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4년 8개월
내일이면 첫째 이서가 학교에 간다. 만 네 살로 미국에서는 프리 케이(Pre-K, 만 5세 Kindergarten의 전 단계) 반에 간다. 프리 케이는 필수는 아니지만 정식 유치원에 가기 전 준비 단계로 많이 보낸다. 플로리다 주에서는 오전반의 경우 등록금을 지원해 줘서 이서는 이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세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점심도 먹고 오후까지 종일반을 다니기에 이서의 첫 학교는 엄청난 학교 생활은 아니다. 오후반까지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 부부는 이서의 첫 학교 생활인만큼 너무 오래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만 집에서는 모국어로 한국어만 사용하기 때문에 정식 학교에 가기 전 영어 환경에 적응할 필요는 있어서 오전에는 간다. 너무 준비가 안 된 채로 학교에 가면 워낙 말하는 걸 좋아하는 이서가 너무 힘들 것 같아 그동안 함께 이런저런 책을 빌려 같이 읽고 일상에서 쉬운 문장들을 영어로 말하며 이서도 눈치로 점점 알아들었다. 놀이터에서 만난 친절한 친구들도 이서가 영어가 서툴러도 전혀 개의치 않고 아이들만의 소통으로 함께 놀았다. 아이들에게는 함께 어울리기에 언어가 필요 없다는 걸 많이 배웠다. 이사 온 뒤 한국 친구들이 그리워 힘들어했던 이서도 점점 미국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겁내지 않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이서의 새로운 삶을 조금씩 준비했다.
나는 4년 반이 넘도록 이서와 365일 24시간 함께하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많이 지쳐 있었다. 한국에서 종일반으로 어린이집을 보내면서도 육아가 힘들다고 하는 이들을 보면 마음 한쪽이 찌릿했다. 아이가 두 돌이 됐을 때는 나를 위해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아 계속 가정 보육을 했다. 늘 재정을 생각하느라 아이를 돌보고 놀아주는 데 돈을 많이 쓰지 않았는데, 아이가 만 세 살이 됐을 때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엄마로서 내가 혼자 돌보고 가르치는 것에 한계가 느껴졌다. 그러다가 남편의 긴 유학 생활이 끝났고 새로운 곳에서 이전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함께할 수 있어서 나도 슬슬 아이와 함께 보내는 날들을 즐기고 있었다. 아침마다 눈뜨면 이서와 이한이에게 "오늘은 뭘 하고 놀까?" 묻고 함께 정하는 게 우리 하루의 시작이었다. 4월부터 이미 30도를 넘은 더운 날씨에 나는 수영장에 갈 짐은 이제 2분 만에 쌀 수 있게 됐고 온갖 다양한 놀이터와 실내 놀이터, 과학관, 해양 동물원, 워터파크, 여러 공원이나 몰을 다니고 종종 친구들을 만나다 보면 일주일이 금세 지났다.
기나긴 가정 보육이 지나 오늘이 왔다. 이서는 기대 반, 걱정 반 조금은 들떠있다. 나는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묘한 기분이 든다. 이제 정말 아이가 매일 학교에 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생소한 기분이 든다.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인데 기쁘지만은 않다. 만 두세 살에 아이가 기관에 갔다면 아이도 가서 놀고, 아이가 노는 동안 나도 조금 쉬며 가벼운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실제로 작년에 이서가 일주일에 두 번 오전동안 교회 학교에 갈 때 나는 이서가 울며 가도 많이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이 아이의 인생에 '학생' 시절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 자신이 학생 시절을 너무나 모범생으로 보내면서도 내면에서는 공부도 학교도 모두 때려치우고 싶은 괴로움 속에 다녔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이 그보다 즐겁기를 늘 바란다. 하지만 아무리 학교를 즐겁게 다녀도 배우고 익히 것을 시험하고 점점 더 어려운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니까 '오늘 뭐 하고 놀까?'라며 하루 종일 마냥 놀던 날들은 이제 끝나고 매일 꼭 해야 할 일이 생기는 삶으로 들어섰다. 그게 기특하면서도 안쓰럽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은근히 방학을 기다리는 마음이 든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후에는 뭘 하고 놀까 자꾸 계획을 세우게 된다.
어제 오후에 학교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왔다. 교복도 사고 교실도 들러 코너마다 장난감도 갖고 놀았다. 선생님과 인사하고 자기 가방 거는 자리와 화장실도 보고 왔다. 아이를 처음으로 학교에 보내는 거라 여러 학교를 찾아보고 방문도 해봤는데 그중에 구글 리뷰 점수는 낮은 편이었지만 직접 만났을 때 가장 선생님들이 적극적이고 학생들에게 집중하고 아이들 표정이 밝은 곳으로 선택했다. 오늘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복도에 선 선생님들이 아이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다. 처음 등록한 아이의 이름도 기억해 불러주니 이서도 활짝 웃었다. 집에 돌아와 교복을 입어보고 빙글빙글 돌며 한껏 신난 목소리로 동생에게 자랑도 했는데 잘 준비를 하면서는 긴장돼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단다. 그러면서도 신이 나서 첫날 입을 교복을 고르고 가방도 야무지게 챙기고 그동안 앉아있기 싫다며 게으름 피우던 알파벳도 벼락치기로 써보며 공부를 한다. 나는 이서를 앉혀놓고 학교에서 보내게 될 오전 일과를 한 번 쭉 읊어줬다. 아직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이서가 당황하지 않도록 학교에서 보낸 규칙도 한 번 더 설명하고 가방에 물티슈와 여벌옷과 자외선 차단제를 넣었다. 학교에서 똑같은 가방을 모두에게 나눠줘서 혹시나 다른 친구들과 가방이 헷갈릴까 우리만 아는 열쇠고리도 달았다. 이서는 학교에 가려니 제법 '큰 어린이'가 된 것 같은지 다른 날과 달리 지시사항을 한 번에 듣는다. 정리도 잘하고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은 척척 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모두 침대에 눕히고 나는 기도를 유독 길게 했다. 우리 이서 아기로 지내던 시간은 지나고 앞으로 매일 꾸준히 해야 할 일들이 생기는데 잘 적응하도록, 아직은 영어가 서툴지만 겁내지 않고 차근차근 배우도록, 친구들과 어울리고 규칙을 지키는 법도 배우고 세상을 살아가며 필요한 지식도 배우며 멋지게 자라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열심히 노력해 잘 해냈을 때도 우쭐하지 않고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도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이서야, 이제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구나. 엄마는 이서에게 조금 더 아기 같은 시간을 많이 주고 싶었는데 그게 우리 이서에게 어떨지는 모르겠다. 엄마와 아빠는 늘 사랑을 발라주고 응원할게. 뭐든 잘 해냈을 때는 너에게 좀 더 좋은 일일테고 조금 덜해도 충분하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세상에는 다양한 길과 기회가 있거든. 즐겁게 열심히 해보자. 파이팅!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