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신고

by 김영지



브런치에 글을 안 쓴 지 이렇게 오래됐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첫 아이 이서가 정식으로 등교를 시작하고 나는 여유 시간이 생긴 듯 더 바빠졌다. 차 한 대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우리의 일과는 이렇다. 남편은 새벽 다섯 시에 새벽예배에 가려 교회에 간다. 나는 일곱 시쯤 이서나 이한이 중에 먼저 일어난 아이가 와서 깨운다. 혹은 아이들이 일어나 방에서 자기들끼리 놀고 나를 찾지 않는데 그러면 나는 알람을 듣고 일어난다. 첫째 이서는 아프거나 늦잠을 잔 게 아니면 스스로 준비하게끔 하고 있어서 아이가 치카하고 전날 골라둔 교복을 입는 동안 나는 아침거리를 준비한다. 일곱 시 이십 분 전후로 남편이 집에 돌아오고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챙기는데 말없이도 분담해서 해낸다. 가끔 이서는 기분이 내키면 동생 치카도 도와주고 눕혀 기저귀를 갈고 둘이 같이 옷을 골라 갈아입혀주기도 한다. 이건 우리 부부가 권하는 일은 아니라 본인이 기분 내킬 때만 한다. 이한이는 누나가 챙겨주는 게 좋아 웅웅 대답하며 바닥에 누워 기저귀도 갈고 누나가 단추를 껴주는 동안 쌕쌕 숨을 내쉬고 가만히 있는다. 대부분의 날은 나나 남편이 이한이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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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시 반부터 식탁에 앉아 다 같이 밥을 먹고 나는 아이들이 먹는 것을 조금 살핀 뒤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식탁에서 마주 보이는 벽시계에는 정각에 스티커가 붙어있다. 아직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이서가 긴 바늘이 스티커에 닿기 전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고 알려주는 표시다. 잠이 덜 깨 소여물 먹듯 질겅질겅 씹으며 먹고 나면 아이들과 비타민을 챙겨 먹고 이서는 화장실에 들렀다 양말을 신고 선크림을 바른다. 플로리다는 여전히 햇볕이 엄청 센 데다 매일 학교 놀이터에 나가 놀고 몸으로 움직이는 수업도 많아서 학교에서도 선크림을 필수로 바르고 오라고 안내한다. 여벌 옷이나 물병, 여분 선크림, 물티슈 같은 것들이 가방에 있는데 가끔 잊었을까 무엇이 어디 있는지 다시 설명하고 교실 에어컨이 추우면 카디건을 꼭 꺼내 입으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래도 이서는 늘 놀다 잊어버리고 콧물을 달고 오곤 한다. 여덟 시 십오 분쯤 온 가족이 집을 나서 차에 오른다. 다 같이 이서 학교에 가서 이서를 배웅하고 아빠를 다시 교회에 데려다준다. 이한이는 가는 길 내내 오늘은 어디에 갈지 고른다. 이한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운전대가 붙은 카트를 탈 수 있는 마트다. 나는 카트에 이한이를 태우고 마트를 스무 바퀴는 돈다. 사람이 적은 코너에서는 붕 빠르게 달리기도 하고 보통 마트에 들르면 과일을 조금 사거나 이서가 학교 마칠 때 두 아이에게 나눠줄 작은 사탕 같은 것을 산다. 도서관에 이한이 또래 나이를 위한 스토리타임(동화구연)이 있는 날은 도서관에 가서 책도 잔뜩 빌리고 전주의 책은 반납한다. 나는 굳이 시간을 쪼개 사람을 만나는 성격은 아니고 이한이도 엄마와 단둘이 보낼 시간이 필요하니 이 정도로 이한이와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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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면 열 시쯤 된다. 그러면 빠르게 밀린 집안일을 하고 점심거리를 준비한다. 이한이는 혼자 잘 노는 아이라 엄마를 찾지 않을 때가 많고 가끔은 부엌에 와서 자전거를 타며 나와 대화한다. 어떤 날은 이한이와 둘이 보내고 싶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이한이만 안고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열한 시 십오 분이 되면 이서를 데리러 가야 한다.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 이한이를 기다리며 내려가면 이한이는 꼭 집 옆의 분수를 보러 간다. 분수를 보며 꼭 "이렇게, 샤악 하는 거야."라며 한 팔을 벌려 무지개처럼 활을 그리고서야 몸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한다. 부랴부랴 차에 태우고 싶지만 이한이는 직접 하겠다며 낑낑대고 올라간다. 모든 과정을 기다리고 차를 달려 학교에 도착하면 열한 시 반에 맞춰 도착한다. 이서는 아침에 교실에 들어갈 때면 몇 번이고 다시 나와 안기고 엄마가 일등으로 데리러 와야 한다고 하는데 막상 데리러 가면 왜 이렇게 일찍 왔냐거나 이것만 하고 나가겠다거나 혹은 나를 보고도 못 본 척 눈을 돌리고 하던 놀이를 계속하기도 한다. 이한이는 누나 만나면 사탕을 먹을 거라 기다리고 있었기에 사탕을 달라고 바짓가랑이에 매달린다.


