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4년 8개월
대학생 시절 나는 외조부모의 집에 살았다. 대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첫째인 나를 보낸다고 온 가족이 상경했다. 내 옷가지만 챙기면 돼서 캐리어 하나에 겨울부터 봄까지 입을 옷을 챙겨왔다. 밤늦게 도착한 우리가 문을 두드리자 칠순 넘은 노인 둘이 잔뜩 설레는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명절마다 생일마다 때마다 들러 씻고 먹고 자던 곳에 이제 내 방이 생겼다. 사실 내 방이라기보다는 할아버지 책장과 옷이 꽉 찬 작은 방에 삼촌이 사준 낮은 책상 하나, 할머니가 옷장에서 꺼내준 두툼한 방석 하나, 한쪽에 누울 얇은 매트 하나, 이렇게 몸 누일 곳이 생겼다. 할머니는 나에게 방을 정리했다며 보여줬다. 좋고 싫을 것도 없었다. 빠듯한 형편에 살던 곳에서 장학금 받지 않고 굳이 욕심내 서울로 대학을 왔는데 대학 다니며 밥 걱정 없이, 집세 걱정 없이 지낼 곳이 있다는 게 그저 다행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옷이 빼곡히 걸린 헹어 위에 잔 꽃무늬가 쉴새없이 박힌 몸빼 바지를 얹어뒀다. 내가 올 때마다 입고 자던 바지였다. 몸에 붙지 않아 시원하고 너무 멋낸 것 같은 무늬가 재밌어서 사촌 언니와 깔깔대며 하나씩 입곤 했다. 하도 입으니 할머니가 주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대학 오면 입고 잔다고 두라고 했었다.
그렇게 나는 두 노인에게 사랑받는 하숙생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부지런한 사람이라 매일 새벽 예배를 다녀와 아침 뉴스를 보고는 그날 날씨를 알려줬다. 추운지 더운지, 비가 오는지(안 맞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뭘 챙겨야 할지 늘 알려줬다. 할머니는 손녀 입에 안 맞을까 뭘 차려줄까 고민했는데 나는 뭐든 잘 먹었다. 맛있다고 맨날 말하면 못 믿겠대서 하루 안 말하고 먹으면 서운해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저녁 일곱시만 넘으면 언제 올거냐 전화를 했다. 새벽 예배에 간다고 아홉시 뉴스가 끝나자마자 잠자리에 들던 할아버지는 내가 늦을 때면 열한시에도 안 자고 기다리곤 했다. 자유분방한 손녀는 그래도 기죽지 않고 늘 늦게 들어갔다. 그러면 할머니는 밤 열시 넘어 버스 정류장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집은 높은 언덕에 있었다. 할머니는 허리가 불편해 다리를 끌며 천천히 걸었고 나는 그런 할머니 팔을 붙잡고 도우며 타박했다. 할머니가 있으면 이상한 놈 만나도 내가 빨리 도망을 못 가니까 더 위험하잖아. 그러면 할머니는 늦게 다닌다고 타박하고 둘이 서로 그렇게 애정을 주고 받으며 집으로 갔다. 나는 덜렁대서 자주 물건을 빼먹었다. 버스 카드나 핸드폰, 실컷 다 해둔 과제나 우산 같은 것들이었다. 엘레베이터 앞까지 갔다가도 잊은 게 있어 다시 집에 뛰어가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가도 다시 올라가곤 했다. 급할 땐 계단도 탔다. 하도 자주 그러니 이제는 내가 나가고도 할아버지가 신발장 곁에 서서 나를 기다렸다. 내가 벌컥 현관문을 열고 다시 들어서면 할아버지는 히죽 웃으며 이번엔 뭘 두고 갔느냐고 물었다. 그러면 나는 나도 웃겨서 푸학 웃으며 대답하고 신발을 대충 벗어던지고 얼른 문간방에 들어가 두고온 물건을 챙겼다. 집에 돌아올 때는 나는 저녁 메뉴를 맞췄다. 나는 냄새를 잘 맡아서 아파트 복도에서부터 할머니가 뭘 요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현관문을 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개를 빼꼼 내밀고 오늘은 뭐 같냐고 물었다. 기대하며 웃고 있었다. 그럼 나는 냄새로 재료와 요리를 맞췄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만족해서 꺄하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가끔 주말이면 나는 본가에 내려갔다. 그날도 나는 열심히 짐을 챙겨 집을 나섰고 할머니가 현관에 서서 아쉬운 얼굴로 배웅하는 걸 담백하게 넘기고 나왔다. 며칠이면 돌아오는걸. 그날도 나는 엘레베이터 앞에 서서 놓고온 것을 떠올렸다. 얼른 집으로 달려가서 문을 열었다. 좀더 늦으면 고속터미널로 가는 급행 열차를 놓칠 것 같았다. 방에 들이닥쳤는데 할머니가 내 책상 앞에 앉아 손바닥으로 책상을 쓸어보고 있었다. 먼지를 털려고 쓰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책상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책상 앞 벽을 가만히 보면서. 나는 잠시 멈췄다. 할머니는 눈에 아주 작게 눈물이 맺혔는데 나를 보고 눈물이 쏙 들어간 얼굴이었다. 뭘 놓고 와서 다시 왔다며 나는 할머니를 한번 안아주고 다시 집을 나섰다. 그날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자꾸 할머니 얼굴이 생각났다. 잠깐 사이에 방에 앉아 나를 그리워하던 할머니 얼굴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짧은 며칠이어도 내가 없으면 집이 빈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차려주는 밥 먹고 가끔 설거지하고 자주 늦게 오고 일찍 오는 날은 할머니랑 드라마 좀 보다가 방에 박혀 과제를 했다. 나는 나 같은 애가 집에 있으면 귀찮을 것 같은데 할머니는 마냥 챙겨주기만 하면서도 그런 내가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오늘 나는 너무 힘들었다. 도서관에 블루이 캐릭터 행사가 있다고 해서 아이들과 갔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캐릭터 인형탈을 만나는 게 아니라 짜여진 코스를 돌며 게임도 하고 만들기도 하고 노는 거였다. 아이들이 실망할까봐 열심히 만들기도 같이 하고 미션 수행하며 사진도 찍었는데 다행히 이서와 이한이는 즐거웠던 것 같다. 