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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의 추석 여행

엄마 경력 4년 10개월

by 김영지



긴 추석 연휴를 맞이해 시부모님이 미국에 오셨다. 시어머니는 둘째 이한이를 낳고 산후조리할 때 이후로 두 번째였고, 시아버지는 처음이었다. 둘째 시동생이 비행기 티켓을 해드렸고 막내 시동생도 용돈을 보태 우리도 어찌어찌 시간을 낼 수 있어 함께 플로리다 최남단 키웨스트에 다녀왔다. 교회에서 수없이 들은 말은 시부모님이 와 계시니 내가 어렵겠다는 거였다. 시부모님과 다니는 여행이 힘들었느냐 물으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별로 힘들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주러 올 때도 수없이 들었던 말이 시어머니가 오면 산후조리를 받는 게 아니라 내가 못 쉬고 모셔야 한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정말 편히 지냈다. 시어머니 눈에 내가 부족한 점이 없겠냐마는 그런 것을 일일이 티 내지 않으시고 나도 뭐든 시어머니가 제안하면 자신 없어도 일단 해보려 노력한다. 시아버지도 말수도 적고 표현은 잘 안 하시지만 내가 기죽지 않게 또 힘들지 않게 해 주려 때마다 배려해 주시는 게 다 느껴진다. 시어머니는 무엇보다 부지런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 오죽하면 내가 이한이 예쁜 것 지나기 전에 오시라고 하며 이번에는 어머니 손에 물 안 묻히고 모시겠다고 할 정도였다(지인들은 그게 가능하겠냐고 했다. 결론은 불가능했다. 시어머니 너무 빠르심).


무엇보다 즐거웠던 건 아이들이 너무 행복했다는 거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몇 년 만에 손주를 보는 기쁨은 말할 수 없고 나는 이서와 이한이가 이렇게 오랫동안 차를 의젓하게 잘 타고 이렇게 말을 잘하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새로운 모험에 참여하는 것이 새삼 좋았다. 이한이는 영상통화 할 때마다 함미보다 하비를 더 찾았는데 직접 만나서도 꼭 하비 손을 잡고 안겨 다녔다. 시간이 지나며 손주 열성팬인 함미에게 폭 빠져 씻는 것도 함미가, 먹을 때도 함미 옆에, 온종일 함미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무래도 더 어린 이한이를 보는 재미가 있어 어른들의 시선이 쏠릴 때가 많았는데 이서는 이한이를 질투하지 않고 그런 때마다 엄마나 아빠에게 기대 있거나 같이 웃었다. 어른이 많으니 아이들도 고루 관심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도 좋아하지만 타고나길 혼자 있어야 회복되는 사람이라 온종일 엄마를 찾는 이서의 소리에 지레 질려버리는 때가 종종 있다. 엄마 지퍼 좀 올려줘, 엄마 지퍼 좀 내려줘, 엄마 이것 좀 해줘, 엄마 이것 좀 찾아 줘, 엄마 이게 뭐야, 엄마 놀자. 하루에 수백 번 엄마를 부르니 귀에 쟁쟁 이서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러다 보면 내 에너지가 부족해질 때 가끔은 이서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그만하라고 협박하는 때가 있다. 지나면 후회뿐이지만 그 순간에는 왜 그리 참기 어려운지 이 작은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게 정상인지 나 스스로도 내 모습에 놀란다. 이번 주에는 10개월 만에 휴가를 받은 남편도 종일 함께하고 시부모님도 함께 있으니 내 힘도 덜 수 있고 무엇보다 늘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아이에게 못되게 굴 기회도 없었다. 사람은 참 이기적이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를 위해 아이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게 되니 말이다. 화를 내는 대신 나는 아침에 아이들이 눈뜨면 다른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이서와 이한이는 서로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쉿 조심하라고 했다. 기저귀를 갈고 두유 하나씩 들고 숙소를 나서면 바로 앞에는 넓은 바다가 있었다. 아이들은 일곱 시면 꼭 일어났고 이십 분 뒤면 해돋이였다. 우리는 넓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큰 구름들에 가려 뜨는 해를 기다렸다. 하늘이 하늘색이다. 이제 핑크색이다. 노란색이다. 하며 아이들은 돌아다니며 조잘대고 해가 뜨고 나면 하나둘씩 다른 어른들이 나왔다. 모두가 바다에 모여 풍경을 보고 다시 집에 들어가 아침을 차려 먹었다.


사람도 없는 작은 해변에서 수영하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걷기도 하고, 아이들은 함미, 하비와 작은 패들보트를 타고 얕은 집 앞바다에 떠다니다 갑자기 예고도 없던 비바람이 불어 허겁지겁 뭍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아이들은 배가 재밌다고 깔깔거리다가도 비바람이 무서워 울며 올라와서는 엄마와 아빠를 졸졸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싸 온 재료들로 밥 해 먹고 동네 수영장에서 놀다가 또 들어와 밥 해 먹고 집 앞에 나가 별 보다가 아이스크림 까먹으며 삼박 사일이 갔다. 매일 해 뜨는 걸 보고 매일 해지는 걸 봤다. 바다 위에 구름이 얼마나 큰지, 바다는 얼마나 넓은지, 처음이라 겁이 나도 엄마, 아빠를 믿고 조금만 배를 타고 나가면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큰 지구가 있다는 것도 아이들에게 알려줬다. 양가에 손주라고는 이 둘 뿐인데 가족들이 가까이 있다면 참 좋겠다.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 가족들과 가까이에서 짧게 자주 보며 지내고 싶다. 생각나면 허접한 밥상에도 한 끼 같이 먹고 시간 나면 잠깐 산책 같이 하고. 그런 삶.


어디든 머리륻 대면 기절해 잘 정도로 쳇바퀴처럼 돌며 일상에 지쳐있던 우리 부부도 평소와 다른 일상에 새로운 힘이 생겼다. 아이들은 우리 넷이 다니던 여행보다 더 많이 떠들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어른들 사이에서 경쟁도 질투도 없이 사랑받았다. 이서는 차 안에서 한참을 할머니 곁에 있었는데 공항에 도착하니 나도 마음이 찌릿했다. 인사하며 눈물이 나려는 걸 각자 참는데 결국 시어머니는 공항에서 헤어지며 우리를 등질 때마다 눈물을 훔쳤다. 꿈같은 여행은 지나고 밤늦게 우리 집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이래저래 열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면서 괜찮다고 운전대를 주지 않고, 가방 두 개 메고 올라가는 나에게 작은 박스 하나 주면서 괜찮냐고 묻고는 본인은 배낭에 캐리어에 아이스박스까지 둘러메고 삼층을 오르는 남편이랑 마지막까지 씩씩하게 이 긴 여정을 함께한 우리 집 꼬맹이들. 우리는 다시 넷이 남았다. 자연이 넓게 보이는 곳에 다녀오니 매일 보던 하늘도 좀 더 유심히 보게 됐다. 얼른 익숙한 생활로 돌아와 쌓인 빨래와 정리를 해내면서 오늘도 서로 좀 더 다정하게 살아보자. 한국에 있는 보고픈 모든 가족들에게도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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