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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잎클로버처럼 Mar 18. 2021

퇴근 후에 또 다른 삶, 워라밸이 가능할까?


어느 순간 나는 바쁘고 정신없는 삶 속에 ‘나’는 없음이 무료해졌다. 시간 관리도 안 되었고 삶의 균형이 깨지고 있음을 느꼈다. 사십 즈음, 몸도 마음도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일을 하면서도 즐거운 시간, 퇴근 후에는 더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반복되는 무료한 날들에 대한 투정이 시작되었다.


김창옥 교수의 <화통하라!>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 중 하나는,

일 ‘만’ 하지 말고 일 ‘도’ 하라고 했다.

그 순간 깨달음이 밀려왔다. 그동안 내가 놓친 것에 대해 아차 싶었다.

‘아, 나는 정말 일만 했구나! 무료한 일이 아닌 즐거운 일을 하고 내 삶에 에너지가 될 취미생활도 해야겠구나!’


퇴근 후에 또 다른 삶, 워라밸이 가능할까?”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멋진 말이다. 동시에 쉽지 않은 일이다.


퇴근 후에도 아이들과도 더 많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현실의 나는 퇴근 후에도 퇴근이 없었다. 육아 맘, 육아 대디라면 누구나 그렇듯 점점 피폐해져 갔다. 집안일이 아닌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때는 그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 그 시간을 만들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라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생각했다. 더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당근을 찾고 있었다.


그즈음, 아이들 하교부터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돌봄 이모님이 사정이 생겨서 그만두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잦은 교체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고, 마침 회사에서 시행하던 육아시간 보장제도가 있어서 이를 활용해 아이들을 조금 더 케어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렇게 하루 2시간 단축근무가 시작되었다. 오후 6시 퇴근에서 오후 4시 퇴근으로 2시간이 단축되었다. 처음 몇 번 4시에 퇴근을 해보니 정말 새로운 세상이었다.


하루 2시간이 가져다준 삶의 변화는 엄청났다. 5시 전에 집에 도착하면 저녁 준비를 하고 6시쯤 저녁을 먹고 정리가 되면 7시부터 자는 시간까지 2시간이 여유가 생겼다. 이 시기 아들의 같은 반 친구 엄마들과 품앗이 육아활동을 기획하여 시작했는데 너무 뿌듯하고 많은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되는 것만 같았다. 집-회사-교회만 알던 나의 삶은 조금씩 다른 삶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삶의 질도 향상되었다. 그 꿀맛 같은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네트워크 구축공사의 감독으로 출장이 잦아졌고 마감을 위해 퇴근은 다시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단축근무는 하지만 일의 양은 그대로다. 그럴 수밖에 없음을 당연히 인정한다. 누군가 해줄 수 없는 일들을 떠 않고 있다는 부담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현재의 답답함, 어려움에 있어서 우리는 한 단계를 뛰어넘을 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버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받기도 한다. 직장생활에 있어서 그건 승진이 아닐까? 무료한 일상을 원치 않았던 나, 위로 올라 갈수록 내가 원하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나 또한 반드시 승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조직의 발전이고, 동시에 나의 발전이라 생각했다.


매년 초 초급간부 시험이 있기 때문에 최소 1~2달 전부터는 간부시험 준비를 한다. 그 무렵 나도 시험을 준비를 시작했고 두 번째 도전이었다. 첫 번째 시험은 유형 파악할 겸 가볍게 봤다면 이번엔 정말 합격할 각오로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시험 준비하라고 아이들을 돌봐주러 한 달 동안 친정엄마가 올라와주셨는데, 나는 더 확고한 결심이 필요했다.







나에게 질문해본다.


열심히 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합격할 자신이 있는가?

리더가 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어떤 인사발령(순환근무제도)에도 수긍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도 잘하고 가정도 잘 지킬 수 있는가?


선뜻 대답이 잘 안 나왔다.


이번에 반드시 합격할 거야!라는 각오로 임해도 합격할까 말까인데 각오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이 되었다. 승진은 직장인들에게 좋은 당근이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이 열심히 일한 우리를 위안해 주기도 한다. 나는 이 오아시스 찾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물을 먹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질문해본다.


, 지금 이어야 하는가? ?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일과 육아, 지금 나에게 더 중요한 건 무엇인가?


단연 아이들과 우리 가족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으로 내가 바라는 것이다. 일은 지금 아니어도 될 수 있지만 아이들과의 시간은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를 돌아보고 남편과 아이들을 돌아본다.


“엄마는 만날 밤에 별 볼 때 왔어요.”

첫째 아이의 말 중에 잊혀지지 않는 말이다.


어린이집 다닐 때 몇 번 했던 말인데 시기가 겨울이기도 했고 정말 하늘에 별이 보였었다. 그때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여름에는 해가 길지만 겨울에는 해가 짧아서 아이를 데려올 쯤에는 별이 보이는 거는 당연한 거야.' 라며 합리화하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은 마음의 가시처럼 콕 박혔다. 정말 최선을 다해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좋았던 기억과 안 좋았던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 다 가고 나 혼자 남았어. 울다가 선생님 품에서 울다 잤고 엄마가 오니깐 달려가서 엄마 품에 안겨서 울었던 기억이 나. 정말 깜깜한 밤이었어(아이의 눈은 슬펐다). 그게 안 좋은 기억이고 좋았던 기억은 아이스크림 먹은 거야.” 하며 웃는다.


주말부부였던 나는 평일에도 아이 등 하원부터 모든 것을 도맡았다. 그날은 저 멀리 창원까지 출장이었는데 예상시간보다 너무 늦어져서 유치원 샘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했었다. 다행히 유치원은 야간보육이 되는 곳이라서 한시름 놓았지만, 애타게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니 미안하고 짠해서 휴게소 한번 안 가고 3시간을 달려왔었다. 시간은 9시 넘은 시간. 엄마 왔다 하는 소리에 비몽사몽 잠이 깨서는 엄마 얼굴 보자마자 앙앙 우는 아이를 달래며 함께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나는 방학이 없어요."

1~2학년 4학기 봄방학 2번 포함해서 6번을 방학했어도 매번 돌봄 교실에 나가야 했던 현실이 서글펐나 보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은, 방문을 쿵 닫고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내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낯설었다.

‘네가 이러면 안 되잖아? 엄마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는 훈육 중이었나? 잔소리 중이었나? 화풀이 중이었나? 

더 이상 힘으로 감정적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부터 이러면 사춘기는 어떻게 보내지? 생각만 해도 앞이 캄캄했다.


쫑알쫑알 귀여웠던 입, 늘 귀에 걸리던 그 입이 어느새 무겁게 닫히고 초롱초롱한 눈은 엄마의 말이 맘에 안들 땐 흘기는 눈으로 변했을 때 당황했다. 아이는 커가면서 어렸을 때의 일들을 하나둘씩 잊어갔고, 엄청난 즐거운 일들을 기억도 못하고 섭섭한 일만 기억하는 모습에 서운하고 속상한 건 엄마 몫이었다.


첫째 아이가 더 크기 전에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워킹맘의 일과 육아 사이에,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나는 변화를 시도해본다.

육아휴직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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