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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몸에도 심장이

by 김영지


한동안 아주 힘겨운 날들을 보냈다. 지난달에는 일주일 정도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 모른 채로 우울을 그대로 맞았다. 내 인생이 미웠다. 뜻하던 것을 이룬 것이 없는 인생이라 가끔 그런 우울이 찾아오는 때가 있다. 유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바쁜 남편도 밉고, 그래서 온통 내 차지인 아이들도 밉고, 무엇보다 내가 제일 미웠다. 왜냐면 그 모든 핑계를 대더라도 내 인생을 두고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은 나였기 때문이다. 인간도 미웠다. 멀리 이사하며 이미 지나온 것 같은 사람들은 멀리서도 종종 나를 괴롭게 했다. 도무지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 모르던 우울이 지나고 몸이 처져서 그런 것 같아 남편의 권유로 운동 횟수도 늘리고 아이들 재우다 잠들어 기절해서 많이 잤다. 입맛이 없어 굶다 먹던 라면도 끊고 아이들에게 차려주는 것처럼 나에게도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였다. 이제 밉지는 않으나 서로를 마음으로 돌아보지 않는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그들에게 안부라도 전하고 마무리할까 고민하던 차에 이전에 살던 곳에서 내 곁에 남은 친구들은 나의 고통을 들어주며 새 곳에서 새 삶을 주셨으니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가라고 말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렇게 말했고 나는 일말의 미움도 괴로움도 무언가 바뀔 수 있다는 미련도 뒤에 두고 앞을 보기로 했다.


마음에 드리운 장막들을 걷어내고 우울에서 빠져나온 뒤,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생각했는데도 나는 종종 나를 조절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특히 첫째 이서에게 몇 번이나 기회를 주다가도 순식간에 분노했고 친절하게 말하던 같은 말도 비틀고 꼬아서 비수처럼 꽂았다. 그 시기에 이서와 나는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도와주고 만져주고 책도 읽고 놀았지만 순식간에 올라오는 내 화는 정말 초가삼간을 다 태울만큼 셌다. 화는 내 마음까지 태워버려서 그 순간이 지난 뒤에도 나는 원래대로 돌아오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잘해주고도 한 번 소리친 나 자신이 밤새 내 마음에 남는 법이다. 첫째를 대할 때는 무엇보다 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실수를 많이 했다. 지금 이 아이의 짜증이나 반항이 단순히 이 시기에 겪는 것인지, 아니면 이 아이의 진짜 성품이라서 내가 잡아줘야 하는지 매 순간 나는 헷갈린다. 둘째는 이미 한 번 겪어본 것들이기에 어렵지 않게 지나지만 첫째는 정말 매 순간이 새롭다. 무엇보다 끝없이 설명하고 기다려야 하는 이 모든 과정을 여전히 가정 보육하며 하루 종일 대부분 나 혼자 해내는데 내 안에 쌓이는 것들이 해소되지 않아서 조금만 그걸 넘치게 해도 터지곤 했다. 그때마다 이서는 상처받은 눈으로 나를 봤다. 이서 안에도 화가 쌓여 이한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더 나아가 엄마인 나에게도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곤 했다. 이한이는 내가 소리치고 나면 눈치 보느라 내 한 마디에도 웅, 대답하고 얼른 움직였다. 만 네 살, 충분히 천방지축일 수 있는 나이고 만 두 살, 부모 말에 한 번에 따르는 게 신기할 때다. 두려움으로 아이들을 움직이게 했다는 죄책감은 내 마음을 다시 찔렀다.


