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최악의 날

육아 경력 4년 11개월

by 김영지



어떤 직종이든 어떤 사람이든 최악의 날은 있기 마련이다. 최악의 날이란 이전 최악의 날과 비교할 수 없이 최악이다. 인간은 늘 망각하고 나의 이전 괴로움은 덜하게 기억하지만 오늘의 괴로움은 모든 기억을 뛰어넘어 있는 그대로 느껴진다. 엄마에게 좋지 않은 날은 다양하다. 집안일이 밀렸는데 할 새가 없거나, 몸이 아픈데도 혼자 아이들을 종일 돌봐야 하거나, 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엉망진창인 날이 많다. 그중 엄마로서 나의 최악의 날은 아이들이 엄마의 눈치를 보며 기분을 나아지게 하려고 하는 날이다.


요새 이한이는 마의 18개월 때만큼 운다. 그 당시 이한이를 봤던 이들은 우리가 플로리다로 이사 온 뒤에 종종 "이한이는 여전히 많이 우냐"라고 안부를 묻곤 했다. 나의 안부를 물으며 이한이가 요새는 힘들게 하지 않는지 물을 만큼, 6개월간 이한이는 참 많이도 울었다. 이한이가 말이 늘고 소통이 되기 시작하면서 울음은 잦아들었고 평화가 찾아왔다. 이서와 이한이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다고 느껴졌고 나의 육아 고통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나가던 지난달, 이한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이한이의 울음은 엄청나다. 일 년 전에도 아무 데나 뒤로 나자빠지며 울어서 몇 번이나 뒤통수가 깨졌는데 자기 몸을 전보다 더 잘 움직일 수 있게 된 지금은 자기 몸은 안 다쳐도 목청과 눈물과 몸부림은 정말 나를 진땀 빼게 한다. 말 그대로 진땀이 난다. 심지어 첫째 이서조차 이한이의 울음이 끝나길 바라며 내가 이한이를 다치지 않게 잡는 동안 직접 달려가 이한이가 원하는 것들을 찾아오고 달래곤 했다.


이렇게 이한이가 우는데 가장 열받는 순간은 그런 이한이가 아빠 얼굴만 보이면 뚝 그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순한 양이 되어 네, 네, 대답하고 아빠가 팔을 벌리면 얼른 안겨 진정한다는 거다. 엄마 앞에서는 마음껏 떼를 부리고 자기 뜻대로 해내라고 온갖 변덕을 부리면서 아빠 앞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멀쩡해지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뒷목이 뻐근하며 열이 올라온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맘때 첫째 이서도 그랬다. 어려서 동생이 생긴 스트레스도 있었을 테고 이전에는 안 보이던 떼쓰기나 밀고 때리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남편은 '이서 보는 게 뭐가 어렵냐'라고 망언을 남길 정도였는데 이서는 아빠와 함께일 때면 그렇게 온순하고 규칙도 잘 지키고 보채지도 않고 놀았다. 심지어 이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순해서 친구도 많고 예쁨도 많이 받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서는 나와 있을 때는 완전 다른 아기였다. 수없이 안아달라고 하고 울고 무엇보다 쉴 새 없이 놀아달라고 했다. 나는 집안일을 할 새가 없이 폭탄 맞은 모습의 집에 스트레스를 받고 아이와 말도 안 되는 놀이를 계속하느라 지쳤었다.


