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녔던 초등학교가 폐교를 하면서 초등학교 앞 작은 문방구도 같이 문을 닫았다. 이 문방구의 주인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문방구 안에는 조그마한 방이 하나 있었는데 두 분이 생활하시던 공간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있어 이곳은 삶 그 자체였을 거다.
많은 걸 샀었다. 실내화나 실내화 주머니 같은 것들부터 해서 공책이나 볼펜 불량식품까지, 한창 유희왕 카드가 유행할 때는 돈이 생길 때마다, 카드를 사곤 했었다. 앞에 재미난 오락기가 설치됐을 때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오락을 하곤 했었다. 그 시절, 이곳은 우리가 유일하게 소비를 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건물이 이렇게 작았었나?"
친구는 담배연기를 깊게 내뱉고는 "그러게 이렇게 작았었나?"라며 답했다
간판도, 진열돼 있던 물건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머무시던 방도, 다 뜯겨져 나가 버렸다. 휑한 건물이 낯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셨을까, 아니면 어디에도 있지 않으신 걸까, 곧 있으면 이곳은 건물 자체가 없어져 새로운 무언가가 될 텐데,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사람들은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관심을 둘까, 이곳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해나 할까.
공간이 사라짐으로써 앞으로도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은 사라지고 말았다. 학교를 마치고 나와서 소시지나 먹을 것을 사던 이야기나,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준비물을 꺼내시며 “이게 필요하지”라고 묻던 할머니의 대한 이야기나, 문방구 안쪽에 들어가면 문을 드르륵 열고 얼굴을 보이시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져 버렸다. 점점 사라져 가는 사람들뿐이다. 곧 새 건물이 들어서고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 그들에게 익숙해질 풍경은, 내게는 낯선 풍경이 될 거다.
어렸을 땐 모든 게 영원할 것만 같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변해가고 사라지는 것들 투성이다. 공간이든, 사람이든, 소중한 감정이든, 이런저런 것들이 변해가고 사라져 간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잔인함 뿐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린아이처럼 떼쓰고 싶다. 싫다고, 변해가지 말라고.
익숙한 풍경에서 뜯겨져 나간 문방구를 보며 친구는 말없이 계속 담배를 태웠고 나는 애꿎은 땅만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