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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Feb 21. 2019

15. 여행




시간여행을 딱 한 번만 할 수 있다면 언제를 선택해야 할까. 중고등학생 때였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학생이 된 미래의 나를 보고 왔을 거다. 공부할 것은 끝이 없는 것만 같고 해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잘 지내야만 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 시간을 지나 나는 무엇이 되어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오 년 후, 십 년 후의 나를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미래를 보고 싶지 않다. 미래를 미리 알게 된다는 것은 지금 나의 행동에 상당한 제약을 줄 것만 같다. 보고 온 나의 미래가 지금 나의 노력에 비해 별 것 아니거나 너무 거대하다면 기운이 빠져 더 이상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나의 미래가 나의 노력과 운과 만난 것이라면 노력을 꽃피우게 할 그 기회가 언제일지 몰라 목을 빼고 기다리게 될 거다. 나는 원래 지금을 좋아하고 아무리 행복한 지금이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원래의 나라면 과거를 선택할 리는 없었을 테지만 나는 이제 과거로 돌아갈 거다.


2016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부여의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두 달쯤 지나서 여름이 왔다. 우리는 가족 여행을 떠났다. 세어보니 4년 만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는 여행도 아니고, 우리 차를 운전해서 떠나는 것이었는데도 그렇게 됐다. 그 해 여름에는 올림픽이 한창이었는데 우리의 휴가도 올림픽 주기로 돌아온 것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모든 계획을 맡겼다. 엄마는 보성의 차밭을 꼭 보고 싶다고 했고, 아빠는 담양의 죽녹원에 가고 싶어 했다. 나와 동생은(대부분 내가) 지도를 보며 계획을 세웠고 차밭이 발아래로 펼쳐지는 숙소를 예약했다.


떠나기 전부터 우리는 아주 들떠있었다. 다 같이 차를 탈 때면 늘 그랬듯이 우리는 안전한 여행을 위해 기도했고, 4년 만의 여행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차 안에서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고 큰 목소리로 경쟁적으로 떠들다가 잠들었다. 그렇게 보성에 도착해 이제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기차역에 가서 병희와 풍금을 연주했다. 풍금에 그려진 대로 건반을 누르니 익숙한 노래가 나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엄마는 여느 때처럼 우리를 영상으로 남기고 있었다. 아빠는 풍금 옆에 서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런저런 곳을 둘러보고 우리는 예약한 숙소로 찾아갔다. 내비게이션은 점점 높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함께 달리던 다른 차들은 점점 다른 길로 사라졌고 우리는 인적이 드문 가파른 길로 들어섰다. 정말 이 곳이 맞는지 의심하며 모퉁이를 도는데 정말 산비탈 한쪽에 찻집을 겸하는 펜션이 나타났다. 건물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물로 들어가니 아주 조용했다. 다도 체험을 할 수 있는 마루와 낮은 상이 있었다. 건물을 둘러보다 누군가 창밖을 보라고 작은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모두 창밖을 봤다. 인터넷으로 본 사진 그대로 초록색 녹차 밭이 창문을 꽉 채우고 있었다.


건물 옆의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양 옆으로 이 언덕과 저 언덕까지 차밭이었다. 우리는 해가 넘어갈 때까지 그곳에서 산책했다. 그 해 여름은 아주 더웠는데, 산속 풀 사이에 있으니 그리 덥지도 않았다. 방으로 올라와 커다란 창을 열고 나무 마루가 깔린 발코니에 나서면 발아래로 녹차밭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다음 날 아침에도 해가 뜬 차밭을 보러 나갔다.


아빠와 엄마는 이렇게 멋진 풍경이 보이고, 시원하고 넓은 방을 어떻게 찾았냐며 몇 번이나 내 덕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빠에게 어깨를 쭉 펴고 말했다. 아빠, 아빠가 돈을 버니 그 덕에 우리 이런데도 오고 정말 너무 좋다. 그러자 아빠는 그래?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옆에 있던 엄마도 그래, 아빠 덕에 정말 좋다,라고 했다. 아빠는 정말로 뿌듯한 얼굴이었다. 그 여행은 오랜만인 만큼 소중하다는 걸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더위로 기록적인 여름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대나무 숲을 거닐고 돌아왔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아빠 덕이라고 즐거워하던 우리의 말이 아빠가 그렇게 몸이 아픈데도 일을 하게끔 한 것은 아닐까. 아빠의 평생 우리에게 돈으로 행복을 줄 기회가 없었다. 직장에서 돈을 벌기 시작한 후부터 아빠는 종종 오늘 아빠가 밥을 살 거라며 아무도 계산할 생각 말라고 우렁차게 말하곤 했다. 돈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딘가 놀러 가고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아빠에게는 아주 새로워서 더더욱 행복한 일이었다.


아빠가 병원에서 남긴 두 권의 수첩에는 아무런 후회도 적혀있지 않았다. 아빠는 그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민했다.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병원에 누워있던 이들은 지금쯤 모두 어디에 있을까. 나는 누구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일까. 아빠는 점점 약해지는 몸을 느끼며 두려움에 눌릴까 걱정했지만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아빠가 떠난 후, 아니 아빠가 걷지 못한 때부터, 아니 아빠가 절뚝거리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자주 과거로 돌아간다. 그때의 아빠는 아무리 말해도 자꾸만 일터로 나갔다. 조금이라도 가망이 있었던 때로 돌아가 아빠를 붙잡고 말하고 싶다. 아빠 나는 미래를 보고 왔어, 우린 정말로 슬퍼하고 있어. 아빠가 없으니 그 자리가 너무 커. 아빠 지금이라도 일을 쉬고 건강한 것 먹고 운동하며 다시 회복해보자. 그렇게 우리랑 좀 더 살자.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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