그때가 생각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올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나는 이서에게 앞으로 이한이가 울 때 원하는 걸 해주면 안 된다고 했다. 울 때 해주면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울기 시작할 거라고. 엄마는 이한이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고 진정하면 그때 도와줄 거니까 빨리 상황을 바꾸고 싶더라도 기다려줘야 한다고 부탁했다. 이서는 알겠다고 했지만 그게 한 번에 될 리가 없다. 이서도 아직 어린 아이고 워낙 몸이 날쌘 성격이라 이한이가 울면 얼른 자기가 해결하려고 벌써 일어서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이한이가 울고 있어 내가 기다리는 동안 내 옆에 와서 쓸데없는(본인에게는 중요한) 수다를 계속 떨다 혼나기도 했다. 이 상황이 그려지시는지. 나는 음량에 민감해 사람 많이 모여 왁자지껄한 곳에 가면 정말 물리적으로 귀가 저리고 핸드폰 영상도 소리를 아주 낮춰 듣는다. 한 시간 안에도 몇 번이나 뒤집어져 목 놓아 우는 이한이가 오른쪽 귀를 때리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말할 거리가 생각나는 이서가 왼쪽 귀를 때린다. 몇 년째 이어지는 이 상황이 어찌나 힘든지 요새는 점심에 나 혼자 아이들 데리고 밥을 먹으면 꼭 체해서 이서를 학교에서 데려오기 전에 이한이를 옆에 끼고 내 밥을 먼저 먹는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지내다가 결국 지난 주말 사달이 났다. 남편은 며칠째 교회 사경회 일정으로 낮이며 밤이며 집에 없었다. 나는 사경회 첫날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갔었는데 네트워크 문제로 놀이방에 예배 영상이 나오지도 않고 예배당에 가자니 불시에 빽빽 우는 이한이를 데려갈 수가 없었다. 남편이 계속 집에 먼저 가라고 했는데 어찌어찌 아이들이랑 움직이다 보니 예배가 끝날 때까지 있었다. 다음날은 남편만 교회에 가고 우리는 집에 남았고 차도 없어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집에서 보냈다. 오랜만에 티브이도 보여주고 나름 수월하게 주말을 보냈는데 주일 저녁에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주일까지 반팔을 입었는데 화요일부터 갑자기 겨울 날씨로 바뀌어서 나는 급히 아이들 겨울 옷을 찾아 꺼내고 있었다. 창고 안의 상자를 다 내리고 올리며 꺼내 열었는데 내가 찾는 외투만 없었다. 아이들 창고부터 우리 부부 창고까지 다 뒤지고 난 뒤 나는 허리도 욱신대고 진이 다 빠졌다. 저녁 먹을 때가 돼서 어제 먹고 남은 피자를 돌리려는데 이서는 피자 말고 원하는 음식이 있었다. 제발요 제발. 두 손을 모으고 불쌍한 얼굴로 부탁하니 결국 요리를 해줬다. 저녁을 먹는 동안 이서는 원했던 음식을 앞에 두고도 지치지 않고 수다만 떨며 깨작대고 이한이는 또 울었다. 나는 똑바로 앉아서 먹어라, 다 먹고 얘기해라, 같은 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아이들이 밥 먹는 걸 도왔다. 그러다 결국 터졌다. 미안하게도 꼭 이럴 때 나의 역치를 건드려 터뜨리는 건 이서다. 왜냐면 말은 알아듣기 때문이다..

"정이서. 너 밥 반그릇 먹고 말해. 더 이상 말 하지 마."

"정이서. 원하는 거 해줬는데 왜 밥을 이렇게 먹어. 이런 식이면 내일부터 간식 못 먹어."

온갖 협박과 명령에 결국 이서는 뿌엥 서운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부터 집안은 살얼음 판이 됐다. 나는 다정하게 말하는 법을 잊은 사람 같았다. 해야 할 일은 명령하고 해내지 못하면 잡도리를 했다. 만 서른넷의 나는 만 네 살이든 두 살이든 걸리면 가만 두지 않았다. 우는 이한이는 안방으로 안고 들어가 그칠 때까지 노려봤고 또 중간에 끊고 해결해 보겠다고 들어오는 이서에게 나가라고 소리쳤다. 이한이는 결국 울음을 그치고 돌아와 밥을 마저 먹었고, 이서는 끝내 다 먹지 못했다. 이를 닦던 이서는 자꾸만 나에게 엽기적인 표정을 지으며 보라고 했다. 아마 엄마를 웃기고 싶었겠지만 나는 그것도 보기 싫었다. 그런 표정도 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그냥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이서가 엄마를 웃기려고 할 필요 없다고. 나는 아이들이 잘 준비를 하는 동안 끝없이 무서운 엄마였고 결국 늦게 집에 돌아온 남편이 이한이의 울음을 마무리 지었다. 남편은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도 서운해서 자기 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울었다. 나도 나갔다 오고 싶었다. 나도 일하고 싶었다. 나도 돈 벌고 싶었다. 하루 종일 몸이 부서져라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돌봐도 엄마 말을 콧구멍으로도 안 듣는 이 작은 인간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멀어지고 돌아와 잠깐 놀아주고 안고 씻기고 말소리를 들으면 그것도 달콤하려나. 도망가고 싶은 데 갈 곳이 없어 그냥 울면서 책을 읽었다. 이서도 이한이도 내 몸에 붙어서 나를 달래 보려 하는데 그 눈치도 너무 괴로웠다. 그냥 그런 날도 있는 거라고 하고 아이들을 눕혔다. 이미 전날 저녁에도 아이들 자기 전 기도를 해주다가 나에게도 아이들을 잘 사랑할 지혜를 달라고 하며 한 차례 운 뒤였다. 그날도 아이들은 엄마 왜 우냐며 둘이 벌떡 일어나 누운 나를 내려다봤다. 어둠 속에 작은 그림자들이 귀여워 웃었는데 이날은 도무지 웃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카톡으로 나의 엄마에게 푸념을 늘어놨다. 나이 들고 가진 것 없고 들은 것도 자꾸 까먹는 엄마지만 엄마는 엄마라 품이 넓어 내 말을 가만 다 들었다. 그리고 정답을 말했다. 뭘 하려고 하지 마. 그냥 예뻐해 줘. 그냥 예뻐해 주는 건 뭘까.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바쁘고 차 한 대로 라이드 다니며 시간에 쫓겨할 일이 밀려 괴롭고 아이들을 닦달하고 늘 숨이 찰까. 육아 전문가들은 육아 생활에서 일어나는 갈등 중에 많은 부분을 개인의 문제보다 잘못된 환경 설정에서 찾았다. 내 환경 설정은 사실 처음부터 잘못된 상태라 지금까지 애들을 키워온 것만도 큰 일이었다. 늘 그래왔는데도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해야 할 일이 눈앞에 늘어져 있는 지금의 생활이 참 잔잔하게 스트레스가 됐다. 몇 주간 나는 너무나 열심히 지냈다. 너무나 밝고 씩씩하게 눈앞의 일들을 해내고 나와 내 가족의 장기적인 일들도 준비하려 힘썼다. 밤이면 교회에서 다 같이 읽는 원서를 한국어로 정리하며 말씀에 파묻혀 지냈고 잠이 부족해 피곤해도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대했다. 하지만 모든 게 해 질 녘처럼 금세 사라지고 컴컴한 어둠에 갇혔다. 나는 엄마와 카톡을 마치고도 한 시간을 혼자 울었다. 정말 오랜만에 울었다. 모든 게 다 내 탓 같았다. 세상에 안 바쁜 사람이 어딨 나, 세상에 안 힘든 사람 어딨 고 이 정도면 우리 아이들 정말 키우기 쉬운 아이들인데 나는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밉게 구나. 답답해서 한참 울면서 공간이 좀 깨끗하면 나을까 싶어 설거지도 하고 여기저기 물건들을 집어 제자리에 돌려놨다. 지금 생각하니 울며 집을 치우는 내 꼴이 참으로 이상하긴 하지만 그러고 나니 마음이 좀 나아졌다.