하루는 이서를 조금 혼냈다. 소리는 지르지 않았지만 이서는 이미 이전의 경험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이서에게 설명을 마치고 소파에 앉아있는데 이서가 책장으로 가더니 작은 말씀 카드를 들고 왔다. Love is patient and kind.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이서의 책에서 잘라 갖고 다닐 수 있는 카드였다. 우리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로 약속하고 서로에게 미움이 생길 때마다 '오래 참고 친절하자!'라고 말했다. 이서는 쭈뼛거리며 그 카드를 들고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이서야, 엄마한테 보여주려고 가져온 거야?"하고 물었다. 이서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나는 웃음이 났다. 이서의 생각이 귀엽고 지금 이서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나는 카드를 받아 들고 다시 읽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한 거지?" 이서는 끄덕였다. "사실 방금 엄마는 오래 참았어, 이서야. 여러 번 반복해서 알려줬는데도 이서가 멈추지 않아서 좀 더 엄하게 말한 거야. 그래도 다음에는 좀 더 참아봐야겠다. 다시 친절하게 말할게. 이서도 얼른 멈춰줘." 이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품에 와서 안겼다. 나는 이서를 안고 말씀 카드를 한참 봤다. 오래 참고, 친절하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해.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지만 무조건 받아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규칙과 약속 안에 존재한다. 사랑은 거짓말로 상대와 나의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 진실하며 상대에게도 진실해야 한다. 사랑하는 이가 그릇된 길로 갈 때 그럴 수도 있겠다 눈 감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옳은 길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나까지 찔리고 상대의 미움까지 견뎌야 하지만 옳은 길로 돌아온 이가 그게 바로 사랑이었음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사랑은 더 깊어진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그 테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내가 편하려고 아이들에게 말을 바꾸거나 작은 속임수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거나 아이들이 저 멀리 잘못된 길로 가는 걸 알면서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려 눈을 감는다면 해야 할 일을 유기한 것이다. 단순히 화내고 소리치는 것만이 아이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다.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저 울리는 꽹과리밖에 되지 못한다. 진정한 사랑을 오래 참고 친절하지만 동시에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불의를 기뻐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 맘 속의 악한 것들을 생각했다. 참견하고 싶고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것들, 내가 편하고픈 이기적인 마음이나 모로 가도 쉽게 가고 싶은 마음, 모른 척하고 싶고 책임지고 싶지 않은 나약함까지.


다시 영점 조절을 할 때였다. 육아는 영점 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하루 종일 어긋난다. 나는 다시 '나'에 집중하지 않고 나에게 맡겨진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시 대화에 대한 강의도 찾아보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방법을 담은 책도 다시 읽고 무엇보다 사랑에 대해 묵상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이서와 함께 말씀을 반복해서 말하며 우리가 서로에게 원하는 사랑을 얘기했다. 이서가 어떤 때 사랑을 느끼냐면 엄마가 안아주고 마사지해주고 잘 못 하는 걸 도와주고 숨바꼭질을 할 때라고 했다. 그 후로 우리는 매일매일 숨바꼭질을 했다. 이서는 지붕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이사 온 집이 3층이라 아이들을 못 뛰게 하느라 집 안에서는 잘 놀지 않았는데 뛰지 않고 빠르게 걸어 다니며 노니 아이들이 그 잰걸음이 재밌어 더 웃었다. 이서와 이한이가 고집부리며 진정하지 못할 때는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아이들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잘못한 것을 대화해 보자 하면 안아서 자기를 진정시키라며 우는 아이들을 안아주지 않고 버티고 기다리는 건 모두에게 진 빠지는 일이지만 나중을 위해 쉬운 길을 찾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간식으로 달래지도 않고 정해진 규칙들을 엄마가 먼저 지키는 것도 아이들의 불만과 고집을 마주해야 해서 힘들다. 그래도 그렇게 엄마가 견디다 보면 아이가 고집부리고 울던 시간은 조금씩 짧아지고 그렇게 조금씩 다시 우리에게도 평화가 돌아온다.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아기이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요. 이서는 겁이 너무 많아요." 아침을 먹으며 이서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이사 온 뒤로 엄마가 없으면 한 시간마다 깨는 이서에게 반년 간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재우고 도시락도 싸고 나의 시간도 필요한데 매일 우리는 피곤했다. 그래서 강경책으로 며칠 전부터 엄마 없이 혼자 잠들기에 돌입했는데 이서는 맘처럼 되지 않아서 자신감이 좀 약해졌다. 나는 새벽에 깨서 나오는 이서를 안고 너무 잘하고 있다고 달래곤 했다. 이서는 "얼마 나요?"라고 물었다. "이서가 할 수 있는 최고로 잘하고 있어. 너무 잘 적응해서 엄마도 놀랐어." 이서는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침 먹으며 시무룩한 이서에게 이서는 엄마에게 제일 용감한 아기라고 했다. 이서가 오지 않았다면 엄마는 그냥 김영지로 멈추고 엄마가 될 수 없었을 거다. 김영지를 엄마로 만들어준 건 첫 번째 아기인 이서다. 아기를 안아본 적도 없고 먹여본 적도 없는 엄마에게 이서가 저 사람 믿어도 될까 의심하지 않고 용감하게 와줘서 우리가 만난 거라고 했다. 건강히 자라는 이서를 보면서 이한이도 용기를 내서 우리 가족에게 올 수 있었던 거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도 용기를 낼 수 있었어, 이서야. 살아오면서, 엄마의 아빠를 먼저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가족과 친구 떠나 미국에 오면서 쉽게 울적하고 쓸쓸해하던 내가 아이들을 키우며 우리 가족을 건강하게 지키고 싶어 우울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수없이 연습했다. 게으르던 나는 부지런해지고 우울에 빠질 때는 얼른 좋은 점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바꾼다. 건강하고 영특하고 엄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용서해 주는 우리 아기들, 가끔은 엄마에게 매서운 가르침도 주는 아기들, 나도 아이들을 기르며 그만큼 컸다.