집으로 돌아오며 이서 학교 생활 이야기도 듣고 다 같이 점심을 먹고 나면 아이들을 재운다. 이서는 네 돌이 되며 낮잠은 완전히 이별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고단한지 낮잠을 안 자면 오후에 차를 타고 다니다 잠들어서 밤잠에 차질이 생기니 미리 낮잠을 자기로 약속했다. 이한이는 이한이대로 여기저기 다녔으니 피곤하고 이서는 놀이터에서 땀도 빼고 와서 둘 다 눈만 감으면 금방 잠든다. 그러면 나도 피곤한 날은 잠깐 눕고 집안일이 많은 날은 집안일을 마무리한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짧게 외출한다. 지금 우리 집은 삼층인데 아랫집 이웃이 대낮에도 조용히 하라고 컴플레인을 하도 해서 우리는 매일 나가서 논다. 과학관을 가기도 하고 이서 친구들과 만날 때도 있고 놀이터가 있는 카페를 가거나 수영장에 간다. 그리고 남편을 데리러 간다. 원래 사역자 퇴근시간은 오후 세 시인데 남편은 오전에 집에 다녀가느라 양심상 네 시 반에 데리러 오라고 한다. 그래도 우리 교회는 담임 목사님이 사역자들 상황을 많이 봐주시고 본인 일을 잘하기만 하면 업무 시간을 강요하지 않으시는 분위기라 가끔은 남편도 세 시에 같이 퇴근해 온 가족이 같이 수영장에 가기도 한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이 아이들을 돌아가며 씻기는 동안 나는 저녁 준비를 하고 다 같이 저녁 먹고 장난감 정리하고 치카하고 누우면 저녁 여덟 시. 나는 수면 의식을 마치면 방에서 나오고 아이들은 낮잠도 잤겠다 침대에서도 둘이 한참 떠들고 굴러다니는 걸 조금 두다가 아홉 시쯤 되면 이제 정말 자라고 외친다. 그러면 애들은 몇 번 뻗대다 잠든다. 아이들이 잠들기까지 남편은 설교문을 마저 쓰기도 하고 더 할 일이 없는 날은 둘이 드라마를 보며 캠으로 아이들 동태를 살피고 협박과 회유로 재운다. 아홉 시 반쯤 남편은 자러 가고 나는 남편 도시락을 싸고 다음날 아침 식사 거리를 구상한다.


그러면 그 후에 글을 쓰면 되지 않았을까? 맞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놀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고 그 사이에는 성경을 읽거나 여러 관심사 강의나 영상을 찾아보거나 아이들 이중언어 교육에 관심을 두고 블로그를 따로 만들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리뷰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가만 생각해 보니 브런치에 공유해도 될 것 같은데 왜 내가 블로그를 따로 했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림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어차피 아이들 키우며 읽게 되는데 나만의 기록을 남겨두면 좋을 것 같아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내 영혼의 굶주림이 느껴지면 신앙서적을 몰아 읽기도 했다. 그리고 웹툰을 안 본 지 십 년은 된 것 같은데 재혼황후 웹툰을 어쩌다 보게 돼서 한 2주 달리며 따라잡았다. 아주 비생산적으로 저녁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나 매일매일 운전대 잡고 두 시간은 보내고 아이들과 복작대고 삼시세끼 차려먹다 보니 저녁이면 에너지가 방전되고 안 그래도 약했던 손가락과 손목이 자주 아파서 아주아주 잘 쉬었다. 이서는 자주 파스를 붙인 내 손가락과 손목을 보며 걱정하는 얼굴로 "엄마, 파스를 자주 붙이네?"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손이 약해서 그래. 더 아프지 말라고 붙인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했는데, 이서는 "나는 어른이 되면 손도 세지는 건 줄 알았지 뭐야."란다. 엄마는 더 세지지 못해서 유감이다. 우리 이서는 약한 곳 없이 크면 좋겠다.


