편했다. 둘째는 이서가 꾀병을 부리는 것 같다는 의심이었다. 이서는 늘 어딘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본인이 원하는 것은 다 하는데 배가 아파 밥을 못 먹겠다면서 간식은 먹겠다고 운다던지 다리가 아파 심부름은 못 하겠지만 뛰어놀 수는 있다. 오늘도 갑자기 뒤로 넘어졌으니 허리가 아프다는 건 이해하지만 늘 꾀병이 잔잔하게 섞여 있어서 이서의 이중적인 말과 행동에 화가 났다.


그런 마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이들에게 설명할 만한 일이라면 차분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면 옳은 행동만 지시하고 나의 감정은 접어둬야 한다. 문제는 나는 이미 밥 먹으면서 얼른 먹고 준비해 자야 하는 이유를 몇 번이나 설명했고 아픈 것을 안고 달래며 식탁에서 조심해야 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서를 붙잡고 나에게 집중시킨 뒤 다시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엄마 말 잘 들어, 허리가 아프니까 옷 입고 기저귀 하는 건 엄마가 도와줄 거야. 허리가 아프니까 돌아다니지 말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어. 책 고르는 것도 안 돼. 읽고 싶은 책 말하면 엄마가 가져올 거야. 굴러다니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아프니까. 그 정도라면 됐겠다. 메시지는 같았지만 나는 감정을 섞어 말하느라 이서를 겁먹게 했다. 그리고 한번 감정이 섞이고 나면 상황이 지나간 뒤에도 감정이 잘 가라앉지 않아서 계속 무뚝뚝하게 말하게 된다. 내가 내 감정에 먹혀서 그렇다.


반성하는 김에 지난주의 일도 해보자면 이서가 과학관에서 'Do not climb(올라가지 마시오)' 표시가 있는 곳에 올라갔다. 까막눈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고 나는 이서를 제지했다. 올라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했는데 이서는 엄마에 대한 반항심으로 다시 올라가려고 했다. 이곳에서는 이곳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행동은 멈췄지만 내 곁에 돌아와 계속해서 짜증을 냈다. 대답도 하지 않고 팽팽 거리며 팔다리를 휘저었다. 나는 이서에게 엄마가 정한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는 과학관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설명했지만 이서의 짜증은 계속됐다. 아마 이서는 올라가는 행동을 제지해서가 아니라 그전에 이한이가 잡은 운전대 장난감을 순서가 돼도 받지 못해서 짜증이 난 거였을 거다. 나는 당시에는 그런 이서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 일단 잘못된 행동을 한 뒤에 바로 행동을 고치지 않고 계속해서 짜증 내는 태도는 잘못됐다고 판단했고 두 번의 기회를 더 주며 계속해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집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과학관에 도착한 지 20분 만에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들은 모두 잠들었다(그렇다 이 짜증과 전쟁도 결국 전날 잠을 늦게 자고 아침에는 칼기상 해서다). 나는 아이들을 모두 안고 삼층까지 갈 수는 없어서 차에서 잠시 기다렸다. 이한이가 먼저 잠에서 깨서 나는 이한이를 달래 걸어가게 하고 이서를 안고 집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이서가 깼고 이제 제법 키가 커진 이서는 정말 무거웠지만 그냥 안고 갔다. 안아주고 싶었다. 소파에 앉아 이서와 잠시 얘기했다. 어딘가에 갔을 때 그곳의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 행동을 지적받고 조금 민망하더라도 짜증을 내면 안 된다는 것, 엄마는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안전을 위해 집으로 올 거라고 했다. 둘이 꼭 껴안고 누나를 위해 조용히 집까지 따라온 이한이도 안아주고 다 같이 대충 간장 계란밥을 비벼먹고 다시 과학관에 갔다.


언젠가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나는 밤마다 반성과 고민을 하며 나만의 알고리즘을 만든다. 일종의 공식 같은 거다. 다시 저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이서를 안아 진정시키고 이서의 마음을 좀 더 들어볼 생각이다. 짜증이 난 것이 단순히 행동을 저지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지 알아보고 충분히 설명을 해줄 거다. 그래도 안 된다면 물론 집으로 돌아올 거다. 이서가 몸이 아프다고 하면 그것도 충분히 관심을 주고 해결해줘야 하고 동시에 침착하게 문제점과 조심해야 할 것을 알려줄 거다. 우리 부부는 이후의 어려움을 막으려 규칙에 엄격한 편이지만 가끔은 못 이기는 척 져주기도 한다.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또는 나가려고 준비할 때 최대한 여유롭게 생각해야 한다. 내 맘처럼 빨리 준비해 일찍 가길 바라기보다 더 일찍 준비를 시작하고 빨리 눕히고 쉬고 싶은 마음은 조금 내려놓고 마지막 십 분, 이십 분을 다정하게 보내야 한다. 십 분.. 그까짓 십 분 때문에 나는 자주 화가 난다. 물론 내게는 그날 종일 해낸 노동에 추가 근무가 더해지는 느낌이라 괴롭지만 아이들에게는 엄마와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은 십 분이다. 그 십 분을 사랑으로 채워주는 게 나의 일이다. 위대한 일은 없다. 위대한 사랑이 있을 뿐. 그게 바로 나의 생활이다. 아이들을 기르는 일은 족적이 남는 위대한 일도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힘을 주는 위대한 사랑일 테다. 나는 과연 나의 이서와 이한이에게 비빌 언덕이, 커다란 방패가, 언제든 안길 품이 되어주는가. 나는 아이들이 두려움 속에 있을 때 어둠을 몰아내줄 아주 작은 불빛이라도 될 수 있을까. 조금만 더 천천히 해보자 영지야. 조금만 더. 오늘도 나는 눈을 감고 누워 반성과 고민을 하고 남편은 그런 나를 안쓰럽게 본다. 내일은 마지막 십 분까지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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