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4년 10개월
오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는데 거실에서 둘째 이한이는 작은 그림 카드들을 갖고 놀고 있었다. 우리 집은 부엌이 뚫려 설거지를 하면서 거실을 볼 수 있는 구조인데 이한이는 나에게 카드를 들어 보이며 "엄마, 이건 뭐게? 배!" "엄마, 이건 뭐게? 네모!" 하며 스스로 문제를 내고 맞추며 놀고 있었다. 나는 호응해 주며 이런저런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했다. 그러다 방에서 놀던 첫째 이서가 나왔다. 이서는 나름 이한이와 놀아줄 생각으로 같이 하겠냐고 물었고 이한이는 응 하고 대답했다. 이서는 그림 카드를 붙이는 짝꿍 책을 들고 와서 붙이자고 했는데 이한이는 붙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둘이 옥신각신 붙여라, 안 붙인다 씨름이 시작됐고 나는 일단 모른 척 듣고 있었다. 점점 이서의 목소리가 커지더니 갑자기 이한이가 우앙 우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얼른 몸을 돌려 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이서는 이한이의 볼을 잡고 있던 손을 얼른 놨다. 그 바람에 이한이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이한이가 등을 돌린 상태였어서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건지 몰라 이서에게 상황을 물었다. 이서는 혼날까 겁이 나서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며 횡설수설했다. "이한이가 다친 거면 엄마가 해결해야 하니까 솔직하게 말해. 어딜 잡았던 거야?" 이서는 두 손으로 이한이의 양 볼을 잡았단다. 왜 잡았냐니 화가 났었던 것 같다고 했다. 손을 놓자마자 넘어진 건, 이한이가 빠져나가고 싶어도 이서가 힘으로 잡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서는 결국 오늘 아빠에게 매로 엉덩이를 두 대 맞았다.
엉덩이를 맞은 이서는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그래도 이한이에게 가서 누나가 화난다고 얼굴을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고 이한이는 누나를 안았다. 아이들은 한동안 엄마와 아빠를 돌아가며 안겨 있었다. 한차례 눈물바람이 지나고 나는 이서를 부엌으로 살짝 불렀다. 선 이서와 눈을 맞추려고 나는 바닥에 앉았다.
"이서야, 혼날까 봐 무서웠을 텐데 그래도 솔직하게 말한 건 진짜 잘한 거야."
이서는 끄덕이며 다시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도 화가 난다고 이한이 몸에 손을 대는 건 안 돼."
이서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서를 품에 꼭 안고 둥가둥가 흔들었다. 이한이가 혼자 잘 놀 때는 이한이의 방식대로 놀게 두라고. 아직 어려서 이서가 원하는 규칙을 따를 수 없다고 다시 알려줬다. 사실 지금까지 천 번도 넘게 말 한 이야기였다. 어린아이 둘이 놀며 이런 일은 하루에도 수시로 일어나고 이서와 이한이는 각자의 취향이 분명한 아이들이라 서로 많이 좋아하고 많이 양보해도 부딪히는 일은 자꾸만 생긴다. 그래도 이서는 정말 훌륭한 누나다. 이한이도 훌륭한 동생이다.
밤잠에 들 준비를 하며 아이들 모두 잠옷으로 갈아입고 돌아가며 치카를 했다. 이서를 무릎에 눕혀 이를 닦아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서에게 우 삼촌(내 동생)이랑 미미(내 엄마)가 이한이는 어려서 귀엽고 이서는 그냥 귀엽다고 했다니 이서가 피식 웃었다.
"함미도 그랬지? 이서가 최고라고. 이서는 우리 가족에게 제일 소중한 아기야. 모두가 기다렸던 첫아기거든."
