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커다란 달이 걸려있는 걸 보았습니다. 보름달도 아니었는데 저렇게 커다랄 수 있구나 싶어서, 소원을 빌어볼까 하다가, 보름달도 아닌데 뭐 하러 그럴까 싶어서, 그만두었습니다. 빈다고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커다란 보름달이 하늘에 걸려 있는 걸 본 적 있습니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달이 너무도 커다래서, 건물 간판으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택시에 내려 달을 바라보다, 더욱 가까이서 보고 싶어, 달이 떠있는 쪽으로 무작정 걸어도 보고 뛰어도 보았습니다. 그 새벽, 달은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조금 뛴다고, 태양계 행성들이 모두 들어갈 만큼 멀리 있는 달에게 가까워질리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때는 술에 취했고, 아무도 없는 새벽이었고, 나는 어려서, 달에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오래 전 일이라,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잘 기억 나지 않지만, 아마 한 사람에 관한 소원이었을 겁니다. 사람으로 인해 휘청거리기만 했던 날들이 싫고 미웠으니 말입니다. 소원을 빌고서도 오랫동안 앓았으니, 여물지 못한 마음만 달에게 이야기 해준 셈입니다.
이제는 달에게 소원을 비는 것 보다, 이야기 하나 건네는 게 좋습니다. 산다는 게 서러운 일을 견디는 것인데, 무엇이 서러운지 알겠고 무엇이 서러운지 몰라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달에게는 슬쩍 건넬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아득한 거리에 떠있는, 철과 마그네슘 덩어리인 것이, 듣고 대답 해줄리 없지만, 오히려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대답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아마, 직접 다녀오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다녀오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발자국처럼, 남아있을 나의 이런저런들을 언제까지 맡겨 놓을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 울먹임을 견디며 길을 걷다 왜 사람은 늘 독감처럼 다가오냐며 물었던 말도, 들여다 보고 싶습니다. 놓아둔 나의 전부를 끌어안아 보고 싶습니다. 돌아오기 전에는 달의 등허리도 쓸어주고 말입니다.
달은 오늘도 환하게 떠있습니다.