오늘 저녁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남편이 지쳐 침대에 잠시 누웠다. 이런저런 정리를 마치고 안방에 가니 웃통을 벗고 누운 아빠 옆에 이서도 웃통을 벗고 나란히 누워 있었다. 내가 들어가 웃으며 놀리자 이서는 꺅 소리를 지르며 웃었다. 나는 남편 위에 엎드려 누웠다. 그 심장 소리가 들렸다. 아빠의 심장은 퉁 탕 퉁 탕 천천히 크게 울린다. 이번에는 이서의 가슴에 귀를 댔다. 둥당 둥당 작은 심장 소리가 빠르게 들렸다. 나는 이서의 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렇게 작은 몸도 몸이라고 심장이 뛰네." 이서는 엄마가 자기 심장을 안아주는 것 같은지 몇 번이나 다시 귀를 대 달라고 했다. "이서야. 이렇게 작은 심장도 열심히 뛰고 있어." 나는 이서를 업고 욕실로 가서 씻겼다. 이서를 마사지해주고 옷을 골라 입으라고 보내고 돌아오니 이번에는 이한이가 아빠 옆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나는 이한이에게도 가서 가슴에 귀를 댔다. 동 당 동 당. 통통한 몸에 비해 너무 가볍고 작은 소리가 들렸다. 말랑한 이한이 몸속에 이렇게 작은 심장이 열심히 뛰고 있다. 나와 남편이 번갈아 가슴에 귀를 대는데 이한이가 간지럽다며 비눗방울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이렇게 작은 몸이, 겨우 나와 남편, 어리숙한 어른 둘을 의지해 세상에 살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도 이역만리 먼 땅에 두고 친구도 없는 새로운 곳에서 우리 넷이 이렇게 살고 있다. 완벽하지는 못 해도 열심히 사랑을 연습하면서. 언젠가 이서와 이한이가 엄마가 화내던 것만 기억하지 않아 준다면 바랄 게 없겠다. 내가 어떤 처지에서 길렀는지 알아주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쓰다듬고 안아주고 업어주던 엄마, 새벽에도 열을 재고 약을 먹이던 엄마, 끼니마다 먹고 싶다는 것을 만들어 주던 엄마, 실수해도 괜찮다고 닦고 정리해 주던 엄마,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던 엄마, 아이들이 나뭇가지가 떨어진 게 불쌍하다며 주워온 것을 몇 주 내 유리잔 물에 담가둔 엄마, 심장 소리를 듣고 점점 자라는 몸을 아쉬워하며 뿌듯해하고 찌는 더위에도 유모차 밀며 재밌는 곳에 데려가던 엄마, 잘 모르고 헤매느라 괴로워 울면서도 함께 웃으려 최선을 다 하던 엄마도 기억해 준다면 바랄 게 없겠다.




앞뒤가 안 맞는 글, 이지만 나의 일기이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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