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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기빙, 나는 무엇을 감사했는가

엄마 경력 4년 11개월

by 김영지




엄마가 된 지 만 5년을 향해 가고 있다. 첫째 이서의 생일을 코앞에 두고 미국 명절인 땡스기빙이 되었다. 우리 교회는 땡스 기빙 주에 한 주간 휴가를 주기에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 집에서 함께 보냈다. 날씨도 따뜻하고 좋아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도 하고 이서의 친구들과 만나 노느라 바빴고 초대받은 가정에 식사도 하러 가고 이곳저곳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둔 곳에 밤산책을 다녔다. 그리고 땡스기빙 저녁을 먹으며 나는 이서에게 올 한 해 감사한 것이 뭔지 물었다. 이서는 아빠와 이한이에게는 비밀이라며 내 귀에 대고 소곤댔다(비밀 이랬는데 여기에 떠든다. 미안)


"가족을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엄마는 이서를 낳고 지금까지 길러줘서 고마워요."


이서는 가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나 싶은 기특한 말과 행동을 하는데 이 날도 그랬다. 엄마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줘서 고맙다는 말은 사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어버이날 편지를 써야 할 때 할 말이 없어 해마다 적는 멘트다. 나는 실은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아, 물론 일단 태어났는데 나를 돌봐주는 이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라 그것에는 감사했지만 낳아준 것이 감사한 적은 딱히 없었다. 어린 나는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만 5세 다 큰 어린이가 되어가는 이서는 종종 나에게 '낳아줘서' 그리고 '길러줘서' 고맙다고 말하곤 한다.


남편은 워낙 이런 말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라 쑥스러울까 굳이 묻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는 우리가 새로운 곳에 잘 적응하고 한 해 동안 함께 사랑하며 으쌰으쌰 잘 지낼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준비시켜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서와 이한이가 새로운 곳에 오느라 많이 힘들었는데 열심히 적응해 주고 지금까지 건강하고 귀엽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특히 우리 이서는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 이모 삼촌들, 친구들과 이별하느라 정말 힘들어했는데 이렇게 잘 이겨내고 다시 밝은 이서로 돌아와 줘서, 그리고 낯선 언어를 쓰는 낯선 학교에도 씩씩하게 적응해서 잘 지내는 데 많은 칭찬을 돌렸다. 진심으로 우리 이서는 엄마보다 낫다.


아이 둘을 기르며 나도 정말 많이 자랐다. 벌써 엄마가 된 지 5년을 채워간다. 그동안 내가 배운 것, 일한 것, 내가 믿고 지키고 싶었던 나의 일상과 취미 모든 것을 내려놓는데 첫 3년을 보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성하나 아프나 아이를 돌볼 것은 나뿐이었다. 그런 내가 나 개인의 원하는 것들을 자꾸 생각하고 그것을 하지 못한다고 슬퍼하면 가족 모두가 힘들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걸린 시간이다. 나는 정말 힘써 아이를 키웠고 정말 많이 포기하고 내려놨다.


그래서 지금 그 시간이 안타까운가 하면 그렇지 않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능력이 있지만 게으른 부분과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것 등을 깨달았고 나의 환상과 현실 사이에 어떤 지점도 찾았다. 과연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조금씩 깨달았다.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 나는 늘 내가 어떤 인간인지 오해했다. 내 머릿속의 나는 실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다. 내 머릿속의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사람보다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들춰지지 않아서 유지할 수 있었던 나의 허상을 나는 진짜인 것처럼 살았다. 그러면서도 나의 삶은 늘 내 성에 차지 않았고 나는 늘 무언가 비어있는 것만 같았다.


두 아이를 키우며 나는 수없이 무너지고 좌절하고 괴로워하고 후회했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비극들은 뒤에 두고 해야 할 일과 좋은 면을 볼 연습을 수없이 했다. 괴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고 나의 잠재력을 과대평가하는 환상에서도 벗어나고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에서도 벗어났다. 수없이 돌아가던 내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족과 이웃에 친절할 몸과 정신을 위해 내 평생 멀리하던 운동을 매일 하고 바쁘고 귀찮아도 아이들을 챙기는 것처럼 나도 챙겨 건강한 끼니를 먹는다. 스크롤을 내리느라 바빴던 손가락도 멈추고 다시 책을 잡았고 집중력이 짧아도 그 짧은 만큼 뭐라도 해보려 노력한다.


이제 나는 어릴 적 내가 꿈꿨던 대단한 사람은 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제야 알게 된 건데 나는 유명해지거나 대단해지는 것을 대단히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조용히 글이나 쓰고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에 성실히 도전하며 사랑할 만하지 않은 이를 사랑하는 데 힘써보고 부모로서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보호하며, 무엇보다 정직하게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내 진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두 아이를 울며 웃으며 키우다가 알게 됐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는 떳떳한 부모가 될 수 없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것을 찾으며 나 하나 살기도 힘들던 나를 위해 두 아기가 왔나 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한껏 힘쓰고 한껏 내려놓으며 살아보니 무엇을 힘쓰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겠다. 그것이 지금까지 엄마로서 경력을 이어온 내가 깨닫고 감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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