나는 휴대전화 메모에 고정시켜 둔 메모를 열었다. 이서와 이한이를 지금의 훈육 방법을 늘 정리해 두는 메모였다. 그중 제일 위에는 아들 육아에 대해 알려주는 최민준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적어뒀다.


1. 화를 내되 이성을 잃지 않고

2. 하면 안 될 말은 끝까지 하지 말 것

3. 아이 기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4. 전날 미리 준비하기


나는 오늘 4번을 하려다 지쳐서 앞의 세 가지를 모두 그르쳤다. 나는 내가 아이들을 키우며 자주 생각하는 몇 가지 문장도 다시 찾아봤다. '위대한 일은 없다. 위대한 사랑이 있을 뿐.' '원칙은 큰 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엔 연민으로 충분하다. -알베르 카뮈.' 위대한 인간이 될 거라 꿈꿨던 십 대의 영지는 이제 자라서 위대한 사랑만이 남는다는 걸 몸소 배우고 있다. 내 안의 수많은 원칙과 오늘 해내야 할 일들에 눌려 아이들에게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면 자꾸만 명령만 하게 된다. 나는 아이들 훈육 방법에 새로운 메모를 적었다.


이서 밥 먹기 집중 못할 때

이서야, 밥 먹기 힘들어? 잠깐 그럼 엄마랑 먼저 얘기하고 다시 밥 열심히 먹을까? 대신 이때까지는 먹어야 해.(시계에 시간 표시 해주기)


감정 조절이 미숙한 아이 - 이한

갑자기 소리 지르거나 울컥할 때: 진정할 시간을 주고 감정을 설명하고 조절 도와주기

울면 침대로 옮겨 소음 방지. 엄마는 옆에서 다른 것 하며 기다리고 울음 그치면 엄마에게 오라고.

원하는 것을 말로 설명하면 칭찬하기.

원하는 것을 주거나 대체물 주기(진정하는 것만 목표라면 원하는 것을 주기)


한 시간을 울고 메모를 정리하고 잠시 기도를 하고 나는 다른 때보다 일찍 잤다. 무엇보다 내가 피곤하지 않아야 아이들을 기다려줄 수도 있다. 내 몸이 버틸 수 있어야 내 감정도 내 안에 묶어둘 수 있다. 나는 아이들 방에 들러 온도와 습도를 확인하고 내 방 내 자리에 누웠다. 내일은 0부터 다시 아이를 대하자. 아이들은 어제의 내 잘못은 잊고 다시 나를 반길 테니까. 나도 아이들의 잘못은 다 잊고 0부터 다시. 같은 실수를 또 해도 다시 0부터.


아침이 왔고 아이들은 둘이 쪼르르 일어나 나왔다. 나는 아이들 표정을 살피며 다가갔다. 아이들은 역시 다시 0으로 나를 대했다. 어제의 뿔났던 엄마는 잊은 것처럼. 안고 돌보고 사랑해 주면서 우리는 아침을 시작했다. 내 계획보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기다려주고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 주니 서로 마음 상할 일이 없었다. 언제고 내가 못 견디고 괴로운 날은 오겠지만 그때마다 나도 아이들도 서로의 실수를 용납해 주며 다시 노력하면 좋겠다. 매일 실수해도 매일 잊어주고 안아주는 게 가족이겠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용기 내어 서로에게 와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