이서는 나를 뚫어져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는 자기 눈에도 통통하고 목소리도 귀엽고 어린 아이라 순진하게 재밌는 말을 해서 귀여움 받는 동생이 부러웠을 거다. 나, 내 엄마, 시엄마는 모두 그런 이서에게 이서는 첫아기라 제일 소중하다, 첫아기라 제일 많이 사랑받았다, 제일 보고 싶다는 표현을 수시로 했다. 며칠 전, 이서가 갑자기 첫아기라서 더 사랑받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았다고 했다. 이유는 몰라도 그냥 알게 됐다고. 나는 이서에게 엄마가 이한이를 챙겨주는 건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혼자 할 줄 모르니 더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했다. 이서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더 많은 거고. 나는 이서의 이를 닦아주며 마저 얘기했다.
"이서가 첫아기로 온 건 엄청 용감한 일이랬지? 엄마랑 아빠가 아기를 키워본 적도 없고 방법도 모르는데 이서가 용감하게 아기로 와준 거잖아."
이서는 또 끄덕였다.
"근데 이한이도 엄청 용감한 동생이다? 이서가 혼자였고 한 번도 동생이랑 살아본 적 없는데 이한이도 이서의 동생이 되고 싶어서 용감하게 온 거야. 이서가 좋아서."
이서는 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는 그날 밤 동화책을 읽는 동안 이한이의 곁에서 같이 보고 싶다며 얼른 자리를 옮겼다. 늘 내 양옆에 아이들이 붙어 읽었는데 오늘은 새로운 날이었다. 이서는 이한이를 한쪽 팔로 안고 이한이는 누나에게 폭 기대 함께 책을 봤다.
나는 주기적으로 폭력적인 엄마가 된다. 나도 더 참고 싶지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상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방전이 되는지 숨 쉬는 것도 가슴이 답답한 날이 온다. 한동안 또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명령조로 말하고 잘 해내지 못할 때는 소리치거나 혼내며 상황을 진압했다. 그러면 늘 그랬듯이 자기 전 반성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반성한다 해서 다음날 내가 나아지는 건 아니다. 서른 중반이 된 나도 이렇게 마음먹은 일을 못 해내면서 아직 다섯 손가락을 다 채우지도 못 한 두 아이에게 그걸 바란다니. 나도 참 염치없는 어른이다. 지난주에 남편이 요새 내가 너무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화낸다고 했다. 딱히 변명할 거리도 없이 사실이었다. 그날 우리는 단골 카페에 갔다. 우리 아이들 나이대에 놀기 딱 좋은 실내 놀이터가 있고 보호자들은 유리벽 밖에서 아이들을 보며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음료 하나 시켜 몇 시간이고 놀 수 있어서 층간 소음을 조심하느라 괴로웠던 여름 내 자주 가던 곳이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남편은 본인이 읽어야 될 책을 읽고 나는 'Missional Motherhood(선교적 모성애)'를 꺼내 들었다. 남편은 그 책을 몇 년째 읽냐며 놀렸는데, 먼저 자녀를 키우던 내 또래 사모님이 이서가 태어나기 전에 물려준 책이었다. 원서라 읽다 포기하다 몇 년 동안 책은 반 정도 넘어갔다. 육아하며 괴로울 때마다 꺼내 들어 몇 자씩 읽은 책이다.
읽다가 내 폭력적인 마음을 삭 가라앉혀준 말을 만났다. 엄마는 자녀에게 무언가를 시켰을 때 자녀가 그 일을 완수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은 그게 아니라는 거였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본다고 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맡은 일을 겉으로는 완수해 내더라도 마음이 순전하지 않다면 하나님은 그 일을 온전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다. 반대로 우리가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도 내 마음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했다면 하나님은 그 결과도 기뻐 받으신다. 내 아이가 하는 일을 나는 늘 결과로 본 게 아닌가. 정리를 잘 해내지 못할 때, 빨리 준비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데 자꾸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릴 때, 글자 하나 쓰는 것도 지겨워 엉덩이가 들썩일 때, 나는 이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의심하고 다그치곤 했다. 사실 아이는 온 마음을 다 해서 엄마를 사랑하고 있는데 말이다.
