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지 Mar 02. 2019

16. 아빠와의 여행



아빠와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산과 바다로 다녔다. 나와 동생이 자라서 홀로 걷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자 여름이면 가족 여행으로 텐트 하나를 차에 싣고 한적한 바다로 갔다. 시간이 흘러 엄마는 나에게 아빠가 여행을 즐길 줄 몰랐다고 했다. 아빠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고, 엄마는 어디든 멋진 길이 있다면 즉흥적으로 가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목표에 도착하면 그곳을 보고 금세 돌아섰고, 엄마는 오래 머물며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새로운 것이 있으면 해 보고 경치가 잘 보이는 곳이 있으면 올라가 보고 물이 있다면 헤엄쳐야 하는 우리와 달리 아빠는 늘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는 것이 중요했다.


아빠는 물에 빠져 어떤 사람은 구하고, 어떤 사람은 구하지 못했던 몇 번의 큰 사고를 겪었다. 그 후로 아빠는 파도가 없는 수영장이 아니면 물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와 나와 병희는 지치지 않고 헤엄쳤는데, 아빠는 모래 위에 서서 우리를 지켜봤다. 언제라도 우리를 구하러 올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몸속에 자라는 암을 발견한 후, 아빠는 달라졌다. 아빠는 주말마다 엄마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봄이 오면 매주 새로운 꽃이 펴서 전국 각지에 꽃 축제가 열렸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 나오면 둘은 훌쩍 떠났다. 산수유 축제에도 가고 복숭아꽃 축제에도 가고 매화 축제와 벚꽃 축제에 갔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둘의 얼굴은 즐거움에 복숭아처럼 물들어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 여름이 됐다. 아빠는 여전히 왕복 두 시간 거리를 다니며 일을 했다. 아빠는 부작용이 적고 순한 신약의 임상시험에 뽑혀서 치료를 받고도 배추도사 같은 머리숱은 여전했고 겉모습은 다른 환자들에 비해 활기찼다. 하지만 암은 줄어들지 않았고 자꾸만 새로운 장기로 번져갔다. 수술을 받을 때 이미 폐에도 번져있던 암은 임파선을 타고 올라갔다. 림프를 타고 도는 암세포는 어디에 자리 잡을지 알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이대로라면 임상 시험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는 기존의 약을 고르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빠의 증상에 딱 맞는 약은 아직 없었다. 그리고 아빠의 암이 발견된 후 좋은 소식도 들은 적이 없었다.


이렇게 되자 엄마는 일 하겠다는 아빠의 고집을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었다. 엄마는 아빠의 친구이자 사장에게 전화했다. 사장 아저씨는 본인도 암을 겪었기 때문에 엄마의 말을 이해했다. 아빠는 가장 더운 여름에 한 달을 쉬게 됐다. 나도 마침 일 하던 대안학교의 방학이 되어서 아빠와 엄마와 나는 옹기종기 앉아 게으른 날들을 보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아침 일찍 나가는 병희를 배웅하는데 왠지 머쓱해지기도 했다.


엄마는 계속해서 열심히 밥을 차렸고, 아빠는 마을 깊은 곳에 있는 사당 주변을 돌며 운동했다. 나는 몇 번 강아지를 데리고 아빠를 따라갔다. 우리는 모여서 영화를 봤고 각자 관심 분야를 공부했다. 하지만 다 같이 시간이 맞질 않아 가족 여행을 가기는 어려웠다. 아빠가 다시 일하러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나는 아빠에게 우리끼리 여행을 가자고 했다. 가까운 곳이라도 어디든.


그래서 아빠와 단둘이 짧은 여행을 했다. 경치 좋은 곳을 다니며 감탄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도 했다. 아빠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남간정사와 정지용 문학관에 들러 풍경을 보며 한참을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그리고 시에 대해 이야기했고, 우리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눈을 반짝거리면서. 문학관을 나와 옆의 카페에 들어와 더위를 피하는데, 아빠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말했다.

"행복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는 병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최근에 발견된 암이 아주 조금 줄었다는 소식이었다. 말로 들었을 땐 보잘것없는 수치지만 세포인 암을 생각하면 큰 변화였다. 아빠를 담당하는 간호사가 고맙게도 좋은 소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려주고 싶어 전화를 한 것이었다. 임상 시험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아빠의 몸이 조금 나아졌다는 검사 결과를 전화로 듣고 나는 눈을 꾹꾹 누르면서 눈물을 참았다. 아빠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아빠 앞에서 운 것은 처음이었다. 운전하던 아빠가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아빠 이제 이겼어, 다 나을 거야- 하고 말했다.




별똥별

          정지용

별똥 떨어진 곳

마음해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오



그러나 별똥을 잊지 말고 새로운 별을 또 발견하자.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며 얘기했다. 시인의 말처럼 흙에서 자라난 우리의 마음을 잊지 말자.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남겨 세상의 한 구석을 밝히는 사람이 되자.




매거진의 이전글 15.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