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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13. 2019

14. 시와 죽음(下)


* 아직 미완성입니다.



수술을 앞두고 연말에 다시 한번 담당 의사를 만나러 가는 날 나도 아빠와 엄마를 따라갔다. 처음 병원에 다녀온 아빠와 엄마는 자꾸만 모든 것이 잘 되었다고 했다. 안심이라며 웃는 얼굴에 나는 안심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함께 가겠다고 했다. 아빠는 웃었다. 아빠는 어디든 내가 함께 가는 것을 좋아했다. 병원에서 나는  담당 의사에게 굳은 표정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아빠는 자꾸만 웃었다. 감사하다고 자꾸만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아빠의 병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아빠는 또다시 잘 될 거라고 말했다. 잘 이겨낼 거라고 자꾸만 말했고, 그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입원하기 전에 아빠는 신춘문예 당선자 인터뷰를 위해 엄마와 함께 부산에 다녀왔다. 그 날 아빠는 행복했다. 부산에 오가는 동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노트에 잔뜩 적어뒀다. 엄마와 부산에 꼭 다시 오자고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던 약속도 했다.


새해가 밝았고, 아빠의 수술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새해 첫 아침에 날이 다 밝기도 전에 아빠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 앞에 부산일보에서 보낸 신문 열 통이 놓여있었다. 그 새벽에 용케 먼 시골집까지 신문을 배달해줬다. 그 안에는 아빠의 당선 시와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아빠는 그 신문을 신줏단지 펼치듯 거실 바닥에 크게 펼쳤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천천히 읽었다. 읽고 다시 읽고 또 읽었다. 한참을 반복해 읽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시상식은 아빠의 수술 삼일 뒤였다. 아빠는 몸이 빨리 회복돼서 시상식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빠는 수술을 받았다. 아빠는 수술 전부터 회복이 빠르면 부산에 다녀올 수 있을지 의사에게 물었다. 회복이 빠르면 갈 수도 있다는 답을 들었지만, 수술을 마치고 나니 아빠는 갈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그래서 나와 병희가 다녀오기로 했고, 아직 남자 친구였던 상현이가 선뜻 우리를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아빠와 엄마는 부산 지리를 아는 상현이가 우리를 데려간다니 안심이 되기도 하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엉켜 요상한 표정을 지었는데 상현이는 일부러 더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빠가 수술실로 가는 아침에도 천안에서 내려와 밤새 아팠던 아빠를 안심시키고 침대를 함께 밀고 갔던 상현이었다. 아빠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우리 셋은 부산일보에 도착했다. 시상식장은 아담했다. 빨간 카펫이 깔린 바닥에 의자가 줄을 맞춰 놓여있었다. 병희는 상현이의 정장을 빌려 입고 나와 함께 앞줄에 앉았다. 상현이는 우리 뒤에 앉아 핸드폰으로 연신 아빠에게 보낼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우리는 대리 수상자가 된 덕에 가슴에 꽃을 달고 아무나 앉을 수 없는 맨 앞자리에 다른 당선자들과 앉았다. 사람들은 우리를 반기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는데 그건 모두 아빠를 향한 것이었다. 병희는 옆에서 아빠가 소감문을 적어준 작은 종이를 다시 읽고 있었다. 온통 빨간 카펫이 깔린 촌스러운 시상식장에 앉아서 나는 아빠가 이곳에 얼마나 오고 싶었을까, 돌아가면 모든 것을 얘기해주려 구석구석 열심히 살펴봤다. 아빠에게 도착했다고 그곳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아빠와 엄마는 병실에서 우리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의 이름이 불리고 나와 병희는 강단에 올라가 상패와 꽃다발을 받았다. 그리고 병희는 다시 올라 아빠의 짧은 수상 소감을 대신 전했다. 아빠는 늦은 나이에도 이러한 기회를 얻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했다. 언젠가 꼭 직접 찾아와 인사를 전하고 다시 건강해져 더 좋은 시를 많이 쓰겠다고 적었다. 진심이었다. 아빠가 적어준 말을 모두 읽은 병희는 종이를 접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빠가 얼마나 오랫동안 어떻게 시를 공부하고 써왔는지 지켜봐 왔기에  아빠가 다시 일어나 좋은 시로 보답하겠다는 그 약속이 진짜라는 것을 안다고.


우리 셋은 그날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광안대교를 두 번 돌았다. 그리고 잠 못 드는 아빠가 있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새벽 한 시가 넘었고 아빠와 엄마는 우리를 보고 활짝 웃었다. 다들 잠든 밤이라 우리는 휴게실로 나왔다. 이제 막 조금씩 걷기 시작한 아빠는 세수도 못한 얼굴로 상패를 받아 들었다. 검고 홀쭉해진 아빠의 볼이 기쁨으로 움찔거렸다. 우리는 시상식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작은 목소리로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아빠는 정말로 기뻐했다.


십여 년간 한 분야에 열정을 쏟아 결국은 새로운 시작을 맞은 아빠를 보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진정한 재능은 '성실'이었다. 각자 그 성실을 쏟는 분야는 다를 수 있지만 결국 나의 태도가 그 결실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실이 진짜 청춘을 만드는 것을 직접 봤다. 나는 밤늦게 이 마음을 편지에 적어 아빠에게 전했다. 그동안 놓았던 글을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포기하지 말라던 아빠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수많은 실패를 넘어온 아빠는 오십이 넘어 새로운 봄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덕에 일생일대의 병 앞에서도 쉽게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아빠는 자주 큰 소리로 웃었다. 그 덕에 우리도 일생일대의 위기 앞에서 쉽게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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