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지 Jan 12. 2019

12. 차근차근



중학생이 되면서 시험을 앞둔 밤에 나는 새벽까지 깨어 공부했다. 학생 시절의 나는 항상 불안해하고 나를 믿지 못했다. 대학을 가고 어떤 학문을 공부하거나 직장인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기에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모른 채, 그저 못 하는 아이가 되기 싫은 욕심으로 공부를 하곤 했다. 그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 새벽에 아빠는 함께 깨어있었다. 아빠가 도와줄 수 있는 과목을 공부할 때는 내가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줬고, 내가 혼자 극복해야 할 때는 외운 것을 확인해주거나 그저 기다려줬다. 한문이나 기술 같은 과목은 아빠에게 특별 과외를 받았다. 아빠는 어렸을 때 서당에서 한문을 배워서 부수나 획을 설명해주며 문장과 구조를 쉽게 설명해줬다. 기술은 직접 아빠의 공장에 데려가 부품들을 보여주며 그 움직임까지 보여줬다. 나는 아빠 덕에 포기하는 과목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도와준 과목은 절대 틀리지 않으려 더 집중했다.


쏟아지는 잠을 깨려 마당에 나가 공부하려고 현관의 중문을 드르륵 열면 아빠는 얼른 옷을 챙겨입고 따라왔다. 아빠는 마당의 등을 켜고 나를 부담스럽게 하지 않으려 저 멀리 떨어져 같이 있었다. 나는 시험을 앞두면 스트레스가 심해져 공부하던 중에 갑자기 울기도 했는데, 아빠가 함께 있다는 것이 정말 큰 힘이 됐다. 아빠는 내가 울면 속상한 표정으로 등을 쓰다듬어줬고, 딸은 항상 잘해왔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줬다. 나는 앞으로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아빠의 말을 정말로 믿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늘 믿어준다는 것이 항상 위로가 됐다. 그리고 아빠는 나와 똑같이 부족한 잠을 자고 아침이면 나는 학교에, 아빠는 회사에 갈 준비를 하고는 함께 집을 나섰다.


아빠는 대학 합격 여부도 나보다 먼저 확인했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내가 충격을 받을까 먼저 찾아봤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는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딸, 혹시 놀랄까 봐 아빠가 먼저 확인해봤어. 합격을 축하해. 딸은 아빠의 기쁨이다.


대학을 다니며 나는 훨씬 더 가벼워졌다.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본인의 관심과 노력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정말 재밌는 일이었다. 나는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지만 불안해하거나 울지 않았다. 나는 내 시간과 노력에 책임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문제는 취업 준비였다. 본격적으로 서울에서 취업을 알아보기 전, 나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육 개월을 목표로 다시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그 겨울, 나는 도로주행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토익 스피킹 시험을 홀로 준비하며 계속해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수정하며 매일을 보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앉아 스피킹 책을 펴고 중얼거리는 동안 나는 갈피를 못 잡으며 괴로워졌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메일을 보내며 그렇게 짧은 시간에 집약적인 탈락을 맛본 것은 살며 처음이었다.


추운 시골집에서 각자의 일로 나가 있는 가족들을 기다리며 나는 난로에 장작을 넣었다. 자소서를 쓰고 홀로 공부를 해도 시간은 남았다. 영화를 보고 책도 읽었지만 생각이 많으니 감흥이 없었다. 나는 생각을 비우려 일생 처음으로 커다란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정말로 짜증이 났다. 큰 곳이든 작은 곳이든 나를 오라고 하는 곳은 없었고 막상 일을 시작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뭔지, 나를 원하는 곳은 어딘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정리는 되지 않았다. 나는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해결할 건 많은데 너무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빠는 답장을 보내왔다. 아빠가 방법을 찾아줄게. 차근차근 같이 해 보자.


차근차근, 나는 아빠가 보낸 그 단어를 조용히 입으로 말해봤다. 다정한 말이었다. 아빠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긍정적'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다양한 동작법 중에서도 '차근차근'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반면에 나는 '느릿느릿'인데 직관적이고 충동적이라 계획대로 되는 날이 많지 않았다. 스스로의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가끔은 욱할 때가 있었다. 그 겨울에는 그런 순간이 많았다. 해야 할 건 많은데 나는 느리고 어디서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 욱욱거렸다. 그때의 아빠는 다시 새로운 일을 찾느라 고민이 많은 때였다. 가장 바쁘고 힘든 것이 아빠임을 알면서도 나는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스물셋의 나는 스물넷이 되면 조금 더 지혜로워질 거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 날 저녁 아빠는 나를 데리고 기능 시험 이후로 멈췄던 운전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동네를 천천히 돌고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차를 대고 내렸다. 나는 하늘을 보며 아빠에게 외쳤다. "아빠, 별이 엄청 많아!" 아빠는 별을 보지 않았다. 나를 봤다. 아빠는 "영지가 오늘 기분이 좋구나"라고 말했다.


혼자서는 창문도 보이지 않던 일들이 아빠가 도와주기 시작하니 대문이 열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차근차근.

차근차근.


상냥하고 지적인 단어다. 우리 동네는 항상 별이 많지만 그 날따라 밤은 더 맑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아빠의 즐거움과 자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