동시에 나 자신을 보는 마음도 똑같다. 아이와 남편을 모두 라이드 다니고 아랫집의 불평을 피해 매일 아이들과 나가느라 몸은 피곤했고 집안일은 늘 쌓여 있었다.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이들과 나가려면 챙겨야 할 짐이 엄청나다. 더운 여름 내 나가느라 얼음물부터 갈아입을 옷, 기저귀와 물티슈, 아이들이 더워서 지칠 때 먹일 간식들을 매일 미리 챙겨둬야 했다. 나가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단 분리 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한 길로 가게 해야 하고 동시에 울려 퍼지는 스테레오에 적당히 대답해 주고 상황을 진정시켜야 한다. 엄마는 매일 피곤하다. 하지만 매일 내가 잘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무력감을 느꼈다. 쌓인 집안일을 보면 마음이 급한데 아이들은 늘 엄마를 찾고 동시에 여러 일을 해내는 나는 점점 짜증이 쌓이게 된다. 하지만 책에서 읽은 새로운 시선으로 보면 나는 너무나 잘 해내고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좋은 시간을 주려 노력하고 이웃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집에 있을 때면 최선을 다해 집안일을 하고 있다. 매일 내 몸이 부서져라 노력하고 있다. 보이는 결과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은 최선인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완벽주의에 젖어있는 내 마음도 녹았다. 아이들과 나갈 때 빼먹는 것이 있더라도 집에 다시 들어가지 않고 그냥 차에 탄다. 아이들을 데리고 더운데 집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면 나도, 아이들도 짜증이 더 난다. 부족하고 없는 것은 빌리거나 사서 쓰더라도 우리의 기분을 챙기자. 실수해도 해결하면 된다. 아이들이 매일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할 때도 그런 날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 주자. 아이가 엄마의 기분을 상하게 해도 아이도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 주자. 무엇보다 아이의 언어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라 내가 더 부드럽게 말하고 부드러운 표정과 눈빛으로 봐주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려면 내가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줘야 한다.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 매일 매 순간을 지내고 있는지 생각해 주면서 오늘 밀린 일은 내일 짬짬이 해내고 오늘 정리가 덜 된 곳은 다음에 또 천천히 해낸다. 가끔은 부실한 밥상에 앉아 민망한 웃음을 짓기도 하고(나 말고 아무도 신경 안 쓴다) 가끔 라면 먹이는 엄마여도 나는 여전히 최선을 다하는 엄마라는 걸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용기 내어 엄마가 된 건지, 그리고 매일 버거운 육아 생활에 얼마나 용기를 끌어모아 하루를 시작하는지 기억하고 싶다.
우리 가족은 모두 잘 해내고 있다. 학교 선생님도 이서가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만큼 조금 더 도와주라고 하셔서 이서가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정말 조금씩 복습하며 으쌰으쌰 열심히 하고 있다. 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한글도 알파벳도 별로 관심이 없던 이서였는데 요새는 갑자기 감각이 확 늘어 배우는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말도 잘 못 하면서도 친구들과 너무 잘 지내는 것도 물론이다. 남편도 여전히 자기 맡은 일을 최선을 다 하는 와중에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며 나를 조금이라도 쉬게 해 주려 노력하고 있고 이한이는 여전히 작은 일에 잘 울지만 우는 얼굴도 귀엽고 웃기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가장 귀엽고 예쁜 시기를 지나며 너무 많은 웃음과 사랑을 준다. 나는 말하면 입이 아프게 열심히 아이들 키우고 집안을 돌보며 앞으로의 내 인생 지도까지 그리며 살고 있다. 너무나 잘하고 있다. 나도 정말 없는 용기를 끌어모아 엄마가 됐고 이서도 이한이도 그런 나에게 용기 내어 아기로 와줬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에 매이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보며 사랑해 주자. 너도 나도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