다만 나는 좁은 공간에 사람이 너무 많고 너무 시끄러우니 숨이 가쁠 정도로 힘들었다. 나는 소리에 민감해서 너무 시끄러운 곳에서는 에너지가 쭉쭉 떨어지는데 사람들 사이에 아이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신경쓰면서 소리와 군중의 압박이 심해 순간적으로 방전이 됐다. 결국 열심히 숨겨진 강아지 찾기를 하고 있는 이서에게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지금 빨리 가야할 것 같다고 부탁을 했다. 이서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얼른 따라 나왔다. 그렇게 집에 오는데 이한이는 원하는 것을 못 했다고 울고 집에 와서도 계속 울었다. 요리해 줄 기운도 없어서 냉동실에 얼려뒀던 피자를 돌려주고 나는 남은 찌개와 밥을 퍼왔다. 밥을 마구 우겨넣으며 에너지를 채우면서 이서가 하는 말에 대충 대답을 했다. 나중에는 이서에게 엄마가 지금 대답을 못 해주겠다고 그마저도 그만뒀다. 다시 남편을 데리러 갔다가 차에서 낮잠 잔 아이들 깨울겸 다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집에 와서는 바로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남편은 할 일이 남아 일을 하고 아이들은 이래저래 엄마를 계속 불렀다. 나는 한 시간 내내 서 있다가 드디어 식탁을 차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물이 없다는둥 뭔가 불편하다는둥 계속 일어날 일이 생겼다. 그렇게 정신없이 밥을 먹고 남편은 다시 방에 들어가고 나는 식기세척기를 정리하고 새로운 설거지 거리를 채워 넣었다.
아이들을 씻기고 재울 준비를 다 했는데 이서가 애착 옷을 차에 두고 온 것 같다고 가져다 달라고 했다. 밖에는 천둥이 치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수면 루틴을 해야 해서 남편에게 부탁했는데 남편은 여전히 내일 설교문을 쓰느라 바빴다. 이서에게 지금은 비가 많이 오니 일단 자면 이따 가져다 주겠다고 하고 아이들과 인사하고 거실에 나왔다. 이서는 한참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기다리다가 차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집을 나서 어두운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하루종일 내 힘을 다 쓰고 이제 정말로 쉬고 싶은 어두운 밤 아이가 두고온 물건을 찾으러 가는 길이 너무 피곤했다. 그래도 내려가며 생각했다. 사랑을 줄 아이들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내가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누굴 위해 이렇게 열심히 내 몸과 마음을 써봤을까?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내 할머니는 대학 다니는 손녀를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도 않고 그렇게 부지런히 아침을 차려주며 나를 돌봤다. 아빠는 새벽까지 공부할 때면 외로울까 거실 불을 켜두고 같이 책을 읽고,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위험할까 내가 나타나고 사라질 때까지 나를 지켜봤다. 어른이 되기 전 무엇으로 살아야 할지 고민이 너무 커 우울에 빠져있을 때 엄마는 나의 우울을 알아채고 전문 상담가와 정신과 의사에게 나를 데려갔다. 할아버지는 알바를 두 개나 해도 생활하고 학비 대다 끝이 나 오십만원이 없어 오는 기회를 포기하려는 나에게 할아버지가 도와주겠다며 기회를 잡게 해줬다. 나에게 맞는 해결책이 뭘지 찾아주려 부지런히 알아보고 나를 도왔다. 내가 받은 사랑이 이런거였지. 할아버지와 엄마는 부지런하게 움직여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이다. 조용히 성실하게. 할머니와 아빠는 다정함으로 사랑을 다 보이게 표현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받은 사랑을 생각했다. 열심히 해낸 것을 다정하게 칭찬해주는 사랑, 나의 존재 자체가 주는 기쁨을 표현해주는 사랑, 내가 아플 때 해결방법을 찾으려 세상 시선과 부끄러움도 마다하지 않는 사랑, 내가 위험하거나 외롭거나 슬플 때 나를 혼자 두지 않는 사랑.
내가 오늘 하루 아이들에게 내 사랑을 느끼게끔 했는가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오늘 나는 기분을 따랐기 때문이다. 기분은 무척 중요한 것이지만 또 중요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이에 기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 기분은 조금 내려놓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도와줄 일과 혼자 하도록 용기를 줘야할 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할 때와 나 자신을 챙겨야 할 때를 잘 알고 도와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게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때 이 아이들을 보호해줄 울타리가 될 거다. 아, 내가 힘들어도 조금 더 같이 있어줘야지. 내 기분이 상했어도 아이에게 위로를 줄 수도 있어야지.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조금 더 손해보고 조금 더 다정해야지. 지나고 후회하지 않고 더 많이 안아줘야지. 아이들에게도 내가 받아온 사랑이 묻어나길, 또 그보다 더 잘 느끼도록 나에게도 매 순간 용기와 지혜가 있어 잘 보여주길. 주차장에 다녀온 엄마가 방에 들어오자 입술을 쭉 내밀고 뽀뽀해주는 아이들을 잠들게 두고 나와 글을 적는다. 작심삼일을 4년 넘도록 하는 나는 훌륭하지는 못해도 착실한 엄마다. 내일부터 또 새로운 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