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지 Jan 13. 2019

13. 시와 죽음(上)


*아직 미완성입니다.



아빠는 시골집에서 맞는 두 번째 여름 방학 전에 사업을 정리했다. 그리고 나와 동생이 방학이 되자 아빠도 함께 집에 있었다. 몇 달을 집에서 보낸 아빠는 어느 낮에 갑자기 가족들에게 말했다.

"나 시집을 내기로 했어."

응? 우리는 모두 귀를 의심했다. 아빠는 엄청나게 큰 공책을 가져왔다. 그 크고 두꺼운 공책 안에 모나미 펜으로 쓴 짧은 시들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사업을 정리하고 난 뒤 아빠의 마음속에 들어있던 깊고 슬픈 것들이 그 안에 적혀있었다.


아빠가 시를 쓴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나는 중학생이 되며 '시'라는 것을 교과서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나에게 시인의 이미지는 여리거나 복잡하거나 홀로 사색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거나 외로운 사람이었다. 아빠는 늘 사람들을 좋아하고 새벽 늦도록 그들과 함께 있곤 했다. 전화번호부에는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은 아빠를 좋아했다. 아빠는 운동을 좋아하고 TV 보는 것을 좋아하고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웃는 것을 좋아하고 자는 것을 좋아했지만, 시를 좋아하리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아빠는 이미 엄청나게 많은 시를 썼고, 시집을 내기로 했다. 게다가 시집을 내겠다는 단순히 아빠의 의지가 아니었다. 아빠는 이미 출판사와 시집을 내기로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그러니까 정말로 시집을 내게 된 거였다.


아빠의 시를 처음 읽은 날, 나는 놀라서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시집을 내게 됐다니 멋지다고, 축하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에게 미안하지만 솔직히 속으로, 이렇게 단순하고 뭉툭한 시를 시집으로 내주는 출판사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시간이 흘러 아빠에게도 이 얘기를 했는데 아빠는 웃으며 그렇기에 그게 얼마나 소중한 책이었는지 다시 한 번 말했다. 아빠가 시집을 내겠다 선언한 그 날 나는 엄마와 그 커다란 종이들을 넘기며 아빠의 시를 읽었다. 아빠는 마음에 쌓아뒀던 것들을 단순하고 솔직한 말들로 적었다. 그리고 아빠는 시집을 냈다.


그 후로 아빠는 십 년이 넘도록 시를 썼다. 처음에는 크고 작은 책임과 괴로움으로 아빠의 마음에 쌓인 것을 풀어보려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문학상을 받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 아빠는 낮에는 일 하고 밤에는 새벽까지 시를 읽고 썼다. 그 시간 동안 아빠는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았다. 말은 적어졌고 아빠가 집중해야 할 것들을 많아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아빠를 지켜보며 알게 됐다. 아빠는 여리고, 복잡하고, 홀로 사색하며 시간을 보냈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아빠는 시를 쓰며 행복한 사람이었다. 여전히 사람을 좋아했지만 아빠 안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더 즐거워 보였다.


아빠는 어느 정도 시를 공부한 후부터 해마다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아빠는 치밀하게 주요 신문사의 신춘문예 일정을 모두 적었고 각 심사위원의 스타일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맞춰 자신의 시를 분류했다. 한 신문사에 세 편의 시를 보내야 했고 각 신문사에 보낸 시는 겹치면 안 되었다. 그렇게 준비한  시는 응모 마감 날짜를 며칠 남겨 미리  보냈다. 무슨 일이든 약속보다 일찍 마치는 것은 아빠의 습관이었다. 아빠의 시가 신춘문예에 걸맞았든 아니든 아빠는 연말이 되면 긴장했다. 십 년 동안 아빠가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아빠는 신춘문예에 탈락할 때마다 그 해의 당선 시를 모은 책을 샀다. 그리고 계속 공부했다. 집에는 같은 제목을 가진 책들이 해마다 쌓여갔고 아빠의 시는 그 안의 시들처럼 점점 길고 어려워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5년 가을, 아빠는 드디어 자신의 시가 신춘문예가 원하는 모양새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 해 아빠가 얼마나 기대했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이번에는 정말로 될 것 같다고, 아빠는 들뜬 목소리로 자꾸만 말했다. 우리는 그런 아빠의 기대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너무 기대하고 실망할까 봐 걱정했다. 드디어 겨울이 되었고 아빠는 매일 전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빠가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아빠는 정말로 실망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부여에서 일을 시작했고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이제는 시를 쓸 시간이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포기하지 않고 그 해에도 다시 한번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아빠는 이번엔 우리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 12월 첫 주말에 부산일보의 문화부 기자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빠가 신춘문예에 응모한 본인이 맞는지, 그리고 그곳에 보낸 시를 중복 투고한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 이런 전화가 온 것은 처음이었다. 아빠는 그 통화가 끝나자마자 현직 기자인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것을 물어왔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지 묻자 그 기자는 아무래도 최종 심사에 올라간 것 같다고 했다. 아빠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심장이 빨리 뛰는 만큼 이 희망적인 뉴스를 우리에게 자꾸만 말했다. 아빠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들떠 있었다.


그 후로 발표일이 될 때까지 아빠는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혹시라도 전화를 못 받으면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갈까 봐 늘 보조배터리를 들고 다녔다. 그런 큰 대회가 무슨 대학 추가 입학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당선자를 바꾸지는 않을 거라고 아무리 안심시켜도 소용없었다. 일이 없는 주말이면 휴대전화를 바닥에 뉘어놓고 웅크리고 앉아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아빠는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네, 네, 네, 네, 네! 를 외쳤다. 아빠는 드디어 정말로 신춘문예 당선자가 되었다. 통화가 끝난 뒤 아빠는 우리 모두에게 그 소식을 알렸다. 그날 밤, 나는 거실에서 아빠의 옆에 앉아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은 아빠가 얼마나 멋진지 말했다. 아빠는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은 아빠도 결과가 없어 말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다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글을 쓰라고. 아빠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표정은 차분하고 단호했다. 나는 아빠의 진지한 얼굴에 놀라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아빠는 야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믹스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 기계 앞에 앉아 제품을 확인하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아빠는 몇 번이나 화장실에 갔지만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아랫배가 아플 정도로 소변이 차도 나오지 않아서 결국 가까운 응급실에 갔다. 병원에서는 얼른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잠들지 않고 있던 엄마와 나는 얼른 증상을 검색해봤다. 가벼우면 방광염, 최악이면 신장암인 것 같은데, 엄마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엄마에게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아빠는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고 그 다음 날 아빠와 엄마는 충남대 병원으로 갔다.


암이었다.


아빠의 오른쪽 신장에는 원래 신장보다도 더 큰 암이 자라서 이제는 신장을 잘라내야 했다. 고작 삼개월 전의 건강검진에서도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암은 세포라 주인이 건강할수록 빠르게 자란다. 젊은 사람처럼 건강했던 아빠의 세포들은 돌연변이가 되어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수술을 미룰 수 없었는데 보름 뒤에 수술 일정이 잡혔다. 아빠는 요새는 수술 예약도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데 다행히 그 날 수술을 빨리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자꾸만 말했다. 아빠는 조금이라도 좋은 점을 찾으려 했고, 우리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아빠의 병은 아빠의 일생에 가장 큰 성공과 함께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12. 차근차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