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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태 Sep 21. 2019

어쩌면, 어김없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어김없이 아프곤 합니다. 코는 킁킁, 머리는 지끈지끈, 몸은 으슬으슬 떨립니다. 애초에 몸이 약한 탓도 있지만 머물고 있는 계절에 좀 더 머물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합니다. 머물고 있는 계절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지금은 더운 계절에서 추운 계절로 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고,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나면 어느새 또 한 살이 늘어나 있습니다. 그만큼,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나의 젊음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으나 이제는 빨리 무언가로,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머물고 있는 계절에 조금 더 있고 싶어 웅크리고 있으면, 저 멀리서, 달려오는 시간과 부딪혀서, 그렇게 내일로, 다음 계절로 오게 됐습니다. 언제쯤 겸허하게 계절이 바뀌는 속도와 발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서도, 예전보다는 덜 아파하는 나를 보면서, 영영 발을 맞출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접어두곤 합니다.


 얼마 전에는 예전부터 차곡히 써놓았던 글과 찍어 둔 사진을 보았습니다. 클라우드 용량이 가득 차서 몇 개는 골라내어 비울 요량이었습니다. 모아 두고 보니, 6년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중간중간 백업하지 못하고 날려먹은 일도 있어 텅 빈 부분도 있었으나 그래도 꽤 많은 양이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지난날들의 '나’로 가득했습니다.


 지난날의 나를 마주하고 있다 보면 이게 정말 '나'였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볼 살이 올라와 있고 누가 봐도 영락없는 20대 초반인 사람과 그 뒤로 갈수록 그 나잇대에 맞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나’가 있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지나온 모습들에 웃음이 났습니다. 그랬던 ‘나’가 쓴 글은 힘들다, 괴롭다. 투성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나를 좋아해 주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었고 부모님과 마찰이 심해 괴로워하고 있었고, 막연한 미래에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상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지금은 없는 모습이라 반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옛날의 나는, 이제는 사소해져 버린 일들로 많이 아파하고 불안해했으며 지금의 나는, 그때에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아하고 있습니다.


 계절이 변하고, 한 살이 늘어갈수록, 시간을 붙잡고 싶어 지지만 지나온 날들을 톺아보고 있으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세월이 지나가는 것은 섧은 일이지만서도, 세월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일은 위안이 되곤 합니다.


‘너의 서른이 기대가 돼’ 언젠가, 누군가 제게 했던 말처럼, 나는 나의 서른을 기다리고 있으나, 하루빨리 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아팠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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