이 공간은 나의 일기장 같은 곳이지만 순수 일기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글을 남기려는 훈련장이다. 엄마로 사는 내 삶이 나에게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고 이 시간으로 나도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남기려는 거다. 기록병이 깊은 사람이라 여기저기 흩어져 내 글을 자꾸 남기는데 그게 참으로 흑역사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나는 아아 바보가 아니던가 아아아 아. 아무튼 나는 좀 웃기고 남편이 공부하는 동안 나에게 공유해 주고 함께 경험한 것들로 성경에서 교회를 뭐라 하는지 분명히 배웠지만, 교회 사모라기엔 너무 천진난만하고(요새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듣는다. 계산적이지 않아 장점이라고 하지만.. 아무튼 언젠가는 나도 크겠지) 똑똑한 것 같지만 구멍이 많은 헛똑똑이라던가(남편의 평가인데 그러려니 한다) 뭐 그런 사람인데 브런치에는 최대한 '글다운 글'을 남기려 그런 나의 지식이나 자아는 빼려 노력하는 편이다. 좀 더 편안한 글을 남겨도 재밌을 것 같긴 한데 아빠가 떠난 뒤에는 나의 흔적을 조금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어 조금씩 여기저기 정리하며 실행하고 있다. 이건 또 다른 얘기지만 아빠가 떠난 날, 나는 아빠 영정 사진을 만들러 사진관에 가고 동생은 상주로 엄마 모시고 장례식장에 먼저 가서 정리하고 남편이 아빠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려 아빠의 휴대전화를 들고 통신사에 찾아갔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아빠의 메모장을 읽었는데 로봇 같고 진짜 T의 인간화인 남편이 그 작은 아이폰5S를 큰 두 손에 쥐고 울었단다. 그러니까 나는 남은 가족의 그런 경험을 줄이고 싶어 나의 기록들을 조금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한 인간이 뭘 그리 남기고 가겠나 싶고. 그러면서도 계속 이렇게 쓰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멈춰야 하는지. 남편이든 이서 이한이든 누구든 이 글을 보게 되면 너무 나 같아서 웃으면 좋겠기도 하고.


아무튼 이것은 생존 신고. 나는 이곳에 이사 온 동안 점점 더 건강해졌다. 몸도 마음도 모두. 화나 슬픔이나 그로 인한 관계의 어려움 같은 것은 결국 내 마음에서 지나가고 편안해졌다. 누구든 미워하지 않는다. 영원 앞에 감출 수 있는 거짓은 없다. 관계에 대한 눈도 조금 더 뜨였고 내가 몰랐던 차원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남편과 나는 갈등을 조정해 가는 새로운 경계와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미워 죽겠는 순간은 거의 없고 서로 적당히 하라는 눈짓을 하면 알아서 멈춘다. 무엇보다 지금 이 삶을 우리 둘이서 이렇게나 열심히 지탱해 가고 있다는 자체로 서로가 얼마나 고마운지 알아간다는 게 참 감사하다. 그리고 지금 너무나 변화무쌍하고 귀여운 때를 지나는 이서와 이한이에게도 고맙고. 이웃 때문에 집에서 못 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게 됐지만 이 쨍한 햇볕을 매일 쬐며 아이들과 걷고 뛰니 건강해지고 생각도 많이 단순해졌다. 인간은 사고의 방향대로 살게 되는 것 같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해지고 그러면 정신도 맑아지고 단순해진다. 그냥 이대로 이렇게 잘 지내고 싶다. 뭣도 모르고 학교에 갔어도 며칠 만에 집에 돌아와 동생에게 "하우 매니"라며 숫자를 세자고 하는 이서처럼. 살다 보면 나도 뭔가 더 알게 되겠지. 잘 몰라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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